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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동남아시아 등록일 2008-01-27
작성자 관리자 (admin)
인도네시아의 선교역사


Ⅰ. 인도네시아의 선교역사 - 과거상황

처음 기독교가 인도네시아에 들어오기 전 인도네시아는 긴 종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 힌두, 불교가 이미 들어와 있었고 각 종 족이 가진 자신들의 전통적인 민속종교가 이미 뿌리 깊이 내려져 있 었다. 민족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들은 무역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이미 불교와 힌두교가 들어와 있었고 15세기에 이슬 람이 들어오고 16-17세기에 서구의 문물과 함께 구교의 선교가 점점 창성해졌다. 대부분 무역과 함께 시작되었기에 무역이나 종교의 중심 지가 해변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
16-18세기에 서구인들은 교회를 세우는 데 주력하게 되는데 그 전 략은 거의 비슷했다. 즉 전도하고 교회 세우고 파트너쉽이란 명목으 로 서구인들의 말할 수 없는 권위가 앞섰다. 그러기에 그들의 선교사 적 삶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1. 가톨릭(구교)의 선교

1) 포루투칼과 함께 열린 인도네시아 교회 시작15세기 인도네시아 상황은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은 시대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넓어지는 무역과 관련이 있다. 서구문물과의 접촉으 로 인해 정치, 경제만이 아니라 문화에까지도 그 영향이 세차게 들이 닥쳤다. 그것은 당연히 포루투칼 상인들이 그들의 종교인 기독교를 가지고 왔음을 뜻한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일슬람을 신봉하는 상인 특히 이란 사람들의 영향도 인도네시아에 크게 미치게 되었다. 그러기에 인도네시아에서 18세기는 모든 분야에서 각변의 시기라고 말해 틀림이 없다.
2) 네덜란드 사람들이 들어오며 열린 인도네시아 선교포루투칼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 뿐 아니라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 을 잘 돌보지 못해 목적도 계획도 없는 종교를 전하는 선에서 끝이 났다. 그런 반면, 이슬람은 더 강해지고 많은 지역에 전파되었다. 그 들은 포루투칼인들을 그 들의 적수로 간주하여 자주 싸움이 있었다. 그 와중에 이미 기독교인들이 된 사람들이 어려움을 말하기도 하였 다. 그럴수록 아직 어린 기독교인들은 더욱 강하게 단련되어 갔다. 1605년 네덜란드가 포루투칼을 내어쫓고 인도네시아에 발을 들였 다. 포루투칼에서 네덜란드로 옮겨가는 이 시기에는 기독교가 인도네 시아에서 평가절하되는 기간이었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기회를 연 때였다.
3) 네덜란드 동양척식회사(VOC라 표기)의 통치와 교회상황VOC가 세워져 아시아에 세력을 끼치고 인도네시아를 다스리면서 인도네시아 교회는 싫든 좋든 그 영향과 간섭을 받게 되었다. 교회에 대한 정부(VOC)의 간섭은 교회가 국교회라는 인상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정부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정치적이고 경제에 촛점을 맞춘 VOC가 영적인 교회와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모든 교회의 상황을 알려 했고 모든 교회가 당면하는 모든 문제나 언도를 휘어잡으려 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한 사람을 교회법으로 다스리려 해도 그가 정부의 요원이면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때 교회 성장은 어색하고 딱딱하기 그지 없었다.
4) 17-18세기으 인도네시아 교회성장VOC가 들어온 곳에 일반적으로 교회도 세워졌다. VOC는 스스로 교회 안에 권한이 있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모든 영적인 일을 돌보며 아주 사소한 것까지 조정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결과는 여러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기독교가 정부의 보호 아래 성장케 되었다. 17세기에 자카르타의 목사들이 서부 수마트라와 다른 자바섬으 시골지역들로 파송되고 18세기에는 마장, 중부자바의 서마랑, 동부자바의 수타바야에 교회가 서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교회성장은 아주 느리게 진행되었는데 가정 큰 요인은 교회 안에 현 지인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전도르 띵위해 파송을 받아도 VOC 밑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만 보 내졌다.
5) VOC 시대의 교회조직, 교훈 그리고 교회생활네델란드 교회조직, 신앙고백, 신앙생활, 신안훈련 등이 인도네시아 교회에 그대로 심어져 네달란드 교회가 인도네시아 교회의 모델이 되고 규격이 되었다. 인도네시아 교회는 칼빈주의에 입각한 개혁주의 에 바탕을 두고 있다. 네덜란드 식민통치 밑에서 그들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큰 고통이었다. 네덜란드로부터 온 교회행정체제는 성 장을 원하는 식민지역에(인도네시아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따. 인 도네시아 지도자들은 네덜란드인들의 정치적이거나 식민지적 발상에 서 나온 목사들을 그들이 정한 곳으로 보내는 것에 대해 큰 반발을 보였다. 네덜란드 교회들은 인도네시아 교회가 칼빈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게 성화가 대단했다.
6) VOC 시대의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이의 기독교식민치하의 인도네시아인들의 삶은 모든 분야에서 질서가 잡힌 반 면 정부에 의해 너무 제한되어 있었다. 정신적이고 실제적인 면에서 해방하여 자유를 얻을 만한 여력이 없었다. 네덜란드인은 삶의 어느 부분에서건 자유로왔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인도 네시아인 스스로 교회를 세우지 못하며 교회안에서도 인도네시아인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지 못했다. 늘 네덜란드 교인이 곁에 있어야만 했고 교회도 그들이 있어야만 세워질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인은 네 덜란드 교인 옆에서 들러리 아니면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결론적 으로 이런 상황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의 영적인 성장은 기대할 수 없 었다.

