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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학자료 > 강의안 등록일 200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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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에 대한 반성 및 전망
지난 9. 11 미국 테러사건 이후로 이슬람에 대한 정보들이 일반인들에게 매우 가까이 다가왔다.
빛세계선교회 2005 IMTC때 강의하는 대구 실로암교회 이광호 목사

지난 9. 11 미국 테러사건 이후로 이슬람에 대한 정보들이 일반인들에게 매우 가까이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에 대해 생소하게 여길때도 교회는 이전부터 이슬람 선교를 위해 다각적인 활동을 해왔다. 이러한 상황들을 접하며 이슬람 선교에 대한 반성 및 전망을 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흔히들 이슬람 선교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이슬람 세계 가운데서 살고 있는 선교사들이 특별히 어려운 이유는 역사 가운데 있었던 상호 적대적 감정과 이슬람이 기독교 이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의 진리를 모방하고 있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코란에 대거 등장하게 된다. 기독교에서 중요한 인물이라 인식되는 거의 대다수 사람들이 이슬람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솔로몬, 예수 등이 그렇다. 특히 예수는 이슬람에서 마호메트를 제외한다면 지금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인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적 관계]

AD 7세기 초반 이슬람이 등장하던 초기부터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서 저항하는 종교가 된다.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 있던 유대교 세력과 갈등을 빚게 되고 기독교에 대해서도 갈등관계에 놓이게 된다. 특히 632년 마호메트가 사망하고 나서 이슬람 세력이 당시 동로마제국의 영토를 잠식해 들어갈 때 기독교는 사막으로부터 밀려드는 이슬람 세력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기독교 영토를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1세기 말에 일어난 십자군 운동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적대적 관계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슬람에 의해 성지를 빼앗긴 기독교의 성지 탈환운동이 곧 십자군 전쟁이다. 그 때는 이미 팔레스틴을 비롯한 성지들은 이슬람의 땅이었다. 아브라함, 다윗, 솔로몬과 관계있는 땅이요 예수와 연관된 땅이 이슬람의 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땅은 악한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에 의해 유린을 당하다가 알라의 은총을 힘입어 이슬람이 회? 므?땅이다. 그런데 서구의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앞세워 자기의 땅이라며 다시 침범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악한 서구 기독교 세력의 침략이었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서구의 십자군 운동에서도 알라의 은총으로 기독교 세력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그 후 6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 땅은 이슬람의 성지로 인정되어 오던 터였다. 그러던 중 19세기 말이 되면 유대인들의 시오니즘(Zionism) 운동이 일어나 다시 팔레스틴을 회복할 꿈을 키워가게 된다. 19세기 후반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서구의 과학문명이 이슬람을 위협하다가 급기야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당시 이슬람의 종주국 역할을 하던 오스만 터키가 전쟁에 패망함으로써 팔레스틴을 서방의 기독교 세계에 넘겨주게 된? ?/FONT>.

현대사 가운데서 이슬람의 짓밟힌 자존심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절정에 달한다. 팔레스틴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독립하게 되고 뒤이어 이슬람의 성지 예루살렘을 기독교 세력에 빼앗기게 된다. 이스라엘의 독립에는 기독교 국가인 영국의 역할이 컸으며 이슬람의 눈에 비치는 유대교는 기독교의 한 분파일 따름이었다. 그들이 볼때는 역사속에 잠복하고 있던 십자군 운동이 고개를 들면서 급기야 팔레스틴에 이스라엘이 건국됨으로써 서구 기독교 세력의 교두보가 마련된 것이다. 이 후 이슬람의 눈에 비쳐진 것은 신 십자군 운동이었던 것이다.

1991년 걸프전은 종교전쟁이었다. 적어도 이슬람의 숨겨진 시각은 그러하다. 당시 다국적군이라는 군대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등 모두 기독교 세력이었던 것이다. 정치가들이나 지도계층의 인물들은 다양한 목적에 따른 나름대로의 이해를 했겠지만 적어도 이슬람의 잠재된 사고들은 그러했다. 다국적군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뭉쳐진 군대가 아니었으나 그들의 눈에는 충분히 그렇게 비쳐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슬람선교에 있어서 교회의 반성]

