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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오피니언 > 아름다운이야기 등록일 2008-04-27
작성자 조성규 (csk0524)
기소중지자라면서?
두 남자의 이야기, 두번째
박형아영사(현 캄보디아대아관 근무)
작년 이맘때 캄보디아에 부임하기 직전,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캄보디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다. 그중에서도 캄보디아에 기소중지자가 많다는 얘기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캄보디아에서 경찰 영사로서 해야할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소중지자가 있길래 한국에서조차도 그렇게들 인식하고 있을까 하는 의아심에서였다.

이야기를 더 들어본즉, 기소중지자 중에는 자신이 기소중지자라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알게 모르게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도 적잖게 있다고 했다. 은근히 협박을 당하기도 하고 마지못해 돈, 혹은 향응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기소중지자란 무엇인가? 흔히들 기소중지자라 하면, 죄를 저지르고 도망한 죄인 정도로 인식한다. 하지만, 나는 단호히 그것은 잘못된 정의라고 말하고 싶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판사의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어느 선진국의 예를 따르더라도(우리 나라도 마찬가지다.) 모든 피고인은 유죄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재판에 회부된 사람조차도 무죄로 추정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데, 수사기관의 조사조차 받지 않은 사람을 죄인이라 여기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검찰이 형사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기소 처분, 기소중지 처분, 불기소 처분, 기소유예 처분이 있다. 기소는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것이고, 불기소는 혐의가 인정되지 않거나, 처벌이 불가하다고 판단되어 법원에 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기소유예는 죄는 인정된다고 보여지나, 처벌할 실익이 없을 정도로 미미한 범죄라고 판단되는 경우, 검사의 재량으로 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기소중지는 기소, 불기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조사를 마치지 못했을 때에 최종 판단을 유보하는 경우이다. 피고소인 또는 혐의자를 조사하지 못하였을 때, 중요한 참고인을 조사하지 못했을 경우와 같이 조사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기소중지자가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될는지, 법원에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게 될는지는 조사를 받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수사기관의 출석요구에 불응했다는 점은 비난 가능하다. 당당하게 수사기관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못했다면, 당연 무슨 잘못이 있기 때문 아니냐고 추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걔 중에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막연히 조사받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출석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작년 1년 동안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돌아간 기소중지자 중 구속된 사람은 1명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경찰의 조사를 받고 곧바로 풀려났고, 모두가 조사를 받고 나서는 내게 국제전화까지 걸어 고마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은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서 조사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었지만, 조사를 받고 나서는 오랜 세월간 죄인처럼 숨어지냈던 무거운 짐을 홀가분하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기소중지자의 이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오히려 악용하기도 한다. 혹자는 기소중지자에게 접근하여 숨겨주겠다면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는 명백한 범인은닉죄에 해당된다. 실제로 자신이 캄보디아내 군,경찰 등 실력자들과 친분이 좋다고 과시한 후에 자신의 집에 숨겨주겠다는 등 유혹하여 돈을 받아 챙긴 사람도 있다 한다.

하지만, 캄보디아 실력자라고 해서 한국의 기소중지자를 숨겨 줄 수는 없다. 결국 그는 그 기소중지자를 숨겨줄 수 없었고, 아직까지도 그 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한다. 최근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가 불쑥 내방으로 찾아 왔다. 바쁜 일손을 잠시 멈추고 무슨 일로 오셨느냐고 물었다.

“저는 OOO입니다. 영사님께서 저를 찾으셨다고 하길래 찾아 왔습니다.” 때론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인지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다. “누구시라구요?” “제가 OOO입니다. 영사님께서 저를 찾으셨다고 하던데...”, “그래요? 누가요?” “아니, 김철수?(가명)씨가 제게 그러던데요? 대사관에서 저를 찾는다고요” “김철수씨를 제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OOO씨를 찾은 적은 없습니다만...”
“사실은 제가 수배자입니다. 김철수씨가 저보고 박영사님이 찾으신다고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김철수(가명)씨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제가 보자고 했다고요?” “네~”
김철수에게 전화를 했다. “OOO씨에게 제가 보자고 했다 그랬나요?” “아니요?” 그는 시치미를 뗐고,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기 힘들었다.
“다시 한번, 당신 입에서 내 이름이 거명된다거나, 내 이름을 판다거나 했다는 말이 들리면, 그 땐 가만 있지 않겠습니다.” 그는 절대 그런 일 없다며 오해하지 말라고 능청을 떤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일주일 즈음 지났을까? 어느 다른 동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일단 만나서 얘기해야 되겠단다. ‘아니, 무슨 일인지 알아야, 만나든지 말든지 하지 원...’

