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처음으로 | 기사입력 | 리포터(선교기자) 가입 | KCM 홈
 
   특별호 12호 바이블 웨이 [05-08]
   제375호 [05-07]
   제374호 [10-30]
속보(긴급기도제목)
선교현장
선교소식
 행사, 세미나
 선교하는 교회
 선교하는 사람들
 선교정보
 선교학(역사,인물)
 의료/건강
 훈련, 모집
선교단체
푸른섬선교정보
AFMI
교계, 문화
오피니언
목회, 신학
청년, 대학생
기획, 특집
포토/동영상
해외한인교회
선교학자료
해외일반
한국일반
주앙교회
미션매거진을 만드는 사람들...
facebook 미션매거진 편집회의
섹션 선교소식 > 선교학(역사,인물) 등록일 2005-11-21
작성자 없음 ()
한국인과 미국인 모두를 향한 도전
한국 전방개척선교네트웍과 전방개척선교저널 출범에 즈음하여
Ralph D. Winter
Seoul, November, 2005


한국 전방개척선교네트웍과 전방개척선교저널 출범에 즈음하여

본인은 여러분들이 한국전방개척선교학회(Korean Society for Frontier Missiology)와 전방개척선교저널(Korean Journal of Frontier Missions)의 출범을 주도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동시에 한국 사람들의 왕성한 에너지와 지성에 대하여 감명받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0여년 동안 본인은 한국에 여러 차례 다녀간 적이 있다. 미국인들은 보통 아시아의 다른 어떤 나라 보다 한반도에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한국사람들에 대하여 친근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본인의 경우에는 한국 교회의 성장과 선교운동에 밀접하게 관계된 부가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본인에게 하나의 오랜 즐거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다른 어떤 나라 보다도 한국과 한국 사람들이 가깝게 느껴진다.
본인은 아마도 여러해를 못 넘길 것 같다. 그러나 몇 해가 남아 있던 지, 한국의 선교 운동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제공하고 싶다. 동시에 본인도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본인은 한국이 이미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더 그러한 나라가 되리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러분들은 산업 기술면에서만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의 믿음과 특히 선교에 있어서 앞장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우리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에 동일한 동반자로서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다.

