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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해외일반 > 등록일 2007-11-28
작성자 이만정 (imanchung)
아프가니스탄 바로알기 (3)
시리즈 3 : 아프간의 역사 - 중세, 근대사

아프가니스탄 바로알기 (3)


시리즈 3 : 아프간의 역사 - 중세, 근대사


  • 호탁왕조(Hotaki dynasty)


    페르시아의 사파위왕조는 칸다하르 지역을 지배하면서 수니파 무슬림이었던 거주민들을 시아파로 개종시키려 하였다. 이에 반발한 미르 와이즈 호탁(Mir Wais Hotak, 1673-1715)이라는 파쉬툰 길자이족(Ghilzai, 파쉬툰족 내의 큰 주류 종족 중의 하나) 사람이 1709년에 사파위왕조의 칸다하르 지역 총독이었던 구르긴 칸(Gurgin Khan)을 무찔렀다. 미르 와이즈는 1715년까지 칸다하르 지역을 통치하였고 사후에는 그의 아들 미르 마흐무드 호탁(Mir Mahmud Hotaki, 1697-1725)이 정권을 계승하였다. 1722년에 미르 마흐무드는 아프간 군대를 이끌고 이스파한(Esfahan, 현재의 이란)을 공격하였다. 여러 도시들을 점령하면서 그는 자기 자신을 페르시아 왕으로 자처하였으나 대부분의 이란 현지인들은 이 아프간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규모의 민간인 학자, 귀족, 왕족들이 학살 당하게 되었다. 결국 이 호탁왕조는 페르시아의 나디르 샤(Nadir Shah, 이란의 Afsharid dynasty왕조를 세운 왕)에 의해 멸망당했다.


  • 두라니제국(Durrani Empire)


    아마드 샤 압달리
    1738년에 나디르 샤는 대부분이 파쉬툰 압달리(Abdali, 파쉬툰의 주류 종족중의 하나로 후에 두라니로 이름을 바꿈)족으로 이루어진 그의 군대를 이끌고 칸다하르 지역을 정복하였다. 같은 해에 그는 가즈니, 카불, 라호르까지 점령하였다. 그러나 나디르 샤는 1747년 6월에 그의 조카였던 알리 콜리(Ali Qoli)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나디르 샤의 사후에 나디르의 군사령관이며 호위관이었던 아마드 샤 압달리(Ahmad Shah Abdali, 1723-1773)는 전체부족회의(로야 지르가, Loya Jirga,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나라에서 여러 부족의 원로들이 모여 중요한 내용을 결정하는 회의. 원래는 파쉬툰들의 회의를 의미했으나 근래에는 다른 종족들도 참여한다)를 소집하였다. 이 때 칸다하르에 모인 부족민들은 하마드 샤를 그들의 왕으로 추대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근대 아프가니스탄의 설립자로 간주되곤 한다. 취임식 후에 그는 자기 가문의 이름을 “압달리”에서 “두라니(Durrani)”로 바꾸었다. “두르(Durr)”는 페르시아어로 진주를 의미한다.


    슈자 샤
    1751년에 아마드 샤 두라니와 그의 아프간 군대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전 지역을 정복하고, 파키스탄지역, 호라산 지역 및 이란의 코히스탄 주 지역 그리고 인도의 델리까지 점령하였다. 그는 1772년 10월에 왕위를 그의 아들 티무르 샤 두라니(Timur Shah Durrani, 1748-1793)에게 물려주고 그의 고향이었던 칸다하르의 마루프(Maruf) 마을에 내려가 사망하였다. 티무르 샤는 그의 왕권계승을 달가와 하지 않던 세력가들에 의한 폭동과 내란에 시달리다가 결국 1776년에 수도를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티무르 샤의 사후 그의 다섯 번째 아들 자만 샤 두라니(Zaman Shah Durrani, 1770-1844)가 왕이 되었으나 티무르 샤의 다른 아들들 즉, 마흐무드 샤(Mahmud Shah), 슈자 샤(Shuja Shah), 술탄 알리 샤(Sultan Ali Shah), 아유브 샤(Ayub Shah)들 끼리 서로 왕권을 빼앗기 위해 싸우면서 두라니왕조는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 유럽세력의 침략

    1차 영국-아프간 전쟁

    도스트 모함메드 칸
    러시아의 팽창정책을 견제하려는 영국과 아프가니스탄의 갈등은 Anglo-Afghan 전쟁에서 정점에 달하였다. 당시에 러시아는 꾸준히 코사서스, 키르키즈, 투르크멘 지역을 흡수하면서 영토를 넓히고 남하하고 있었고, 영국은 펀잡, 신드, 카쉬미르지역까지 장악하면서 북상하고 있었다. 영국의 입장에서 위협은 아프가니스탄의 분열된 왕조들이나 이란, 프랑스가 아니라 러시아였다.