2. 19세기 교회 성장의 개요

1) VOC가 들어가도 일본이 침략할 때까지 정치적 개요VOC의 말할 수 없는 독점으로 인해 경제가 혼란하게 되고 결국 영국과의 해상권력다툼에서 지고 1799년 12월 31일 VOC는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때 이래로 인도네시아는 더 이상 무역을 미끼로 어떤 조 직에 속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네덜란드의 식민통치 하에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서 종교의 자유라는 기치 아래 많은 전 도자들이 인도네시아로 들어왔다. 2) 개신교의 영적 부흥은 바로 약 1800년 경에야 일어났다. 전세계 의 기독교 사회에서 교회가 어디든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 감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들어온 많은 선교사들은 경 건과 복음전파를 강조하는 청교도 정신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 경건주의자들로 인해 기독교 기관들과 성경학교가 세워지곤 했 다.
3. VOC 교회를 대신한 개신교회
1) 새 환경새 선교사들이 인도네시아에 들어올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고 그 들은 인도네시아 교회가 어디서든 성장할 수 있는 뜨거움을 가지고 왔다. J.KAM은 NZG라는 네덜란드의 기구로부터 파송받은 첫 선교 사였다. 그는 말루꾸에서의 사역에서 그가 보인 강인함과 용기로 인 해 말루꾸의 사도로 불린다. 그로 인해 인도네시아 교회내에 새 피가 흐르고 영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2) 국교회로서 인도네시아 개신교회의 조직각 종교가 정치와 관계없이 자기의 종교를 확장하고 보존할 수 있 는 자유가 정부(인디아 브란다라 불림 : 네덜란드 식민치하의 인도네 시아와 네덜란드의 합작정부)에 의해 이때에 주어진다. 이로 인해 더 크게 인도네시아 교회가 성장하게 된다. 어 이상 어느 특정 교회의 교리를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인도네시아 개신교회는 자립된 교회이 다. 그 교회는 인도네시아 교인들로 구성되었고 인도네시아 개신교들 을 위해 활짝 열려 있다. 그들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데 힘을 합치기 위해 교회가 갈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기에 목사들은 주일설 교계획과 설교장소들을 정부에 보고를 하여 서로간에 조정을 하였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교회의 행정을 국가가 맡아 하는 격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반작용으로 교회가 스스로 해결하여는 반응이 1863년 부터 나타나 결국 1935년 교회와 국가의 행정의 분리되게 되었다.
3) 교회 입장들과 상황이미 교회가 있었으나 개신교가 영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수는 없 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교회에서 인도네시아 사람 들도 영적인 관리를 하거나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권위가 주어진다. 그러면서도 하나가 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19세기까지 오직 한 개 신교단(GPI)만 있었다. 그리고 영적인 사역을 높이기 위해 1878년 대 륙에 신학교를 세웠다.
4) 국가와 분리된 후의 개신교1835년 국가와 교회행정이 분리된 후 새로운 개신교회 성장의 표 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개신교 총 회는 예배순서, 전도전략 등 교회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하나이던 교회가 분열하기 시작하여 1934년, 38년, 48년에 각각 다른 교단이 세워졌다. 지금도 인도네시아에 복음적인, WCC계통의 그리고 오순절적인 교회 등 4개의 큰 조직하에 약 280 여 교단이 분산되어 가입되어 있다.

