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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동북아시아 등록일 2007-11-26
작성자 관리자 (admin)
탁구선수에서 선교사로 거듭나 몽골에 구원의 씨앗 심어
우리 나라 탁구 역사상 황금기를 이끈 양영자. 그가 현정화 선수와 함께 88서울 올림픽에서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었을 것 같던 중국이라는 골리앗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획득한 경기는 우리 나라 스포츠사에 잊지 못할 명장면 명승부로 기록되어 있다.

양영자 선교사를 만나기 전에는 녹색 테이블에서 시종 강인한 눈빛을 던졌던 냉철한 승부사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보니 봄 햇살보다 더 따뜻한 미소가 눈부셨다. 20여 년이 흘렀지만 선수 때의 모습 그대로인 양 선교사에게 선수 때의 활약을 이야기 하니 손사레를 친다.

“길을 다니면 저를 알아보고 사인을 해달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신기해요. ‘언제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실감이 안나요. 탁구 선수로서는 완전히 죽고 하나님의 자녀로, 선교사로 다시 태어났어요. 몽골 시골에 처박혀서 몇년 동안 선교사로, 선교사의 아내로만 지냈어요”

라켓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그가 선교사가 된 데에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다. 알려지지 않은 사연 속에는 선수 시절부터 그를 붙들어주신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다.

1984년 갑자기 발병한 간염이 그의 선수 생명을 끝낼 것만 같았다. “조금만 뛰어도 피곤해졌어요. 하루를 무리하면 3일을 쉬어야 할 정도였는데 그 몸을 가지고 국제대회에 나가니 계속 패배 뿐이었죠. 아무리 다시 마음을 먹어도 마음과 달리 자꾸 지니까 국가대표팀에서 탈락됐어요. 86년 아시안게임에 나가려면 다시 선발전을 치뤄야 하는데 시합도 많고 까마득한 후배들하고 해야 한다는 것에 자존심도 상했어요. 운동을 그만 두고 싶었지만 잠언 24장 16절을 통해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도전했죠”

양영자 선교사는 차례 차례 선발전을 거쳐 아시안게임 대표가 되어 현정화 선수와 환상의 복식조를 이뤘다. 그때 그가 포기했다면 올림픽에서 그가 보여줬던 감동의 드라마는 없었을 것이다.

승승장구 하던 그의 인생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은퇴와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우환이 겹치며 우울증이 찾아왔다. “어릴 적부터 해결되지 못한 상처들이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어요. 어머니가 하늘나라 가시면서 확 느껴진거죠. 2년정도 갔는데 제 인생에 꼭 필요한 훈련이었어요. 주변의 사람들이 정리되고 나에겐 하나님 밖에 없다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간 결과, 내적 성숙을 이뤘고 우울증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운명처럼 남편을 만났다. 먼저 선교를 준비하고 있던 남편을 따라 그도 선교사가 되었다. 탁구선수 양영자가 아닌 선교사 양영자로서의 새 삶이 시작된 것이다.

1997년 처음엔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2년 동안 언어훈련을 받았다. 이후 찾아 간 곳은 수도에서 450㎞ 떨어진 고비 사막의 오지 생산들이었다. 고비는 황사의 발원지이다. “모래바람이 불면 밖에 나가지를 못해요. 창문 옆에 모래가 수북히 쌓일 정도예요” 한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열악한 자연환경과 싸우면서도 선교사의 사명과 자신만의 재능을 가지고 7년을 사역했다. 올림픽금메달리스트의 탁구 실력은 몽골에서 복음을 담는 귀한 그릇이 됐다. 현지 교회를 세우는 한편 몽골의 3개 탁구 클럽을 이틀씩 순회하면서 탁구를 가르치고 토요일에는 한자리에 모아 예배를 드리고 팀별 시합을 벌였다. 물론 푸짐한 선물도 준비해서 양 선교사도 즐겁게 사역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부터 완벽한 선교사의 면모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도 사람에게 상처받고 실망하는 일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약속을 안 지키고, 속이고 할 때 많이 힘들었죠. 저희 집에 불쑥 찾아오는 것도 싫었어요. 마음의 문이 확 안열리더라구요. 그래서 잘 섬기지 못했어요” 그러던 양 선교사에게 2000년에 육체적 시련이 다가왔다. 갑자기 얼굴 한쪽에 마비가 온 것. “립스틱을 바르고 입술로 비비는데 자꾸 엇갈리는 거예요.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눈이 안감겼죠. 감각이 없어지고, 왼쪽 얼굴이 아파서 혹시 이가 아파 그러나하고 치과를 갔는데 이는 문제가 없었어요. 신경외과에 가보니 바이러스로 인한 안면근육마비로 진단이 내려졌어요” 찬바람을 쐬지 말고 쉬라는 처방을 받았다.

양영자 선교사는 시련 가운데 더욱 말씀을 의지했다. 그 때 고린도후서 1장 4절 말씀을 보면서 “아! 내가 이 아픔 통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양 선교사는 그때부터 진짜 선교사로서의 사역이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다. 활짝 열린 마음으로 현지인들을 찾아가서 기도해주고 그들의 아픔 내 아픔처럼 나누며 사역할 수 있었다고.

현재 양 선교사의 상태는 좋아져서 아무런 이상이 없어보인다. 오직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왼쪽 눈밑에 덜 풀린 것같은 뻑뻑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오히려 그 불편함이 그 때의 어려웠던 상황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각나게 하는 표적으로 남게 되었다.

1년 6개월의 안식년이 끝나고 선교지로 돌아가면 내몽골에서 청소년 문화센터를 열 계획이다. “우선 작게 시작하려고 해요. 컴퓨터교실, 영어교실, 탁구교실을 개설할 예정이에요. 제가 사역하는 곳은 낙후된 지역이라 청소년들이 누릴 문화시설이나 놀 만한 곳이 없어요. 청소년문화센터가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정신을 심어주는 문화공간으로 활약했으면 좋겠어요. 복음적으로도 좋은 접촉점이 되어서 청소년들이 그곳에서 예수님을 알게 되길 기도합니다” 양 선교사는 이를 위해 안식년이지만 치유·상담과 성경 공부로 바쁘게 살고 있다.

앞으로도 사람들을 회복시켜주고 구원에 이르게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양영자 선교사.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환경은 열악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에서 구원을 보는 일이 보람되고 기쁘고 정말 행복해요”라며 몽골을 향한 그의 비전과 소망을 이야기했다.

출처 : 순복음가족신문 4월 16일 게재 / 글 복순희 사진 김용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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