아무튼 그를 만났을 때, 그가 내게 해 준 말은 다시금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김철수씨가 그러던데, 박영사님이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면서요?” “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 사람도 기소중지자였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본즉, 김철수는 지난번 나의 경고전화를 받고서도 여전히 다른 기소중지자에게 그런 말을 하고 다녔던 것이다. 당장 김철수와 통화하려 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출국중이란다. 난 그 기소중지자를 통해 김철수에게 연락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아직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다.

(설마, 남의 약점이나 잡아서 돈이나 좀 벌어볼까 하는 거는 아니겠지요? 그런 식으로 박영사와 친분이 있는 것처럼 과시하고 싶을 정도로 치졸한 것은 더더욱 아니겠지요?)

우리 경찰청은 해외 기소중지자가 600명대를 넘어서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다. 내 생각에는 그보다 훨씬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캄보디아 같은 나라는 도피하기 쉬운 곳으로 여겨진다. 허술한 출입국 규제, 공무원 부정부패 등에 편승하면 다른 나라에 비해 어렵지 않게 숨어 지낼 수 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들 중에는 살인, 강도 등 흉악범들도 있지만, 대개 경제사범이라 불리우는 금전 관련 범죄자들이다. 통상적으로 사업을 하다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망하게 되면, 채권자들이 채무를 독촉하며 괴롭히게 마련이다.

서로간에 적정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채권자는 결국 채무자를 고소하게 되고, 이러한 경우에 통상 ‘사기죄’라는 죄명을 달게 된다. 하루 아침에 정상적인 사업가가 사기범으로 낙인 찍히게 되는 것이다.

지난 IMF 파동시 많은 사람들이 부도와 도산으로 사기범으로 몰리고, 해외로 나와 범죄자 아닌 범죄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기소중지자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고, 외국으로 도피하고서도 피해자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이,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자들도 분명 있다. 자신이 기소중지자임을 뻔히 알고 있고,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해결할 생각은 없이, 골프를 즐기거나, 가라오케나 슬럿머신 게임장을 거리낌 없이 드나드는 사람들도 있다.
죄를 떠나, 나로 인하여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해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그리 생활하지는 못할 것이다. 일전에 송환했던 한 기소중지자는 피해자가 수천명에 이르는데도, 송환당하는 그 직전까지도 카지노에서 수백, 수천불씩을 탕진하고 있었다.

적든 많든 간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법당국에 신고하고,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가해자는 별다른 제재없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 온당치 못하다. 그러나, 정확한 법률지식 부재로 이런 저런 사람들로부터 협박 아닌 협박을 당하면서, 도망자 신세로 계속 살아 가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여권이 만료되었음에도 갱신이나 재발급을 받지 못해, 불법체류상태로 객지에서 이민국 경찰의 눈을 피해 살아가야 하는 고통, 동포사회에서도 떳떳하게 얼굴을 들지 못하고 말 한마디 내 맘대로 하지도 못하는 답답한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경찰 영사로서 나는 법률지식 부재로 이런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동포에 대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최선책이 무엇인지, 올바른 해법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할 것임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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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아 영사는 경찰대를 나와 2006년에 캄보디아의 최초 경찰영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결혼하여 부인과 함께 슬하에 2남 1녀의 자녀들과 함께 프놈펜에 거주하고 있으며 2009년에 본국 근무관계로 돌아갈 예정이다.


- 캄보디아에 조 성규(kcmcsk@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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