Ⅱ. 선교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1. 역사의 교훈
1) 문화의 문제인도네시아 선교는 계속된 복음과 인도네시아 전통문화와의 갈등 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음을 강조하다 보면 늘 공격적 이란 누명을 쓰게 되고, 문화에 적합하게 전하려 하면 문화로부터의 부정적인 면도 수용이 불가피했다. 전자는 선교사들이 인도네시아의 문화, 종교,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복음을 들려줄 대상들과 어우 러져 그들과 깊이있는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한 반면, 후자는 교회를 정예화하는 데 큰 장애가 되었다. 중부 자바에 두 교회가 있었는데 한 교회는 지도자가 두 아내와 살고 전통문화를 중시하고 다른 교회 는 복음만을 강조하였는데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전자의 교회를 통해 쉽게 교회에 발을 밭이고 후자의 교회를 통해 믿음이 성장했던 극단 적인 사례가 있다. 여러 아내를 가진 자를 교회에서 맞이하여 세례는 받되 장로는 될 수 없고 아내를 더 얻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선교에 있어서 문화의 문제가 심각히 다루어져야 한 다.
2) 식민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선교포루투칼 시대에서 네덜란드 식민정책으로 이어지면서 선교의 분 야도 같은 양상을 띤다. 정부가 다른 나라 선교사들에게 비자를 잘내 주지 않거나 내주어도 경제 정치적 요충지는 거의 내주지 않았다. 자 기 나라 선교사들만 그런 곳에서 선교할 수 있었다. 선교는 어떤 경 우 선교사들과 정부의 갈등이 있었지만 정부에 의해 주관되었다. 장 소, 교인수 등등까지 지정받았다. 현지인 목사들의 수도 적었고 있어 도 네덜란드에서 온 선교사들을 보조할 수 있을 만큼만 교육시켰다. 사실 그때 평신도들로 기독교인이 된 각 학교 선생님들이 교회 봉사 의 큰 역할을 담당했다. 자연히 서구 유럽의 문화들이 강요된 시기이 기도 하다. 에배의식, 신학, 술, 담배 등등....... 그러기에 선교사들은 식민치하의 앞잡이이며 첩자란 인식이 자연스레 인도네시아 사람들 에게 깃들게 되었다. 큰 반감을 산 것은 틀림없고 선교의 방해가 컸 음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도 서구의 문화(기독교 문화)를 전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들이 자주 있음은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다. 유럽 선교사들이 들어와 자기 종족이나 중 국인들만을 대상으로 선교하기도 했다.
3) 이슬람, 전통문화(종교)네달란드(기독교 국가)로부터 독립을 위한 투쟁은 자연스레 이슬람 들이 주관하게 되었으며 그렇지 않아도 철의 이슬람이라 불리는 그 들의 결속을 가속화시켰다. 전통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슬람이라 불리 는 그들의 결속을 가속화시켰다. 전통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슬람과 기 독교를 잠식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하다. 일주일에 한번 드리는 예배보다는 링일 젯상을 차리거나 경문을 외우는 그들에 비 해 별 특별한 종교가 아니라는 인식과 식민치하에서의 기독교에의 반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사회결속이 강한 이들이 그들의 전통문 화를 떠나기도 쉽지 않다. 지금도 인도네시아 법보다 자기 전통의 법 을 지키며 사는 종족들이 많다. 이런 가운데 이곳에서는 영적 대결이 불가피 하다. 그리고 큰 선교의 효과를 얻어 집단개종을 가능케 했던 요인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족장이 영적대결에서 져서 개종할 경 우에), 어떤 경우는 영적 대결자가 성령이 아닌 그들 전통종교의 영 을 사용하였던 경우가 있는데 영적영웅으로 떠받들리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
4) 전쟁으로 인한 선교적 손해종족간의 전쟁, 2차 대전, 네덜란드 포루투칼의 지역다툼 등은 많 은 순교자를 내었고 교회인력이 줄어드는 비극을 초래했다. 게다가 DETTI라는 이슬람 사람들의 인도네시아 이슬람국가화 운동과 1948 년, 1963년의 공산당 반란은 기독교 발전에 큰 저해가 되었다.

