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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08-01-26
작성자 관리자 (admin)
예수님의 말씀(132. 좋은 사람(2) - 의 )
본문 : 마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기독교는 신비적인 면과 실천적인 면이 있습니다. 신비적인 면은 매우 만족스럽고 기쁘고 소망이 넘치는 반면 실천적인 것은 힘들고 어렵고 희생적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천적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실천적입니다. "의를 행하는 자는 의롭다"라는
기독교의 핵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신비적인 면만 추구하는 신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기독교는 교리를 많이 아는 자들에 의해서 유지된 것이 아니고 적은 진리이지만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유지되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로만 사랑을 외치고, 말로만 구원을 가르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 세상을 만드실 때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여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에게 생명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1780년 5월 뉴잉글랜드에서 이유를 알 수 없이 하늘이 어두워지는 돌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시내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세상사를 다 버리고 오로지 기도와 선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마침 커네티컷 주의 의회가 개회 중이었습니다. 의회가 한참 중반전에 들어왔을 때 하늘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회의를 연기하자는 동의가 있었습니다. 의원 중 한 사람이 동의하지 않고 일어나 발언했습니다. "의장, 오늘이 최후의 심판의 날이든지 아니든지 상관할게 아닙니다. 만일 심
판의 날이 아니라면 연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만일 심판의 날이라고 해도 우리의 의무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촛불을 켜고 회의를 진행할 것을 제의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닥쳐도 등불을 준비하고 켜놓은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님은 저에게 많은 공부를 시키거나 뭘 많이 해 준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님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다리를 절으시는 분인데 절뚝거리면서 강원도로 옷 장사를 다니시면서 저를 키워 주셨습니다. 저는 1주일에 한번 정도 아버님 얼굴을 봅니다. 마지막 돌아가시기 직전 까지 강원도 어느 장터에서 옷을 파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 때는 저희 아버님이 암 말기 환자 이셨습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편히 쉬셔야 할 그 때에도 자신이 하시던 일을 계속 하셨습니다.

좋은 사람이란 하나님 앞에 돌아와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많은 왕들이 처음과 나중이 다른 것을 봅니다. 솔로몬도 처음에는 1천 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우상 숭배와 세상 향락으로 타락했습니다. 열왕기하 9, 10장에 보면 북이스라엘의 10대왕 예후가 나옵니다. 예후는 아합왕과 이세벨이 만들어 놓은 바알 우상들을 타파했습니다. 그 때 그의 열심은 친구인 여호나답에게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왕하10:16) 한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론은 왕하 10:31 에서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라고 합니다. 좋은 사람이란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좋은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수많은 고백을 하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기도한 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 안 되는 것입니다.

올림픽에서 금매달을 딴 이원희 유도 선수가 있습니다. 그의 별명은 "한판 승의 사나이입니다." 종료 9초를 남겨놓고 이기고 있었습니다. 그냥 시간만 끌면 이기는 것인데 9초를 남겨놓고 한판 승으로 이겼습니다. 순식간에 넘어뜨리기 때문에 상대편이 왜 졌는지 모른답니다. 이원희 선수에게 기자가 물어보았습니다. 왜 9초를 남겨놓고 위험하게 한판 승을 걸었냐고 했습니다. 그 때 그가 말하기를 "심판이 종료를 선언할 때까지는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끝났다고 선언할 때까지는 우리의 싸움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역사가들에 의하면 3천 동안 3,300건의 전쟁이 있었답니다. 이 땅에서는 항상 전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사람이란 선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느냐 선하게 산 사람이 구원을 받느냐하면서 격론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의 기준이 우리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잘 해 주면 좋고 선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어떻겠습니까?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나님께 잘하는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사람입니다.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선해야 합니다.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6-17) 하신 것은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제일 싫어하십니까?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한 마디로 한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입니다. 나에게 조금 잘해주는 사람이 좋고, 선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우상 숭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배신한 행위로 제일 악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 문제를 꾸준히 지적하십니다.

"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0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렘 2:19-20)
그러면서 하나님은 돌아오기를 촉구하는 말씀을 계속 하시는데 이런 표현이 제일 마음에 와 닿습니다. 사람은 엎드러지면 일어나고, 길을 떠나갔으면 돌아오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오지 않는다(렘8:4)는 것입니다. 그리고 렘4:7에서는 철새들로 말씀하시는데 새들도 자기들이 이동할 시기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백성은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안타까워하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된 것을 가리켜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고 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하 8:15에서 "내가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하였다"고 고백하고 있고 그래서 사무엘상 24:11에서도 다윗은 사울에게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자는 정직해야 합니다. 공의를 행해야 합니다. 떳떳해야 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도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며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위선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자는 결코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해야 합니다.

은혜 받고 의를 행하는 자는 환란과 핍박이 닥쳐와도 믿음으로 이겨 나갑니다. 시 119:121절에 보면 "나를 압박하는 자에게 붙이지 마옵소서"하였고 또 122절에서도 "교만한 자가 나를 압박하지 못하게 하옵소서"하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환란이 닥쳐오면 넘어지고 좌절하여 쓰러지고 말았지만 은혜를 받으니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온다 할찌라도 절망하지 아니하고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공의를 행하였으니, 내가 하나님 앞에 떳떳하오니" 이 시련을 물리쳐 줄 것을 믿고 기도로 이겨내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많은 시련이 있습니다. 물질로 인한 고통, 건강으로 인한 고통, 사업으로 인한 시련,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로 인한 시련 그리고 자녀들의 문제로 인한 고통 거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겪어야 하는 또 다른 시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믿는 자가 더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은혜 받고 의를 행하는 성도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핍박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주님은 이 시간에도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119:123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피곤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피곤할 정도로 성경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27절에도 보면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은혜 받은 자는 그래서 의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금덩어리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한 여인이 정원에서 열심히 일하는 한 사람을 보고 정원사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병원의 원장이었습니다. 바로 슈바이쳐 박사였습니다. 그는 "왜 의사가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나는 말로써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답니다.
유대의 한 동네에 무조건 큰 소리를 지르는 빵 가게 주인이 있었습니다. 물론 기도도 큰 소리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구워내는 빵의 크기는 아주 작아 사람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그러던 어 날 랍비를 찾아가 상담을 했습니다. "나는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사람들은 날 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랍비는 "당신의 목소리는 줄이고 빵의 크기를 늘리십시오." 하였습니다.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 일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을리 없습니다. 다윗이 고백하는 시 119:136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데 다른 사람까지 생각할 일이 없겠지요.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그리고 말씀을 따라 살아야 다른 사람의 구원에 관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네 코가 석자인데..."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나 자신의 일이 크고 중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의 일이 없어서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마지막으로 기억합시다. 그러나 우리의 의는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의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을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했으며, 로마서 3장 21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주어진 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다면 이것이 축복입니다. 또한 천국을 약속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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