    이 시기에 아프가니스탄은 두라니제국이 몰락하면서 더욱 분열되고 혼돈상태에 있었다. 와중에 도스트 모함메드 칸(Dost Mohammed Khan, 1793-1863)은 카불의 통치권을 장악하면서 바락자이(Barakzai)왕조를 세웠다. 어려움에 처해 있던 두라니왕조의 슈자 샤(Shuja Shah)는 친영정책을 펴고 영국과 협력조약을 맺었다. 영국은 도스트 모함메드를 격퇴하면서 슈자 샤가 왕권을 되찾도록 도와주었으나 슈자 샤는 영국군 없이 왕권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에 영국군은 카불까지 진격하여 주둔하였으나 현지인들은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1841년에 도스트 모함메드 칸의 아들 모함마드 아크발 칸(Mohammad Akbar Khan)이 아프간 부족들과 힘을 모아 세력을 키우는 가운데, 카불에서 폭동이 일어나 영국장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평화협상도 결렬되었고 엘피스톤(William George Keith Elphinstone, 1782-1842)이 이끄는 영국군은 철수하기로 결정되었다. 이 때 눈덮힌 산길로 퇴각하는 영국군을 길자이족(Ghilzai, 파쉬툰의 주류 종족중의 하나) 전사들이 습격하여 군인과 민간인을 완전히 몰살시켰다. 이 전쟁(First Anglo-Afghan War)은 영국군의 완전한 패배로 끝났다. 이 때부터 아프가니스탄은 외세에 대한 사나운 저항으로 유명해졌다.


    2차 영국-아프간 전쟁


    아미르 시르 알리
    1843년 모함마드 아크발 칸은 그의 아버지 도스트 모함메트를 왕좌에 다시 세웠다. 그는 마자리 샤리프, 쿤두즈, 바닥샨 지역를 다시 정복하였으나 페샤와르 정복에는 실패했다. 1855년에 도스트 모함메드는 영국과 페샤와르 조약을 통해 서로의 영토를 인정하고 동맹을 맺었고 헤라트를 점령하려 침략한 페르시아군을 영국과 힘을 합해 물리쳤다. 도스트 모하메드의 사후에 그의 셋째 아들 아미르 시르 알리(Amir Shir Ali, 1825-1879)가 왕권을 계승하였으나 그의 형제들과 왕권 다툼에 말려들었다. 시르 알리는 초반에는 영국의 지원을 받았으나 점차 관계가 나빠지고 있었고, 러시아가 계속 남하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이에 영국에 사절단을 보내어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유럽에서의 영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1878년의 베를린회의에서 종결되자 러시아는 그 눈을 중앙아시아로 돌렸다. 시르 알리는 원치 않았으나 무력으로 카불에 들어오는 러시아 사절단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에 영국도 자기 사절단을 카불에 보내겠다고 요구하였으나 시르 알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영국은 4만여명의 군대를 이끌고 두 번째 Anglo-Afghan 전쟁을 일으켰다. 시르 알리는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지원을 받지 못하였고 영토의 많은 부분을 영국에 빼앗기게 되었다.


    시르 알리를 계승한 아들 모함마드 야쿱 칸(Mohammad Yaqub Khan, 1849-1923)은 변경지역을 영국에게 양도하고 남은 아프가니스탄 땅이라도 지키고자 1879년에 영국의 카바그나리(Pierre Louis Napoleon Cavagnari, 1841-1879)와 평화조약(Treaty of Gandamak)을 맺었고 그 외교주권을 영국에 넘겨주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같은 해 9월에 일어난 폭동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이에 프레드릭 로버트(Fredrick Robert)는 영국군대를 이끌고 다시 침략하여 10월에 카불에 입성하였다. 카바그나리 살해공모의 혐의를 받아 야쿱 칸은 폐위되고 압둘 라흐만 칸(Abdul Rahman Khan)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압둘 라흐만은 야쿱 칸이 서약한 간다막 조약을 재확인하였다. 이에 아프가니스탄은 보호라는 미명아래 외교주권을 영국에 넘겨주게 되었다.


    출처 : 영문판 위키페디아
    미션매거진 기자 정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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