2. 선교의 여러 모델 고찰

1) 집중 아니면 분산인도네시아는 참 많은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교사들이 합하여 아 니면 들어온 선교사가 한 지역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인도 네시아 전국에 분산될 것인지....... 자바섬 근처만 해도 특히 마두라 같은 섬은 기독교가 전무한 상태 로 버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 감리교회 같은 경우 한 지역만 집중하 여 한 종족을 기두교화했다.
2) 도시 아니면 시골현재 오순절 교회 같은 두드러지게 도시에 집중해(다른 요인도 있 지만)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성경번역이 이미 되어 있고 문맹 자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이사한 자들을 쉽게 전도할 수 있다는 등의 잇점이 있다. 그러나 전도와 방법의 문제이지 잘 연구하 면 순수한 시골지역이 가능성이 높고 노시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도 시로 갈 사람들을 미리 훈련시켜 도시화=타락된 사회라는 공식을 막 을 계책을 마련해야 한다.
3) 기독교인 집단형성 아니면 그들 삶의 자리로 보냄기독교인이 되었을 때 기존의 사회적 종교적 유대가 강해 주위의 핍박이 심한 경우가 선교 역사상 많았다. 개중에는 그들의 삶의 자리 에서 격리되거나 쫓겨나는 상황이벌어졌다. 대개는 그들의 숙식을 선 교사가 책임을 지는 모델이 있다. 다른 모델은 개종자들을 그들의 삶 의 자리에 두고 그들을 훈련시켜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기독교인의 삶의 영향을 주도록 하는 모델이다. 인도네시아도 두번에 걸쳐 개종 자를 분리시켜 성장케 했던 적이 있다. 한번은 자연스레 선교사 주위 에 개종자들이 모인 경우이고 한번은 선교사가 의도적으로 그들을 모아 한 동네를 형성한 경우이다.
4) 자비량 선교사 아니면 Full Time선교사처음 네덜란드의 비호를 받지 못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온 초기선 교사들이 후원금 없이 땅을 일구거나 가축을 키우는 일들이 비일비 재했었다. 그러면서 그들 사회와 접촉이 깊어지고 복음을 전하는 기 화가 되었다.
5) 성경번역인도네시아 선교의 큰 위업중의 하나는 머라유언어(인도네시아어 전신)로 성경번역이(영어로 성경이 번역되지 50년도 채 안됨) 일찍 이루어지고 각 선교사들이 종족어로 번역에 힘썼다.
6) 간접전도농사부분에서 그리고 법원, 학교를 세워 간접선교는 큰 효과를 가 져왔다. 사실은 직접전도의 어려움의 한 탈출구였었다.
7) 아이러니일본이 1943년에서 45년까지 통치했는데 그 기간중 목사의 수가 증가했다. 그 이유는 일본 목사들이 많이 와 선교의 대열에 끼었기 때문이다. 이때 일본은 교회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는데 특히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데 기여를 했다. 이유는 그 당시 일본은 큰 힘을 기울 여 연합군과 대항해야 했기에 어느 부분에서는 분열을 꺼려했고 교 회를 오히려 그런 목적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앞으로 역사적 평가가 어떻게 나든 일본 목사들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선상 에서 이해되고 있다. 한국에서 교회를 핍박한 것과 비교하면 아니러 니가 아닐 수 없다.

