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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동북아시아 등록일 2007-10-01
작성자 관리자 (admin)
보라색 후리지아 꽃 한 다발
이인숙 선교사(일본)


우리 교회에 전형적인 일본 여인의 모습을 지닌 한 자매가 있다. 어느 날 그녀가 연한 보라색 후리지아 꽃 한 다발을 들고 집으로 찾아 왔다. 꽃을 건네 주면서 "이 선교사님을 위한 꽃이니, 잘 보이는데 꽂아 놓고 보라"고 당부를 했다. 이 부탁은 내가 꽃을 선물로 받으면 교회 강단에 꽂기 때문에 이렇게 강조를 한 것 같다. 하여튼 왠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자매의 부탁이 간곡해서 그러겠노라고 했다. 어디에 놓아야 제일 잘 보이겠는가 생각하다가 주방 싱크대 앞 꽃병에 꽂아서 올려놓았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어서 일을 하면서 힐끔힐끔 볼 수가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꽃이었다. 연한 보라색이 은은하면서도 화려했다. 오골오골한 꽃잎이 가는 줄기에 나란히 붙어 있으며 향기도 감미로웠다.

이때만 해도 나는 내가 꽃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꽃을 가까이 할 기회를 가져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꽃값을 보면 반찬값이 계산이 되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발길을 돌리곤 했다. 이러한 고급스러운 꽃 선물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꽃은 마음을 치유하는 큰 힘이 있다. 보라색 후레지아를 보고 또 보니 볼수록 아름다운 꽃이었다. 나는 이 꽃에 매료되어 가고 있었다.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그윽한 향기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온다. 아픔도 미움도 외로움도 잊고, 사랑스럽고 예쁜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마음이 참 많이 아파 있었다. 일본 선교 1년 만에 한 가정을 전도했고 교회를 개척했다. 무슨 준비나 계획이 있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그 길밖에 보이지가 않아 무대포로 시작한 개척이었다. 개척을 같이 시작한 가족은 남편이 고등학교 교사이고,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를 퇴직하고 가사를 도우며 자녀 3남매를 키우고 있는 다복한 가정이었다. 자녀들의 나이가 우리 아이들과 비슷하여 개척 초기부터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좋은 교회를 만들어 보자는 꿈도 있었다. 친형제처럼 의지했다. 선교지에서의 첫 사랑을 우리 가족은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아직 일본어도 서툴고 문화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 모자라는 것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한국 목회 15년의 경험을 무기로 삼고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사역을 했다. 그들은 아무 말없이 잘 따라와 주었다. 아니 재미있어 했다. 그들도 우리를 좋아했고 최선을 다 해줬다. 모든 것이 참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2년이 가까워 올 때 자매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일본인들은 속마음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청소년기를 맞이한 자녀들의 교육문제나 진로가 많이 부담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선교사에게 자기들의 마음 깊은 곳을 열기에는 아직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별 문제없이 잘 나가는 자녀를 둔 선교사, 무슨 일이든 믿음으로 기도하면 문제 해결이라고 가르치는 믿음 좋은 선교사 앞에서 자녀문제를 털어놓고 상의하기에는 뭔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거리가 생기고 결국 교회창립 2주 년 예배를 마지막으로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에 대해선 상상을 초월했다. 첫사랑의 연인과 이별한 아픔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때에는 그 아픔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렇게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했는데, 이기적인 사람들 잘 해 볼 수 있도록 말이라도 해 주지 2년간 입 딱 다물고 지켜만 보다가 훌쩍 떠나가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일본 사람들은 겉 다르고 속 다르다더니 정말 그렇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있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가 있을까' 원망과 회한과 억울함으로 밤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갑자기 희망차 보이던 일본선교가 절망의 늪으로 떨어지는 아득함을 느꼈다. 일본 사람들이 믿지 못할 사람들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예전에 들었던 말, 책을 통해 얻은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내가 일본인과 함께 선교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비관했다. 그래서 일본을 선교지로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이동휘목사님(바울선교회 회장)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마음이 아파 있을 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기 위해 쿠매 자매는 후레지아를 한 다발 들고 찾아왔던 것이다. 그 때 그녀는 가끔 주일 예배에 참석하던 손님이었다. 그녀는 교회개척 초기의 아픔을 다 지켜 본 후에, 우리 교회의 성도가 되었다. 지금은 교회에서 아주 귀한 선교의 동역자로서 우리 부부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런 계기를 통해 나는 점점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외롭고 절망적일 때마다 가까이에 있는 꽃들과 친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화사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주는 연한 보라색 후레지아,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아름다움과 감동이 생생히 내 마음에 살아 있다.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내 생명의 참 사랑의 향기로 간데 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 (찬송가89장)


출처 : 바울선교회지 2007.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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