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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북아프리카 등록일 2008-03-08
작성자 관리자 (admin)
한국교회의 선교와 강도사건
임종표 선교사
며칠 전(9월 11일) 우리 집사람이 나이로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의 하나인 웨스트랜드 싸릿 센터(Westlands, Sarit Center) 근처에서 무장 강도를 만났습니다. 너무 자주 일어나는 강도사건이라서 늘 평소에 조심하면서 움직였는 데, 이런 불상사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스텐빅Stanbic) 은행으로 부터 75,000실링(약 미화 1150불 정도)의 현금을 인출, 운전을 도와주는 형제와 함께 우리가 경영하고 있는 학교를 향해 가는 동안에 싸릿 센터 근처에서 4명의 무장 강도의 공격을 당 했습니다. 시간은 오후 2시 30분 경이었기 때문에 자동차들이 우리 집 사람이 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그야말로 백주의 시간이었습니다.

네명의 무장 강도들이 공포를 쏘아대면서 공격하다!

사건의 전말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4명의 강도들이 공포를 두 방 터뜨린 후에 그들 중 한 사람은 권총으로 우리로 부터의 반대 방향에서 오는 자동차를 권총으로 위협하여 멈추게한 후, 운전자로 하여금 고개를 숙여서 자신들의 차의 번호판이나 인상착의 등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다른 한 명은 제 집사람이 타고 있는 차의 운전사 쪽으로 움직여서 자동차 열쇠 꾸러미를 탈취하고 권총으로 위협하면서 고개를 숙이도록 위협하고 있는 동안에, 다른 한 강도는 우리 집사람이 앉아 있는 차쪽으로 가서 현금과 핸드백을 탈취한 체, 자기들의 차를 타고 유유하게 도망 간 시간은 불과 30초 미만이었습니다. 핸드 백 속에는 모바일 폰과 영수증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여러 한국인 선교사님들이 이렇게 강도를 당한 불상사 스토리들을 듣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언제가는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고 대비하면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모든 재정 운영은 수표를 통해서 은헁 구좌를 이용하자는 원칙 또한 세웠습니다. 이 말은 학교를 운영하는 과정에 교사들의 봉급을 지불하는 과정을 현금화하지 않고 월말이 되면 각 교사의 개인 구좌로 봉급을 이체하기 시작했던 것은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러한 강도를 당할 수 있는 불상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사 중의 하나라고 여기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무한한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 선교현장!

아무리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선교 현장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이러한 사건들로 부터 자유로울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만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도전해 오는 수많은 위혐과 어려움들 즉 환난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교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살기로 작정하고 타문화권에 온 사람들입니다. 위험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 그 어느 곳에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곳도 위험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한국 선교가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선교사들, 특별히 한국 선교사들이 요즈음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며칠 전 사랑하는 후배 목사님과 국제통화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 아프칸 한국인 피랍 사건으로 인해서 요즈음 한국 선교가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라는 이 목사님의 말이 제 뇌리를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내외도 선교를 그만 집어치우고 선교지를 떠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선교사의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희를 선교사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선교 외도도 해보았습니다. 한국에 들어가서 선교를 하면서 목회도 1년 정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선교하는 일과 함께 병행해서). 그리고, 공부하기 위해서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미국 이민 목회도 한 1년 정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목회는 나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교사로 부르신 것에 대한 확신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단연코 외치고 싶습니다. "나는 선교사이다!" 그런데 선교가 공격을 당하면 가슴이 아프고 참기가 힘들고 괴롭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선교사로 나온 것도 아니고, 명예를 쟁취하기 위한 것도 더더욱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선교사는 외롭고 고독한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몰매를 맞으면 너무 힘들고 참기가 힘듭니다. 더더구나 생명을 저당잡히고, 언제 강도를 만나서 생명을 내놓을지 모르는 현실 앞에서는 더더욱 아프고 상처가 커집니다.

정말 한국 선교가 잘못 되기만 한 것인가?

국내에서 한국 선교를 매도하는 내용은 "한국 선교는 제국주의적이다!"라는 것입니다. 정말 한국 선교가 제국주의적이고 공격적인 선교를 하고 있는가? 한국 선교사들이 군림하고 다스리는 제왕적 특권을 누리면서 선교를 하고 있는가? 진정으로 한국 선교가 현지 문화에 대해서 무지한 차원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가? 정말 한국 선교가 그렇게 몰매를 맞아야 할 만큼 잘 못하고 있는가? 나는 "아니오" 그리고 "예" 두가지 대답을 서슴없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정해서 말씀드린다면 한국 선교를 획일화해서 매도할 수만은 없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선교 자체가 어려움을 안고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전체는 어쩌면 "선교사 고난행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 선교는 우리 스스로가 시작한 선교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아무도 우리들에게 선교를 어떻게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다시말해서 서구 선교사들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해서, 한국 교회는 세계 기독교 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성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우리들에게 선교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교회는 정말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고상한 말로 표현하면 "하부구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선교를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 선교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 그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선교이면 아무 것도 선교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꼭 부연하고 싶은 것은 얼마 전 한국의 "샘물교회"의 아프칸 단기 선교팀의 피랍 사건이나, 작년 "인터콥 아프칸 대형집회 시도"는 필자가 말하는 선교의 범주로는 순전히 "단기성 선교 경험"에 불과하기 때문에 선교지에서 생을 바치면서 선교하고 있는 장기 선교사와 버금가도록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작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피랍사건 한 가지 것만을 가지고 한국 선교의 전부를 평가하고 매도하는 것은 잘 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교를 보다 더 폭넓은 차원에서 이해하는 슬기로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라기는 결단코 한국 선교를 평가하는 데 단세포적인 사고로 판단을 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마디로 한국인들이 이해하는 선교는 "모든 것을 선교"라는 범주로 몰아넣고, 그 틀안에서 선교를 이해하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선교는 한국인 피랍사건, 그 이상입니다. 선교는 아프카니스탄에서 천 명, 이 천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세를 과시하는 것, 그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과시적인 단기성 선교를 선교라고 단정하고 모든 선교를 일방적으로 몰아 붙이고, 공격적이며 제국주의적인 선교라고 판단해 버린다면 필자는 유구무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선교는 단기 선교 그 이상이라는 것을 다시한 번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선교라고 단정한다면 아무것도 선교가 아니라는 스테픈 니일(Stephen Neil)의 말이 새삼 떠 오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선교가 아닌 것을 선교인양 이해하고 거의 무제한적으로 선교적 자원을 투자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열심이 특심인 한국 선교사의 모습!