Ⅲ. 인도네시아 선교의 오늘과 미래

인도네시아는 현재 약80개의 선교단체(교단선교 포함)의 약 1,500 선교사 가정이 선교활동에 임하고 있고 약 280여 교단이 있다. 미국 선교사들이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 한국선교사들이 50여 가정 사역하고 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선교는 결코 수직적 이 아니다. 그러기에 위에서 아래로 부자가 가난한 자를 돕는다는 선 교공식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급까지의 자료는 선 교사의 수는 국력과 신앙 수준에 비례해 왔다.(싱가폴이나 일본은 선 교사 수는 적지만 전체 기독교인의 수와 선교사의 수를 비교하면 우 리보다 훨씬 앞서 있음). 동양에 동양 선교사의 시대가(제3세계에 제 3세계 선교사가)열렸다고 하지만 대부분 숫자에서는 한국선교사가 지 칭되고 있다. 그만큼 한국의 선교열기는 대단하다.
다른 선교사들과 같이 한국 선교사들도 인도네시아 정부방침에 따 라 대개 교수비자로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이곳 에 스론서가 있어야 비자를 받을 수 있는데 인도네시아 신학교들이 이을 감당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신학교가 있는 교단과 함께 힘을 합하여 교회개척 등에 참여하고 있다. 선교사들은 비자의 한도내에서 만 활동이 가능하므로 직접전도, 교회개척 등은 어렵다. 그러기에 늘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앞세워 더욱 그들과 긴밀한 교제가 요구된다. 요즘들어 한인들의 인도네시아 진출이 많아지면서 공장전도를 위한 평신도 선교사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초기단계에 있다.

그러한 한국의 선교열기에 비해 고무적인 평가와 비판적인 평가가 동시에 일고 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우리가 선교에 쓰임 받아 야 하는 것만은 옳다든지 하며 명분만 내세우거나 선교 파송자의 주 장만 관철시키려 하고 피선교지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는 무조건 무 엇을 모을 수 있다는 자가당착에 바진 선교 영웅주의나 선교를 물질 로 하려는 그래서 선교사나 파송교회의 힘(POWER)을 추구하는 파 워게임형식의 선교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한국 선교사는 그들 특유의 스타일이 있어야 하겠지만 다른 나라 선교사들이 보는 한국 선교사들은 너무 독특하다는 인상이다. 단일 문화에서 자란 특유성 즉 동역이 힘들거나 자기 것을 너무 주장하거나 급한 성품들이 많이 노출되는 면이 있다(대개 서양 선교사들의 지적). 서양 선교사들이 저지른 잘못을(서양 선교사들은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즉 물질로 선 교한다든지, 문화적, 인종적 우월의식이 강하다든지(문화를 배우고 적 응해야 한다고 크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면서도)라는 잘못을 한 국 선교사들이 그대로 밟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것은 선교사들 의 식 가운데 파송 교회의 기대를 채워야 하는 강박관념도 크게 작용하 리라 본다.

1. 우리는 어떻게 인도네시아 선교에 임해야 할까?

