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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07-06-29
작성자 관리자 (admin)
예수님의 말씀(103.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본문 : 마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지난 25일 캄보디아 여객기(AN-24)가 추락해 한국인 탑승객 16명을 비롯해 모두 22명이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이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해당여객기가 오래된 기종으로 러시아에서 생산되었었는데 지금은 단종 되어 정비불량이거나 기체 노후로 추락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관제탑과의 교신 내용을 분석한 결과 조종사의 과실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공항 관제탑은 사고 여객기가 실종되기 5분전에 "고도가 너무 낮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도 조종사는 자기가 이 지역을 잘 안다며 비행을 계속하고 5분만에 레이더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착륙이 불과 5분 남았었습니다. 공항 진입항로 앞 50여 킬로미터 지점에 해발 천80미터의 보꼬산이 가로놓여 있었는데 당시 사고기의 고도는 600미터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종사는 관제탑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결과 자신뿐만 아니라 22명의 모두 사망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고도가 너무 낮다고, 그런데 우리들은 그 짧은 경험과 지식으로 괜찮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젊은 날에 구약성경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피도 눈물도 없는 분이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 죽는 것이 너무나 많이 나올 뿐 아니라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나 생각하시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그 의문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을 아무렇게나 생각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하러 오셨고 천하보다도 우리를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만 아니라면 사단을 당장 그 앞에서 무릎 꿇게 하거나 죽여버릴 수도 있으셨을 텐데 우리 때문에 그 모진 고통과 조롱을 받으시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지난주에 사진정리 작업을 했습니다. 제가 찍은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록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사진들은 선교사들이 찍어준 것이고 그 다음에 일제에 의해서 사진이 찍힙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6.25 한국전쟁사진이 찍힙니다. 그리고 이후 60-70년대 가난했던 시절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진의 역사입니다. 저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은 조상들에게 빚진 사람들이구나! 여러분! 아무리 힘들어도 6.25때는 아닙니다. 60-70년대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음 아픈 것을 장이 아픈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마음이 아프면 가슴이 아프다고 합니다. 이 말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우리말에 '목이 메다'는 말이 있습니다. 눈물 젖은 주먹밥을 먹을 때 '목이 메지요.' 그러나 죽은 아내 남편, 아이들을 생각하니 목이 메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조상들에게 빚진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가리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구원해 주기 위해서 던져주는 줄을 잡지 않으면 살지 못합니다. '생명줄을 잡아라'고 하실 때 이 줄을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말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는 4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 각각 6번씩 나옵니다. 복음서에서는 비유를 말씀하실 때 사용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성령의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예상시험문제를 가지고 자기들끼리 의논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가 있는 것처럼 몇 명이 모여서 의논할 때 어쩐지 내가 빠지면 안될 것 같아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다 아주 파고들어서 고개를 맞댑니다.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소음과 각종 소리들 때문에 귀가 먹지는 않았나 의심스럽습니다.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있는 동물과 같은 경우 소리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수단입니다. 이제 쓸데없는 소리 듣지 말고 생명의 말씀, 우리의 영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은 빈부 귀천을 가리지 않으며 누구나 들을 수 있습니다. 또 들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 48:14) 하고 외칩니다. 그리고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시 49:1-2) 라고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하는 대상은 하늘과 땅도 포함되며 모든 민족 땅의 모든 것입니다.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신 32:1)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사 34:1)
다른 천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만물의 영장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할머니가 속이 아파 병원에 가셨대요. 병명은 위(胃)가 안 좋은 것으로 나왔고 그래서 의사는 '잔탁'을 드시라는 처방을 내려 주었대요. 그런데 이 할머니, 속만 안 좋으신 게 아니라 귀까지 안 좋아 '잔탁'을 '장 닭'으로 잘못 알아들은 거예요. 그래서 이 할머니는 착실하게 의사선생님이 내려준 처방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 가서 장 닭을 큼지막한 놈으로 사와서 이왕 먹을 것 인삼까지 넣어 푹 고아 먹었대요. 안 그래도 속이 안 좋은데 기름진 닭에 인삼까지 넣었으니 탈이 날 수 박예요. 병이 오히려 더 악화되자 이 할머니 화가 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니 선상님이 하란 대로했는데 속이 더 아프니 어찌된 일이요?" 그러자 의사선생님, "드시란 약은 드셨습니까?" "하모!". "어떻게 드셨는데요?". "인삼을 넣어 푹 고아 먹었지!"
여러분! 나이 들어서 말씀보고 싶을 때 눈 어두워 못 보고, 귀어두워 말씀 못 듣고 한탄하지 말고 젊었을 때 성경 많이 읽고 주님 일 부지런히 하십시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 6:4) 라고 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모세가 레위 제사장들로 더불어 온 이스라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아 잠잠히 들으라 오늘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신 27:9)
이어 여호수아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수 3:9) 고 합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율법책에 귀울 기울였기"(느 8:3) 때문에 소망이 살아났습니다. 잠언 8:34절에서는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양을 말씀하실 때 양의 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 양들이 그의 음성을 나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 10:3-5) 만일 양이 제아무리 깨끗하고 다른 모든 조건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도 양이 잘 듣지 못하는 짐승이라면 성경은 양을 택하여 비유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양의 특징은 털이나 성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데 있습니다.