한국인과 미국인 모두를 향한 도전

여기서 한국이 어떻게 선교를 해야하는가 이야기 하는 것은 본인의 역할로서 최상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은 이제 기독교 선교에 괄목할만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제 역사는 한국이 우리에게 말해줄 때이며, 한국이나 미국이 어느 쪽도 형의 입장이 아니라 동등하게 서로의 노트를 비교하면서 각자를 더 강화시켜 나갈 때이다.
강승삼 목사가 랄프 윈터 목사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본인이 배운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미래가 어떠할 지 분명히 볼 수 있기 위하여서는 사건들의 역사적 배경인, 이전 기록을 심각하게 연구하는 것이다. 본인은 이 점에 대하여 진정으로 여러분들에게 강조하는 바이다.
본인이 역사적인 기록 연구에 대하여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례들을 보여주기로 한다.
1973년, 아시아선교협회(AMA: Asia Missions Association) 창립때에 이곳 한국에서 발표를 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적 선교의 두 구조(The Two Structures of God’s Redemptive Mission)”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되었다. 그것은 지난 2000년 동안 이루어진 선교 활동의 경험을 추적한 하나의 분석이다. 그것은 나중에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라는 저널에 발표되었다. 그것은 1972년도에 본인이 그 설립을 도운 미국선교학회(ASM: the American Society of Missiology)의 공식적인 저널이다. 그 학회는 형식적으로는 카톨릭, 개신교 및 독립 복음주의를 포함하고 있다.
1973년도에 도날드 맥가브란의 75세를 기념하는 앨런 티펫(Alan Tippett)이 편집한 “교회 성장과 하나님 말씀(Church Growth and the Word of God)”이라는 책에 본인이 한 장(Chapter)을 맡아 썼다. 본인이 기록한 장은 한국의 교회와 그 선교적 잠재성을 중세 캘틱(Celtic) 교회의 웅장한 기록과 비교한 것이다. 그 켈틱 교회 또한 “선교현장의 교회(mission field church)”였지만, 신약 시대 이후 처음 천년 동안 유일한 주 선교세력이었다.
8년 후에, 바로 선교의 전방개척으로서 ‘남아 있는 과업”에 부가적이고 특별한 강조를 할 필요가 있었다. 선교사들은 모든 대륙과 거의 모든 나라에 교회가 잘 세워지고 선교사들이 점점 “해외 교회 사역” 가운데에 관심이 증가하게 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대위임령이 마치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것 보다는 “온 세상으로 가서 현지인 교회들을 참견하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한 결과 때문에, 본인은 전방선교학회(isfm: International Society for Frontier Missiology)의 창립을 주도하였다. 이 새로운 학회는 적어도 한가지 이상으로 미국선교학회(ASM)와는 의도적으로 다른 입장이었다. ASM과는 달리, ISFM은 선교의 전방개척, 즉 선교에 있어서 새롭고 최전방(cutting edge)의 것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ISFM은 선교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교회생활을 번창시키는 것과 같은 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한 그러한 교회생활에서 파생하는 끝없는 토의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지, 교회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특별히 선교단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두었다. ASM과는 달리 그 설립시부터 회의에 젊은 사람들을 참가하도록 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전방개척선교를 위한 국제학생지도자연맹(ISLCFM: International Student Leaders Coalition for Frontier Missions)이 태어나게 되었다. 이는 현재 ISFM의 저널이지만, 원래는 ISLCFM에 의하여 실제 주도된 IJFM과 연결되게 되었다.
본인의 단체인, FMA(Frontier Mission Fellowship)는 허드슨 테일러의 광범위하고 어려운 경험과 중국내지선교회(CIM: China Inland Mission: 지금은 OMF라고 부름)에 대한 의도적인 반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선교단체와 관련된 7권의 중국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얻었다. 그 책들은 이 단체의 한 초기 지도자 손자인 벤자민 브름홀(Benjamin Broomhall)이 저술한 것이다. 우리는 곧 그 7권의 책들을 훨씬 저렴한 가격이 되어 더욱 널리 읽혀지도록 특히 중국 대륙으로부터 온 학생들을 위하여 두권에 담아 곧 재판하려고 한다.
윌리암 캐리의 인디아 사역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William Carey’s Major Novelty”라고 제목을 붙힌 장에서 200년전에 북인디아에서 그가 수행한 선교의 성격과 정책구조를 기술하였다. 이 장은 이후에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지에 발표되었다.
본인의 한 박사과정 학생이 2,000년 역사의 선교구조와 관련되어 탐구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한 박사과정 학생은 스콧트랜드의 에딘버러에서 열린 의미 심장한 “World Consultation of Frontier Missions(세계 전방개척선교 학술발표회)”의 지난 25년 동안의 영향력을 연구하고 있다. 그 “소집(Call)”은 1974년도 한 명의 한국 사람이 참석한 회의에서 기안되었고, 1980년도에 열리게 될 때는 여러 한국사람들도 참석을 하였다.
본인이 이러한 것들을 언급한 것은,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간단히 설명하기 위함이다. “역사를 이루어 가는” 최상의 방법은 역사로 부터 배우는 것이다.
최근에 윌리암 캐리 국제대학 교수진의 한 사람이 아프리카 내지선교 110년 역사에 대한 개요를 쓴적이 있다. 그의 발표가 아직 발간되지는 않았지만, 여러분들의 관심을 위하여 그 문건 사본을 하나 여기 가져왔다.
최근 본인의 책 “선교의 전방개척(Frontiers in Mission)” 제 20장의 제목은 “선교회를 운영하는 방법(How to Run a Mission Society)”이다. 이 글은 몇 해 전에 쓴 것으로, 대부분의 선교 결정들이 본국 사무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필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하여 기술한 것이다. 두 명의 계절 선교사가 필드와 본국(홈)의 룰에 대한 비교를 훨씬 더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그들의 논문은 2001년도 IJFM에 세번에 걸친 연재로 게재 되었는데, “신약, 아일랜드의 패트릭, 리치(Ricci), 캐리, 허드슨 테일러” 이렇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분들은 그들이 역사를 되돌아가 그 주제를 설명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은 현재의 KWMA가 본인이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들을 이미 배웠을 것이라고 확실히 느낀다. 본인은 이에 대하여 진정 의견과 질문을 듣기 원한다.