인도네시아는 약 2,000여개의 섬, 약 300여 종족으로 이루어진 만 큼 다양한 언어의 나라이다. 선교개념이 국경선에 둘러 싸인 나라의 개념에서 한 문화, 한 언어군을 이루고 있는 종족개념으로 바뀌어 가 고 있는데 그렇게 본다면 인도네시아는 아직도 복음화가 요원한 나 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참 추수꾼이 필요한 곳 이다.
게다가 정치적인 면은 점점 어려워져 우리의 이 바램이 빨리 이루 어지도록 안타까운 마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인도네시아는 올해 (1992년) 대의원 선거가 있고 내년에 그들이 대통령 선거를 하지 않 을 수 없다. 정부는 겉으로 빤짜실타라는 국가이념에 대해 국가를 통 치해 실상은 종교에 중립적인 입장이다. 그러기에 더욱 이슬람 사람 들의 시분이 상해 있다. 그래서 현 대통령은 그 인기를 의식하여 성 지순례를 다녀오는 등 이슬람 세력에 가급적 비위를 맞추려 하고 있 다. 또 대의원으로 뽑히는 사람들이 법 등을 개조정 할탠데, 당선이 유력한 대의원들 대부분이 이슬람 교도들로 기두교에 유리하게움직 일 가능성은 없다. 지금도 교회 건축허가 등을 얻는데 어려움이 있는 데 지금보다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게다가 이슬람 사람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기독교인들이 진정한 기독교인, 명목상 기독교인으로 분류되듯이 이슬람들도 몇 그룹으로 나뉘는데 그중 극단적 이슬람들이 인도네시아를 이슬람 국가화하려 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렬광적인 자들로 기독교를 심히 미 워하고 죽어도 충성하는 그룹이다. 그들은 소수이며 대부분 지하조직 이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또 정부는 이슬람인들에게 특권을 주는데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공부하도록 이슬람교도들에게만 허용하고 있다. 그들이 나중에 정부 주요 요직에 앉게 되거나 교수요원들이 되는데 똑똑하고 요직에 있 는 그들의 목소리는 클 수 밖에 없다. 나중에 기독교 학생들이 갈 수 있는 학교는 몇 안되는 기독교 학교 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 자바섬 에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 인구분산정책을 쓰는데 아리얀자야 같은 거의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곳들에 이슬람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집어 넣고 있다. 법도 이슬람 편이다. 모든 서류를 갖추어 결혼신고를 해도 전에 기 독교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결혼성립이 되지 않는(공무원이 트집을 잡으면)경우가 있다. 이슬람교인과 기독교인이 결혼신고 하는 곳이 다르다.
또 한가지는 국가 건설에 공이 크고 지금 정부요직의 굵직한 자리 에 있는 분들중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몇 있다. 그나마 그들이 기독교 를 용감히 비호해주고 어려운 일들을 많이 해결해 주었는데 그들이 나이가 많이 들었기에 차 세대에 대를 이어 그렇게 해줄 만한 사람 들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외적인 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을 쉽게 예견 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발 붙일 수 없도록 전도의 문이 닫혀 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모든 상황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그분께 맡기고 이 위급한 상황에 위대하고 큰 일을 시 급히 열심으로 이루어 나가는 길 밖에 없다.
1) 성육신적 선교선교사의 삶이나 선교의 방법은 선육신적이어야 한다. 예수님이 본 을 보이신 것처럼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과 같이 되고, 그러므로 모 든 것은 그들 중심이어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선교가 촛점 을 잃게 된다. 인종적, 문화적, 신앙적 우월주의에 처해서도 안되며 일방통행이어서도 안된다. 오히려 인도네시아 교회가 더 뛰어 난 점 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 역사가 거의 300 년 이상이 되며 몇 신학교 교수진 등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으며 교 회의 다양성(예배 순서 등 한국교회는 획일적, 조금 틀리면 이단 시 비가 될 수 있음), 교회가 서면 의례히 지교회를 여는 버릇(?), 신학 의 다양성(전도사 심지어 평신도도 축도함, 여성의 교회내 지위) 그 리고 찬양을 통한 예배 등은 사실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다.
