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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오피니언 > 선교칼럼 등록일 2007-08-04
작성자 관리자 (admin)
아프간 사태, 얻는 것도 많다.
양국주 선교사
퇴임한 장관이 용돈이 궁했던지 재임중에 선물로 받았던 그림 가운데 값이 될만한 작품을 골라 화랑에 내어놓았다. 감정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값이 제법 되려니 기대했던 작품 대부분이 가짜였다. 작품을 안목으로도 감정할만한 눈이 없었던 장관이 선물 아닌 선물을 받고 그 값을 치루기위해 인사와 정책 집행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불편부당한 결재를 해야 했을까? 양식없는 장관을 모셨던 해당 기관뿐 아니라 국민들이 필요없는 고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그림을 제대로 감정하려면 작품도 많이 사보고 화랑가에 기웃거려야 하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하물며 살아생전 운보조차도 자신이 그린 작품인지 아닌지를 필자에게 감정을 부탁하신 일이 있었다.

이번 아프간 인질 사태를 바라보며 문득 경제학에서 다루어지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화두가 머리를 짓누른다. 왜냐하면 ‘왜 국가가 가지 말라는 곳에까지 가서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느냐’며 힐난하는 사람도 있고 기독교 선교방식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는 분 또한 적지 않다. 그런가하면 언론에 이슬람뿐 아니라 중동 문제 전문가 집단이 없는 마당에 일간 신문의 기삿거리도 하나같이 편편 일률적이다.

어디 그 뿐인가?

티그리스 강가 그린 존에 자리 잡은 미국 대사관은 사담 후세인이 대통령궁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점거하여 사용하고 있다.그런 미국이 1500명도 더 넘는 요인을 이라크 주재 대사관에 파견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입장에! 서보면 가장 많은 상주 직원을 파견한 셈이다. 미국 공무원 가운데 이라크나 아프간과 같은 분쟁 지역에 3번 정도 출장을 다녀 오면 대통령 표창은 고사하고 인사고과에 높은 점수를 받기도 한다.

반면 이라크에 상주하던 우리 대사관 직원은 고작해야 몇명 뿐이었다. 아프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라크나 아프간이 국가 이익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나 선! 진국에 더 많은 외교적 투자를 하고 ! 있다. 문제는 투자의 효율성이 무엇이냐가 관건이다.

이라크와 아프간이 한국에게는 그리 투자 가치가 없는 나라일런지 모른다. 협상단에 팔시나 현지 언어를 할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보니 현지 선교사들에게조차 손을 벌리는 일이 많다고 한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선교사 집단이 무척 고마울 수 밖에 없다. 그들은 15년 이상을 현지에 살면서 언어가 자유자재로운 것은 물론이고 현지인들과의 접촉에 있어서도 외교관보다 우월적 입장에 있다.

중동 문제에 해박한 현장 기자가 없는 우리 언론을 탓해 무엇하겠는가?

선진국 근무에만 목을 메는 외교관을 마냥 나무랄수 만도 없다. 앞으로는 아랍어나 팔시, 히브리어에 능통한 외교관에게 승진의 우선권도 주어져야 한다.

성숙한 사회, 성숙한 국가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지 않는다. 국가가 품위를 유지하려면 이에 걸맞는 인재가 나와야 한다. 영어만 잘하는 나라라고 해서 훌륭한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문제를 일으킨 기독교 역시 겨우 20년에 일천한 선교 역사를 갖고 있다. 롤모델이 될만한 선교사조차 없는 셈이다. 인물을 키워야 하듯 가장 좋은 선교란 이론과 경험에 충실한 선배 그룹을 만들어야 하는 탓이다.

한국기독교를 매도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아프간에 인질이 된 사람들은 어쩌면 우리가 평생을 귀감으로 삼아야 할 훌륭한 분들이다. 가난과 고통 받는 이들에게 삶을 나누기 위해 오지를 찾은 이들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들을 감사하고 배워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 내부에서도 무분별한 선교, 전시위주의 낭비성 선교 전략에 관한 자성이 있기를 촉구한다.

마찬가지로 언론이 김선일 사건 때보다 의연하게 경쟁적 파행을 멈춘 것 또한 칭찬할만한 일이다. 언론도 지난 일을 통해 반면 교사처럼 배운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한가지씩 배움을 통해 자신을 교정하고 성숙을 도모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듯이 우리는 지금 아프간 사태를 통해 아주 비싼 점심 값을 치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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