진리의 소리가 빌라도에게도 들렸습니다. 그는 아내로부터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마 27:19)라는 소리를 듣고도 무시했습니다. 예수님은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 18:37)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눅 23:23). 빌라도의 귀는 듣지 못한 귀의 전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 우리가 책임질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 단 국물만 빼먹겠다는 사람은 분명히 말하지만 언젠가 하나님을 떠날 사람들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1561~1626)은 "번영은 구약성서의 축복이고, 역경은 신약성서의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은 많으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은 없으며, 십자가를 귀에 걸고는 있어도 머리에는 없으며, 십자가를 목에는 걸었어도 성도의 가슴에는 없으며, 종탑에는 매달려 있어도 교회 속에 없다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들어야 하는 소리는 달콤한 소리가 아닙니다. 쓴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목사님이 한마디 야단쳤다고 다른 교회로 옮기고 "여기 아니면 교회 없냐" 하는 식으로 살면 안됩니다.


어렸을 때 어머님이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 부릅니다. 그런데 귀찮아서 못들은 체하고 뒷문으로 나가 놉니다. 그러면 누나가 그 심부름을 대신 합니다. 어머님은 심부름을 잘했다고 용돈을 주십니다. 그것을 보고 내가 달려갑니다. "누나는 내가 할 심부름을 대신한 것이야! 그러니까 그 돈 반은 내 꺼야" 하고 우깁니다. 착한 누나는 저에게도 나누어줍니다. 그 이후로는 심부름을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통해서 그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까? 그분은 우리가 본 받아야할 첫 열매이시기 때문입니다(고전 15:20).


'쓰나미'에 대한 이야기를 영국에서도 가르쳤는데 '쓰나미'가 오기 전에 썰물이 빠져나갈 시간이 아닌데도 썰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2004년 쓰나미가 올 때 영국의 소녀 하나가 이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선생님이 쓰나미가 올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설명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녀는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쓰나미'가 오려나 봐요? "물이 빠져났어요." 그리고 엄마에게 선생님이 일러준 말을 했고 엄마는 딸의 말을 듣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피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약7만5천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시메울루에섬은 지난 연말 가공할 쓰나미를 일으킨 대지진의 진앙으로부터 불과 60㎞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높이 10m가 넘는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리고서도 사망자가 단 7명에 그쳤습니다. 주민들이 전 재산을 잃고도 인명 피해는 이처럼 경미한 수준에 그친 것은 100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세몽'(쓰나미) 이야기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지진의 진동으로 땅이 흔들리다 멈췄을 때 다른 해안 지역 주민들은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최악의 순간이 지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시메울루에 섬사람들은 조상들이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를 생각해내고 죽을힘을 다해 언덕 위로 올라가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사야가 들려주는 간곡한 소리를 못들은 채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지막 날에 반드시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사1:10)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사 28:23) 아멘.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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