선교사의 삶도 성육신적인 삶이 되어야 한다. 어느 선교학자의 이 론대로 예수님은 완전한 선교 파송자(하나님)이셨으면서 완전한 피선 교자(인간)가 되셨기에 예수님을 200% 기독교인이라 부르면서 적어 도 우리 선교사들은 150%(100% 자국문화, 50% 피선교지문화 습득) 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삶속에서 얼마나 어려우나를 실감 한다. 의복을 그들과 같이 입어도, 폐복(손으로 변을 본후 닦는 행위) 를 해도 그들의 음식을 먹어도 여전히 한국적인 사고가 튀어나와 곤 혹스러울 때가 많다. 은행 시스템이 다를때, 가게에서 서비스가 안좋 을 때 등등 한국적인 것과 다른 것을 만날 때마다 여지껏 쌓아 놓은 성육신적 삶이 무너짐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이곳 문화가 열등해 보이고 나중에는 잘못 되었다고 생각이 들어 화까지 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성육신적인 삶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문제의 해결점을 형제(한몸)의시거에서 찾아 보고자 한다. 그들 과 같이 되고자(ONE OF THEM) 했지만 그것이 안될 때 그 실패감 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 내가 인도네시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거짓처럼 느꺼져 그렇지 못할 때 죄책감가지 느끼게 된다. 그러나 내가 그들과 진정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나 그들의 친구가 되 고 그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그들을 이해하며 노력하고 그 들에게 좀 더 예를 갖추고 그들을 대하는 것이 더 정직한 행위 같다. 예수님의 성육을 포기한 자기 방어적 친구가 아닌 예수님의 성육을 날마다 닮기를 사모하는 그리고 준비하는 친구의 자세가 필요하다.
2) 동반자적 선교를 통한 자립으로 이끔위의 사실은 우리를 자연스레 동반자적 선교로 이끈다. 누구의 힘 이 세고 약하고 누가 누구를 돕고의 개념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필 요로 하는 유기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가끔 선교사와 현지간에 이런 동반자적 형제로서의 지체로서의 의식보다는 자립적인 개념으로 선 교가 이루어지는 현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사역들을 통해 인도네시 아 교회가 자립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인도네시아 성결교단의 경우 거의 20년 선교에 45교회(교회 되지 못한 30개의 전도대팀) 가 운데 4교회 정도가 지립한 상태이다. 전체 인도네시아 교회들도 자립 이 시급하다. 여지껏 일반적인 선교, 제국주의적 선교가 늘 받기만 하는 데 길들여지고 그런 전통을 세워 버렸다. 많은 교역자들이 지금 도 스폰서가 없으면 교회를 개척하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자립을 향한 전략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은 돈으로 선교하지 않는 것을 말 하며 빨리 인재를 발굴해 키워서 모든 권한을 인도네시아 사람들에 게 넘겨줌을 말한다.
3) 모든 부분에서의 시급한 이양인도네시아 정부는 모든 분야에서 외국인 인력을 인도네시아인 인 력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중 기독교 부분에서는 가장 늦고 있다. 정부의 방침이 아니더라도 현지교회를 도와 이 이양 작업은 하루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정부방침에 의해 모든 기독 교 조직의 장은 인도네시아인으로 대치되었지만 실질적인 면에선 아 직도 요원하다. 지식의 면에서도 능력 있는 자들을 길러내어 자립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4) 신학교 사역인도네시아 신학교육 사역은 중요하다. 교역자가 태부족이고 시골 의 사역자들은 그나마 연장교육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교회를 개척해 나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곳 상황에 맞게 좋은 지도자를 많 이 배출해 내는 사역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5) 시골지역 사역과 도시사역에 대한 연구시골지역은 보수적이고 전통종교와 사회적 결속이 강해 어려운 면 도 있지만 순박하고 열려진 상태이다. 가난과 병과 낮은 교육으로 고 난 당하는 지역이기에 더 복음이 필요하다. 지금 인도네시아는 산업 화시대로 접어 들면서 자연히 도시화현상이 일고 있으며 일러나리라 예상된다. 그때를 대비해 시골을 더 복음화해서 그들이 도시로 갔을 때 도시의 세속적인 환경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도록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도시에서는 이들 현상이 두드러지기 전 준비에 철저해 야 한다.
6) 인도제시아 지역적인 연구와 이슬람 연구 필요인도네시아는 늘 기독교 인구를 10% 내외로 발표한다. 그러나 실 제로는 더 많다. 그러나 그런 숫자가 알려질 경우 이슬람의 자존심을 건드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더욱 조심하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 도 10%만 가지고도 거의 2천만이 된다. 또 지도를 놓고 봐도 반을 갈라 동쪽은 기독교가 강하고 서쪽은 이슬람이 강해 지도상 반은 그 래도 기독교가 차지한 듯 보인다. 그러나 교회와 이슬람 사원의 숫자 만 비교해 보아도 비교가 되지 못할 만큼 교회의 숫자가 적음을 본 다. 그것은 아직 인도네시아에 복음이 너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다 시 선교를 종족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 보지도 못한 종족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그런 지역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면 서도 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이들에게 몇번의 전도로 끝을 내 려는 우를 범해선 안되겠다. 성령의 강한 능력에 의지하며 사랑하는 것이 이슬람 선교에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자타가 공언한다.

