로그인 | 처음으로 | 기사입력 | 리포터(선교기자) 가입 | KCM 홈
 
   특별호 12호 바이블 웨이 [05-08]
   제375호 [05-07]
   제374호 [10-30]
속보(긴급기도제목)
선교현장
선교소식
선교단체
푸른섬선교정보
AFMI
교계, 문화
오피니언
목회, 신학
청년, 대학생
기획, 특집
포토/동영상
해외한인교회
선교학자료
 논문
 강의안
 선교역사인물
해외일반
한국일반
주앙교회
미션매거진을 만드는 사람들...
facebook 미션매거진 편집회의
섹션 선교학자료 > 등록일 2008-06-16
작성자 관리자 (admin)
2. 파라과이 선교 역사
영국 성공회, 독일 형제 교회
6. 파라과이 선교를 위한 과제

5. 파라과이 현재까지의 선교 평가
4. 파라과이 선교 전망
3. 파라과이 선교의 현재 현황
2. 파라과이 선교 역사
1. 파라과이는 어떤 나라일까?


1) 영국 성공회, 독일 형제 교회와 Menonta(재세례파)
파라과이의 개신교의 선교의 역사는 1920년경 영국 성공회에서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와 인디안들에게 복음을 전하는것으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선교는 오래가지 못하였고 곧 1923년경 독일 사람들이 이민 오면서 독일 형제 교회(hermano livre)와 Menonita(재세례파)를 이곳에 뿌리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생활은 그들이 집단적으로 이민와서 거주하는 차코지역을 중심으로 인디언과 가까운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인디언들을 중심으로 하는 농촌 선교였다. 그후 점차 도시 지역으로 확장하였지만 파라과이의 특수성 때문에 선교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후 독일이나 화란등지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형제 교회 멤버(Hermano libre)들이 카나다를 통해 이곳 파라과이로 많이 이민을 오게 되었고 그들의 이민은 경제적인 이익만이 아니었고 신앙을 지키려는 일환으로 파라과이에 많이 유입되면서 형제교회의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 그들은 인디언들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를 하였지만 점차 도시 지역으로 선교의 지역을 넓히면서 폭 넓게 선교하기 시작하여 이민을 온 종족치고는 파라과이에서 선교에 성공적인 열매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미국 남 침레교와 오순절 교회
그후 1943년 미국 남침례교가 이곳 파라과이에 본격적인 선교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도 처음에는 농촌으로 들어 갔지만 도시지역의 선교를 힘차게 감당하기 시작하여 1952년에는 수도 아순시온에 침례교 병원을 세웠고 그해 일반학교를 세워 다 방면의 선교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그후 1964년에는 신학교를 세워 일꾼 양성에 주력하면서 원주민 지도자를 세워 그들 스스로 교회를 섬기는 훈련에 하도록 했다. 현재까지 파라과이에서 가장 많은 교회를 보유하고 있는 교단이 바로 침례교인 것은 그들이 본격적인 원주민 지도자 양성을 위한 신학 교육을 일찍 시작하였다고 볼수 있다.
그 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오순절 운동의 펜타코스트 바람이 이곳 남미 전 지역에 불게 되었고 파라과이도 그 바람의 영향으로 오순절 교회들이 점점 불어나게 되었다. 오순절 교회의 예배형태와 소위 그들의 신앙생활이 이 남미 지역의 정서와 사람들의 특성에 일치하는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에,- 예를 든 다면 가령 한국이 복음을 받아 들인 이후 그 복음의 속도가 계속 불타게 된 것도 많은 목회자들이 한국민족이 당한 고난(한)이 복음을 빨리 더 뜨겁게 받아 들인 한 요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남미 지역에 오순절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 많은 교회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일어난 것도 이곳 사람들의 특유한 정서에 일치하는 오순절 신학(그 무엇) 있었기 때문에 펜타코스타 교회들이 짧은 시기에 급 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은 굉장한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현재 까지 오순절 계통의 교회가 많이 모이고 있으며 예배도 활기가 있다고들 말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약 80년 혹 90년 되는 파라과이 개 신교 선교역사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침례교 보다 짧은 선교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오히려 더 활기찬 신앙 생활에 증진하는 것을 엿볼 수 있으며 오히려 타 교단의 선교에 많은 도전을 줄 정도까지 되었다.


3) 한국 이민교회
파라과이에서의 장로교 선교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사실 파라과이는 1800년 후반기에 3국 전쟁이후( 파라과이대 브라질,이르헨티나,우루과이와의 긴 전쟁) 많은 국가적인 손실로 말미암아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남자의 수가 절대적으고로 부족할 정도의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1900년 초부터 국가는 이민 정책을 실시하여 많은 외국 이민들이 파라과이로 들어 오게 되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국 한국 순서로 이민자들이 많이 몰려들게 되었다. 그 가운데 우리 한국도 1966년 경부터 이곳 파라과이에 농업 이민을 보내게 되었고 이 이민자들이 처음에는 농사를 짓는다고 시골로 들어 갔지만 수지 타산이 맞지않는다고 그후 모두 도시인 수도 아순시온으로 나와 상업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종사하게 되었다. 이 한인 이민자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게 된 것이 파라과이 장로교 선교역사의 첫 발걸음 이라고 볼 수 있다. 초기의 인민 교회는 아순시온 연합 교회가 모체가 되어시작이 되었고 그후 이민자의 수가 많아지고 각각의 신앙형태에 따라 교회가 몇개씩 생기게 되었으며 장로교로서는 아순시온 교회가 가장 큰 영향력을 교포 사회에 하게 되었다. 그후 아순시온 교회는 교회 성장과 동시에 원주민 선교를 하게 되었고 몇개의 원주민 교회들이 아순시온 근방에 세워지게 되었다.
이후 신학교를 세워 원주민 지도자를 양성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지만 이민자들 구성멤버들이 신앙의 깊이와 헌신된자들의 결핍으로 구체적이며 적극적이며 도전적인 선교에 한계를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앞서 독일에서 시작된 형제 교단의 이민자들이 파라과이에 와서 농촌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가 상당한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착이 되었다고 언급을 하였는데 그들 선교의 인적 자원은 상당한 신앙 인격을 갖춘자들이 직접 선교에 헌신한 결과라고 본다면 자신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한인 이민자들과 상당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파라과이 장로교 선교에 교포교회가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작년에 파라과이에서는 장로교 선교 10주년을 넘기며 새로운 도약을 위한 본격적인 연구와 선교의 활력이 필요한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출처 : 김진호 선교사
프린트 메일보내기
관리자 모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