역사에서 우리가 배운 바에 의하면, 선교회는 본국 이사회 멤버들이 특별히 선교사들에 의하여 임명된 경우가 아니라면, 본국 이사회 이사들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 자신들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필드 선교사들은 본국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였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더우기, 선교사들이야 말로 모든 “기부자(donors)” 중에 가장 큰 기부자이다. 자신들의 본국 교회에서 받을 수 있는 고액의 셀러리를 포기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생명을 기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아마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여 윌리암 캐리가 시작한 선교회가 좌초하였으며 허드슨 테일러가 시작한 선교단체가 거의 좌조될뻔 하였다. 이러한 문제가 여기서 이름을 언급하진 않겠지만 여러 현존하는 선교회들을 무너뜨려 가고 있다.
반대로, 필드에서 신임의 젊은 선교사들도 문제들을 빨리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따라서, 필드에서도 완전히 민주주의적인 투표제도를 확립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일반적으로 장로교회의 “대의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 형태가 최상인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더 선임이며 경험이 많은 선교사들로 하여금 필요한 결정사항에 더욱 큰 영향력을 갖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한 책임자가 선교회의 다른 멤버들에게 광범위한 의견과 협의를 통하여 직접 후계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 이유는 완전히 민주주의 제도를 통할 경우, 인간의 속성상 꼭 반드시 혁신적인 인물이 아니라도, 어려움이나 짐을 덜 지울 그러한 “가장 안전한(safest)” 리더들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완전한 민주주의의 경우에 보다 조심스럽고 현명하며 기획적인 개인들 보다도 가장 “흥분되고” “카리스마가 있는” 그러한 사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본인은 KWMA가 그 멤버들에 대하여 “인증제(accreditation system)”를 개발한 아이디어를 매우 좋아한다. 이 제도는 다른 선교 협의회들도 수용할 것을 추구하라고 촉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한국은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본인은 심지어 최근에 세워진 세계선교기구 네트워크(GNMS: Global Network of Mission Structures)도 이러한 방식의 접근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있어서 역시 한국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이는 1910년도에 스콧트랜드의 에딘버러에서 있었던 대회를 (보다 최근인 1980년도에 에딘버러에서 있었던 대회와 함께) 기념하기 위하여 기획된 GNMS 2010년 대회 훨씬 이전에 이메일을 통하여 토의되어야 할 주제이다. 그리고 2010년 회의에서 더욱 더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로잔위원회(Lausanne Committee) 모두 2010년을 위한 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들 모두 1910년의 대회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아무도 1910년도 처럼 선교던체들에서 보낸 대표들로만 이루어진 그러한 대회의 형태를 따르려고 하지는 않는다. 한 선교단체에서 보냄을 받지 않은 교회지도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WCC와 로잔위원회는 선교 단체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들로 주로 이루어진 자신들의 지지자들과 함께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역사는 최상의 선교전략이 단순히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준다. 교회를 개척하는 것 보다 더욱 종요한 것은, “선교단체를 개척하는(planting mission agencies)” 아이디어이다. 허드슨 테일러가 서방에 14개의 선교단체를 설립하는데에 관여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허드슨 테일러 조차도 중국에 선교회를 설립하는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하였다. 모든 서구선교역사 가운데 유일하게 가장 큰 약점은 선교의 구조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본인은 35년 동안 선교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쳐 왔다. 전 개신교 선교역사를 통해서 가장 심각한 실수는, 본인이 이해하는 한, 선교현지에 서구 선교단체들이 선교적 구조를 만들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선교를 심는 것이 더욱 전략적인 것이다. 알렉산더 로즈(Alexander Rhoads)는 베트남에서 사역한 프랑스 카톨릭 선교사였다. 필리핀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에서 베트남은 로마 카톨릭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 이유는 로즈가 교회를 개척한 때문이 아니라 그가 훈련시킨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팀들이 교회개척하는 데에 단지 촉매역할을 한 때문이다. 현지의 젊은이들이 교회개척을 하였다. 그는 바로 선교를 심는 일을 한 것이다.
20년 전에, 본인은 그 처음 시작부터 파송구조를 갖는 조직으로서 교회운동을 심고자 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던 단 하나의 복음주의 선교단체를 알고 있다. 그것은 CMA(Christian Missionary Alliance)였다. 오늘날, 소위 “제삼세계 선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 서구 단체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은 매우 적다. 이점이 서구 단체들의 심각한 잘못 이라는 것이다.
마무리를 위하여 이제 미국에 문제로 여겨지는 선교현상의 세가지 경향을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것들은 한국에 문제일수도 문제가 아닐수도 있겠다.

