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처음으로 | 기사입력 | 리포터(선교기자) 가입 | KCM 홈
 
   특별호 12호 바이블 웨이 [05-08]
   제375호 [05-07]
   제374호 [10-30]
속보(긴급기도제목)
선교현장
선교소식
선교단체
푸른섬선교정보
AFMI
교계, 문화
오피니언
목회, 신학
청년, 대학생
기획, 특집
포토/동영상
해외한인교회
선교학자료
 논문
 강의안
 선교역사인물
해외일반
한국일반
주앙교회
미션매거진을 만드는 사람들...
facebook 미션매거진 편집회의
섹션 선교학자료 > 강의안 등록일 2007-03-23
작성자 관리자 (admin)
실크로드 vs 바이블로드의 부활에 있어 실크로드 지역에서의 -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의 역할과 전망
김경일 선교사 (중앙아시아 회장)



Ⅰ. 서론


작년 12월에 개최된 “2005 방콕 중앙아시아 컨설테이션”
// (2005년 12월 6일-10일까지 세계한인선교사회(WKMF) 중앙아시아 지역 회 주최로 방콕에서 개최된 제 1회 선교 전략 회의(필자 주)
//

)은 한인선교사들로는 초유의 사건, 즉 17명의 중앙아시아 시니어 선교사들이 발제를 하고 세계적인 신학자들과 전문 이슬람 학자 그리고 선배 선교사 등 약 15명의 응답과 토론으로 이루워진, 참으로 감격스러웠던, 알찬 대회가 아니었나 회고해 본다. 그러나 당시 전문 이슬람 여성 학자이신 전재옥 박사께서 본 대회에서 “중앙아시아라는 지역과 그곳 이슬람에 관하여는 상당히 무지한 상황 이었다”고 말한 것과 같이, 함께 참석하신 대부분의 학자들의 공통된 고백이었다. 그동안 많은 이슬람 선교 관련 한국 지도자들께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선교 역사적, 전략적 측면에서의 중요성을 너무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조 동진 박사의 “북방 선교의 실크로드 중앙아시아의 의미”란 제목으로 기고 한 것을 보면, “중앙아시아를 부정적인 관념에서 논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의 문명 세계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문명권 바깥에 위치한 고립 지대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말이다. 지난 10년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아직도 이 지대는 문명도 문화도 없고 현대적 도시도 없고 고유한 역사도 없는 고대 유목민의 후손이 전근대적 생활을 하는 민족들이 문명권밖에 갇혀있는 곳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세계의 강대국들은 중앙아시아의 전략적인 중요성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오늘의 국제 정세 역시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유권과 전략적 이익의 중요성 때문에 유럽과 미국과 러시아와 중국 간의 긴장과 대결이 가장 격심한 지역이다.
이제 중앙아시아는 세계의 변방이 아니라 <실크로드> 시대와 같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그리고 종교의 이해관계가 얽힌 21세기 세계 문제의 중심 루트가 되고 있다.” 중앙아시아 각국이 구소련에서 독립 후 15년이 흐른 현재 기독교 선교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과거 8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과 불교가 충돌, 불교가 패한 역사처럼, 현대 기독교 선교도 당시와 유사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실크로드 지역은 기독교 선교의 전방개척선교(Frontier Mission)
//
전방개척선교(Frotier Mission)란, 타 문화권에 가서 미전도종족지역이나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건강한 토착교회를 세울 때까지의 사역을 말한다. 전방개척선교지역을 부분제한지역(Limited Access Area), 창의적 접근지역(Creative Access Area), 그리고 폐쇄지역(Closed Area)등 3지역으로 나눈다. 이 3지역은 모두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기독교는 반대하거나 적대시한다. 이러한 지역을 창의적 접근지역이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폐쇄된 지역이라 해도 어떤 형태의 선교사역을 지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족 지역에 전 세계의 선교사 1/10미만이 사역하고 있으며 한국 선교사는 13%로서 전방개척 선교지향 쪽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KWMA/UPMA는 최근의 미전도종족 지도(2005)를 제작하여 한국교회 전방개척선교의 방향을 제시했다. 참조.)
//


서진운동과 이슬람 과격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고토회복의 동진 운동이 다시 실크로드 지역에서 강하게 조우하는 곳으로서 지금 실크로드(중앙아시아)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많은 모임이 여러 곳에서 개최되고 있는데, 그중에 한 예로 금년 3월에 방콕에서 3중 네트워크 컨퍼런스가 개최된 것처럼, 각 지역 시니어 선교사들이 모여 종말론적 입장에서 실크로드 지역을 논하였었고, 필자도 참석하여 많은 도전을 받고 고민을 하는 시간이었다.
따라서 본 필자의 발제는 “바이블로드 & 실크로드의 부활에 있어 실크로드 지역에서의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역할과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논술해 보고자 한다.