2. 인도네시아 지도자들이 바라는 한국선교사의 상

이것은 지난 1991년 10월 말 한인선교사 수련회에서 "어떻게 선교 의 멍에를 같이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인도네시아 지도자들 이 발표한 한국 선교사들을 향한 바램이다.
1) 선교사의 장애물적응의 어려움 : 한국 선교사들이 인도네시아 언어, 종교, 문화 등에 적응을 못하면 그 선교사가 하는 일은 한국적인 것일 수 밖에 없음을 강조. 선교사 자신의 정확한 이해 : 일을 많이 하려 하지만 어느 일을 하여도 결정된 정확한 정보와 이해 필요. 선교사란 자기이해 필요.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데에(편지쓰기, 자리 메꾸는 데 만족, 외국에 소풍온 기분) 만족하고 말 것임. 선교사는 한 교회의 목회자가 안다. 좀더 넓은 안목이 요구됨.
2) 선교사의 역할전도와 교회개척 : 인도네시아에서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 많은 사람을 위한 노력 요구. 동역 관계 : 주 안에서 하나됨.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함께 일 함. 덧붙여 기도의 동역과 헌금의 동역을 요구.
3) 시급한 지식의 이양 : 이것 위해 신학교 강화, 시골지역 목회자 교육, 성경학교 운영 등 요구.4) 신학교 질 높이는 작업 필요 : 몇몇 권위있는 신학교가 있는가 하면 많은 군소 교단의 신학교도 있음. 그런 반면, 인도네시아 전반 적인 분위기가 교수층 자체로도 석사학위를 줄 수 있는 분위기이기 에 선교사를 전체 분위기에 맞게 그리고 질을 더 높이기 위해 석사 학위보다는 높은 학위가 요청됨. Th. M정도 이상 요구됨. 사실 선교 사 잔신의 자질을 높이고 선교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공부도 필요하다.
5) 시골지역 목회자나 지도자 질 높이는 길
6) 교회 비젼을 닦아주는 작업 : 한국교회의 비년을 나누어주고 사실 인도네시아에 여유있는 교회들이 있는데 그들이 선교에까지 참여 하도록.인도네시아는 가난에서 시작했다든지 고난을 맛보았고 맞고 있으 며 성장을 맛보았고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과 더불어 전체인구의 10%이상의 기독교인을 갖고 있는 교회라는 등등의 면에서 한국교회 와 흡사한 점이 많다. 이 나라가 복음의 기치를 다시 한번 높이 들고 세계선교의 대열에 설 때를 기대한다. 이 일은 시급하며 절실하다. 그리고 가능하다. 이 지대한 인적, 물적 자원의 나라! 복음의 가능성 의 나라! 이 나라가 복음으로 깨는 날 세계 복음화는 앞당겨지리라.

출처 :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강신오 선교사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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