1. 첫째, 한 2 주정도 되는 기간으로 전 세계 어디든 가기 위하여 돈을 어렵지 않게 모으는 젊은이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일에 대하여 “단기선교”라는 말로 정당화 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것은 진정한 선교가 아니라 단지 교육이다. 그것은 교육으로서는 좋은 일이다. 그것은 선교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 거의 언제나 하나의 실패로서 심지어 선교사역에 해를 끼치고 있다. 젊은이들은 통역자를 필요로 하고, 길을 찾기 위한 안내자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도움을 주는 일은 선교사들에게 매우 짐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 소위 “단기 사역자들”이 아무 선교사라도 보지 못한다면, 그 여행의 가치는 그야말로 하락하게 된다.
본인이 본 가장 큰 문제는 본국에 있는 교회들이 장기 선교사들을 후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단지 단기 사역자들을 대신 지원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점점 후원이 어려워지고 있는 5만 가량의 장기 사역자들에 비하여 엄청안 비용을 쏟아 부으면서 해마다 50만 가량의 단기 사역자들이 나간다.

2. 미국에서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 보다도 돈을 보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생각은 이러한 모든 선교사역 이후에 이제 선교 현지에서 수 천의 교회들이 일어나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 미국인들이 큰 댓가를 지불하고 현지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목사나 전도사들을 고용하기 위하여 외국의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선교사들을 파송하는데에도 외국의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선교사들은 자신의 동족들에게 후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 먼 곳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후원 받는 선교사들은 충분한 책임감 없이 일하는 유혹에 쉽께 빠진다.
그러나, 요점은 자기 자신의 종족 가운데 아무런 목사나 선교사들이 없는 곳이 세계에 여전히 많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온 사역자들이 여전히 필요하다. 또한, 그 사람들이 얼마나 관대하고 사랑을 실천하건 간에 여러 세기에 걸쳐서 적대관계에 있는 가까운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 가운데에 보내심으로 당신의 뜻을 말로만이 아니라 직접 모범으로 보이셨다. 사람들은 말이 아니라 모범이 필요하다. 몇 해 전에 한 소녀가 가정의 필요를 보충하기 위하여 베이징 북부에 있는 한 선교사 가정에 일하러 왔다. 그녀의 부모는 “그 서양 귀신” 같은 선교사가 하는 말은 어떤 것이라도 귀담아 듣지 말라고 엄중히 말하였다. 그녀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여 아무 말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남편 선교사가 자기 아내에게 친절하고 사려 깊은 것을 보았고, 그의 아내도 자신에게 친절하였다. 이러한 것으로만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모범은 단지 돈을 보내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3. 마지막으로, 미국에서는 오늘날 많은 지역 회중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고, 선교사들을 선교회나 선교기관을 통하여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필드로 보내려고 하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이와 같은 경향에 대하여 지난 50여년 동안을 마음에 두고 평가하고자 하였다. 결론적인 생각은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교회나 선교단체들은 사역을 진행하는 경험있는 선교사들을 보유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선교사들로 하여금 필드의 상황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선교회를 무시하고 자신의 선교사들을 직접 필드로 보내는 것을 추구하는 교회들은 말하자면 10년 혹은 20년 동안 지속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 거의 모두는 (경험을 비추어 볼 때에) 항상 자신들이 선교사를 파송하여 중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명한 단체의 필요를 결정하게 된다.
본인은 우리가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 서로를 돕는 방법임을 알고 있다. 오늘만 같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욱 더 같이 이야기 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일하는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따라서, 바로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의 코멘트와 질문들을 듣고자 한다. 자, 누가 먼저 이야기 하겠는가?
프린트 메일보내기
관리자 모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