서구 기독교는 사실상 이슬람을 정치적 갈등 대상으로 생각지 않는다. 정치가들이나 경제인들은 자기의 목적으로 인해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그들의 땅을 정복하는 것이나 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것을 목적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적잖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시대에 들어와 성지순례는 보편화 되었다. 오늘날은 해외여행이 어느정도 보편화되었지만 불과 수십년 전만해도 상상하기 조차 어려웠다. 해외여행의 보편화는 교통과 통신, 경제적인 여건이 현대적으로 발전한 후의 일인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서구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일반 성도들은 이스라엘이나 소아시아 지역을 방문한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시대에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한번쯤 그 지역을 다녀올 수 있을 만큼 보편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만큼 이스라엘이나 소아시아 지역 등을 다녀오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별 생각없이 성지를 방문하지만 이슬람에서 볼때는 그것이 기독교인들의 '탐심'에서 일어난 반응이다. 우리가 성지라고 하는 지역들은 모두 이슬람과 이해관계가 있는 땅이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이 성지를 방문하는 것은 그 땅이 자기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땅은 성경에 나타난 지명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들 가운데 그곳을 정복할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지만 이슬람의 입장에서 보아, 그 땅을 자신의 종교 혹은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기독교! 인들이 있다는 사실은 예사문제가 아니며 거기에는 어떤 불순한 '탐심'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독교인들의 구체적인 종교적 대응방법이다. 1990년대 초반 이래 많은 이슬람 선교단체들에서 '역라마단 운동'을 하고 있다. 금년에도 11월 17일부터 한달간 이어지는 모슬렘의 금식기간에 맞추어 기독교에서는 특별 기도회를 계획하고 있다. 역라마단 운동이라 일컬어지는 이 기도회 안내책자는 35개 이상의 언어로 출간되고 있으며 2천만명 이상의 교인들이 이 기도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필자는 우리 시대에 들어와 시작된 역라마단 운동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 여긴다. 다수의 이슬람 관련 선교단체들과 이슬람 선교관심자들이 그 일을 먼저 시작했다. 이슬람의 라마단은 그들의 생각에 성스러운 금식의 달인데 기독교인들은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이슬람을 위한 특별기도를 하며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의도가 나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식으로 기도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를 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속된 말로 맞불지피기 처럼 오해될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불교의 사월 초파일날에 맞추어 기독교에서 불교도들을 위한 대대적 기도회를 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는 종교적 마찰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되 나팔을 불며 광고를 하는 가운데 떠들썩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 리의 그러한 자세가 그들의 마음문을 닫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자기들을 위해 기도하는 줄도 모르는 사이 우리가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쩌면 그들 가운데 감격해 하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슬람에서 생각하는 기독교와 우리의 자세]

기독교인인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것이 있다. 모슬렘들 중 다수는 기독교에 대해 상당한 오해를 하고 있다. 그들은 서구인과 기독교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 문화란 곧 서구문화를 일컫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에는 서구인은 기독교, 동양인은 불교라는 식이다. 모슬렘들 중 다수는, 기독교인들을 상종해서는 안될 악한 자들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물론 그들은 그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원래 동양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라 면전에서 면박을 주거나 당황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사람 처럼 동양인이 기독교인이라면 어떻게 동양인이 기독교인일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의 생각에는 얼굴이 희고 코가 큰 노랑머리를 가진 사람이 기독교인이지 동양인은 원래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의 옛날 사람들이 선교사라 하면 서양인을 생각했던 것과도 같다. 얼굴 피부가 새까만 아프리카 사람이나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 선교사라 하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도 흡사하다.

극단적인 이슬람 지성인들은 동양의 기독교인들은 서양 기독교 세력의 용병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세계정치와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서양 기독교인들에게 돈을 받거나 정신적인 어떤 영향을 받고 기독교인이 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좀 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이슬람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려면 그들 앞에서 종교적 정복자의 모습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믿는 종교인으로 바꾸려는 듯한 자세를 보여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단지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줄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가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되었을 때 그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물어올지도 모른다.


[마무리]

세계는 지금 인간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전투적 정황가운데 놓여있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온 세계가 그러한 분위기기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슬람의 우위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아가 경제적 과시를 할 것도 아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이슬람의 사람들이다. 우리의 목적은 그들을 서구의 종교를 가지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의 눈과 귀가 열리기를 바랄 따름이다. 우리가 목적하는 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 게 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경계심을 덜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될 수 없다.

이번 초가을 미국이 테러를 당한 이후 부터 시작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력과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구하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를 바라보는 범 이슬람 세력 사이에는 이미 종교적 갈등이 야기 되었다. 그것을 종교적 갈등으로 볼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쉽게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일반적인 측면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인식될 수도 있다. 일본이나 한국 같은 나라는 서양인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편에 서 있다. 물론 테러 세력을 응징한다는 훌륭한 명분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시각에는 단순히 그렇게 비쳐지지 않을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적극적으로 응징하고자 하는 국가들은 대개 기독교 국가들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등은 이슬람에서 보기에 한결같이 서구 기독교 세력들인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기독교주의는 인간들을 세속화 시키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인간을 타락시키고 있다. 강력한 살상 무기들을 대량생산할 뿐 아니라 더러운 모든 서구의 영화산업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성생활이 문란하고 윤리도 도덕도 없는 나라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돈이 있고 힘이 있으니, 자존심이 상해도 할 수 없이 참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란 그런 종교이다. 그들에게 가서 '기독교를 믿으라' 든지 '나는 기독교인이다' 라고 이야기 하면 그들의 머리에는 부정적인 것들만 떠오를 따름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이슬람 선교인데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여기서 결론적으로 유념해야 할 것 몇 가지를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그들이 오해할 수 있는 어떠한 공격적 자세도 버려야 한다. 역라마단 운동 등을 통한 기독교적 대응을 알면 그들은 즉시 저항적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서구와 기독교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자연스럽게 알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무분별한 서구적 복식이나 행동양식은 잘 점검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은 아무런 자랑거리도 아니다. 그들 앞에서 한국의 위상이나 부는 전혀 자랑스러워 할 것이 못된다. 이슬람 지역에 퍼져있는 한국산 자동차나 제품들을 보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결단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보고 도리어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문화를 우러나는 마음으로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적 우월주의는 복음전파의 길을 가로막을 따름이다. 그들의 문화를 통해 우리가 배우려는 자세가 있음을 그들로 하여금 알! 게 해 주는 것은 많은 신뢰를 얻게 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이슬람 선교는 매우 어려웠다. 앞으로는 더욱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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