한국 선교사들은 희생을 아는 사람들이고 또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러다가 보니 사람들의 눈에 막무가내로 보여질 수가 있습니다. 이러다가 보니 공격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오해도 받습니다. 이러다보니 자기 죽는 줄도 모르고 일에 매달리는 성과지상주의자들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병들고 상처나서 종국에는 아무도 반겨주지 않은 폐인처럼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한국 선교는 희생의 틀위에 세워진 희생물의 상징입니다. 넉넉하지도 못한 선교비를 가지고 자기 먹을 것, 입을 것 아끼면서 한푼이라도 현지에 투자하려고 몰입하는 그러한 희생적인 선교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 선교사들입니다. 행여라도 쉬면 "최책감"을 가지고, 죄송해 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 선교사들입니다. 너무 열심인 것이 특심이 되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한국 선교사들입니다. 이러한 한국 선교사들 앞에 던져지는 돌들이 너무나 크고 버겁기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돌들이 날아와도 선교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그 무엇도 선교를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 선교사들의 열심을 그 무엇도 막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또 강도를 만나고, 또 아프카니스탄 사태같은 것이 터져도 선교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선교사들은 겸허하게 우리가 어떻게 달려왔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템포 늦추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제 집사람 처럼 또 강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반복 되어져서는 안될 아프카니스탄 피랍사건과 같은 악몽과 같은 사건이 다시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는 현실의 한 복판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교를 포기하지 않는 한, 사건은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강도만난 사건은 우리 한국 선교사들에게만 일어 난다는 오해가 불식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알고 있는 모 영국인은 아들 생일파티를 집에서 하다가 무장강도 떼 들에게 온 집안을 털리고 그 주간에 짐 싸고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인도인 부인은 하루 종일 비지니스를 해서 모은 100만 실링 을 은행에 입금하기 전 집에 보관하기 위해서 가지고 오다가, 바로 대문을 들어서자 마차 무장 강도 떼 들에게 깡그리 한푼도 건지지 못하고 털리기도 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선교는 움직이지 않으면 되어지지 않은 것이 선교입니다. 선교는 생명처럼 활동적인 것이 선교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선교행전이라고도 하는 데 한 마디로 "ACTS"라고 하지 않습니까? 즉 행동하는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우리의 선배 선교사 바울은, 그 누구보다 더 수난, 고난, 고통, 수모 등을 겪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로 하여금 세계 선교라는 부르심을 결코 꺾지 못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수 많은 선교사들은 순교했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는 복음을 알았고 또 그 복음을 알도록 하는 선교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 11:16-33). 그런 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정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전투"입니다!
선교지에서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영적전쟁을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시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선교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한 참 부족한 사람입니다. 아마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면 한국 선교사들을 "공격자"로만 이해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치열하고 처절한 영적전쟁터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이 영적전투로 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마땅히 깨어나서 영적전쟁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공격해도 우리는 겸손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그 일을 위해서 우리의 삶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 집 사람이 만난 강도들을 또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저는 요즈음 솔직하게 죄들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무슨 죄를 회개하느냐구요? 제가 현지인들 보다 더 우월하다는 "문화 우월주의(Ethnocentrism)"를 회개합니다. 나의 현지 문화의 이해와 적응에 대한 무지, 무시, 차별을 회개합니 다. 나의 열심이 현지인들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지 간에 군림하고, 다스리고, 지배하는 자의 모습으로 비쳐진 것을 회개합니다.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지 못한 나의 교만을 회개합니다. 동료 선교사들을 더 사랑하고 더 섬기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동료 선교사들,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진 한국인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현지인들과 보내는 시간 보다 더 많으므로 사랑하는 현지인들을 외롭고 고독하게 만든 것을 회개합니다. 현지인들을 더 존중하고, 존경하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회개합니다. 회개해야 할 것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요?
저희 부부는 다시 한번 가슴을 열고, 주님의 붙잡아 주시는 은혜를 구하면서 다시 일어나서 걸어갑니다. 이 길 밖에 더 이상 갈 길이 우리 앞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길을 우리 주님이 가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여, 선교사로 불러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강도들로 부터 생명을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2007년 9월 13일 임종표, 홍화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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