Ⅱ. 실크로드의 정의


실크로드(Silk Road)란 옛날부터 중국의 주요한 교역 품이던 비단과 연관된 동서 교통로로서, 아시아와 유럽을 이은 국제 무역로(貿易路)의 총 명칭이다. 이 실크로드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이었다.
//
Richthofen. F. V.: China I, 454ff: Ders Uber die zentral-asiatischen Seidenstrassen bis zum 2.Jh. n. Chr. (Verhandlungen der Gesellschaft fur Erdkunde zu Berlin, 1877, 96ff)
실크로드 역사와 문화, 나가사와 가스도시(이재성역) 민족사, 1991년, p 13.
* 이 책에서 처음으로 자이덴 슈트라센 “도(道)”라는 조어가 생겼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동간인(東干人- 터어키 회교인)의 반란이 일어나 헤딘(Hedin, 1865-1952 스웨던 저명한 탐험가)등은 쿠알라이에 감금되어, 반강제적으로 반 강제적으로 반란군의 장군 마중령(馬仲英)에게 트럭을 공출 당했다. 마중령이 도망한 후 헤딘은 신강성의 성세제 장군으로부터 정치범으로 간주되어 1934년 4월부터 2개월간 롭 노르 지방을 터나도록 명령을 받았다. 헤딘이 롭노드를 조사한 것은 이때이다.
//

이 길을 통하여 중국에서 비단이 서방으로 수출되었고, 아랍 대상들은 사금(砂金)이나 은(銀)등을 낙타에 싣고 멀리 아시아인 중국까지 비단(Silk)을 사러 갔다. 즉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캬라반(隊商)에 의한 동서교역이 행해져 왔던 것이다. 이들이 가는 여정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널리 펼쳐진 대 평원인 스렌스옥시아나 지역을 거쳐 아랄 해를 지나 고비(Gobi)사막을 지나 천산 산맥을 가로지르는 무역 로는 글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 후 동서양을 잇는 이 무역 로가 실크로드가 되었고, 오늘까지 부르고 있다.
실크로드를 구체적으로 요약하면 동서(東西)로는 중국 장안을 출발하여 서역 신강성, 위그르 자치주를 가로지르는 루트와 북쪽의 초원지대를 통과하는 스텦 루트, 남쪽 해상을 통과하는 해상(海商)루트가 있다. 이중 실크로드는 오아시스 루트와 스텦 루트를 포함해서 말할 수 있다.


Ⅲ. 실크로드에 있어서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의 위치


1 중앙아시아의 중요성과 Network
주후 천년까지의 첫 번째 1000년 간 동안 세계의 강대한 제국들은 중앙아시아를 영유하기 위한 각축전을 벌여왔다. 중앙아시아는 ① 중국 제국과 ② 투르크 제국 ③ 인도 제국 그리고 ④ 로마 제국을 주변 강대국으로 가지고 있었다. 주후 750년에서 주후 1000년이 지나기까지 중앙아시아는 위의 네 개의 제국들과 엄청나게 복잡한 국가 간 이해관계의 역사적 기복이있었다. 중앙아시아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선교 등 많은 국제 지도자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실크로드>의 중심 지역이다. 오늘의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국가들
//
전호진. “방콕 2005 중앙아시아 미션컨퍼런스 강의안”, (서울: WKMF 중앙아시아회 , 2005). p 16.
중앙아시아의 정의나 용어에 대하여 다양한 견해가 있다. 중아를 헝가리의 한 학자는 내륙 아시아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유라시아로 표현한 자도 있다. 유라시아는 동서로는 헝가리 등 서부 동구 유럽과 우크라이나, 볼가 강 유역, 카프카스에서 몽골, 만주까지 너무 광범위하다(최한우, 2003:23). 일본의 한 연구소는 중앙아시아의 범위를 아프가니스탄,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시킨다. 반면 문화인류학자 Eickelman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키즈스탄 5개국만 중앙아시아로 분류한다(Eickelmann, 2001:2). 그러나 아제르바이잔을 중앙아시아에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중앙아시아 5개국가의 면적은 일본의 10배에 총 인구는 5천3백만을 넘으며 투르크가 다수를 차지한다.
//

로는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 카자흐스탄,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젠, 마케도니아, 아르메니아와 광의의 개념으로 주변 국가인 이라크와 터키, 이란, 이집트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포함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권의 중심에 있으며, 고대로 중국 신장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라고 불리 우는 대상들의 무역 로로서 동서양을 잇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특히 종교적으로 너무도 중요한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서쪽으로는 이슬람교의 본 고장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중심으로 한 중동 지역이 있고, 동쪽으로는 실크로드의 시작이 되었던 중국(신장, 장안)과 몽골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힌두교권인 인도와 이슬람권(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등), 그리고 불교 권(태국,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등)인 동남아시아가 자리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정교회권인 러시아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지역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첫째가 이슬람교의 동진을 막는 의미가 있고, 둘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왕성한 복음의 완결로서 서진(예루살렘을 비롯한 땅 끝으로 확산)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위치, 즉 실크로드 Network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중심이 된다는 면에서 참으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실크로드의 시작이 되는 지역인 중국 신장과 접경을 대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더욱 그러 하다.
그 동안 중앙아시아는 8세기 탈라스 전투에서 이슬람 세력이 승리하자 대부분의 부족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며, 이슬람 세력은 중국(불교 권)의 서진을 막고 이 지역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따따르, 위구르 족들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의 뚜르크 족은 거대 공동체가 동시에 이슬람화하기 시작했고, 다음은 실크로드를 이용, 중동의 물품들이 동으로 수출되면서 이슬람 문명도 자연스럽게 수출되었던 것이다. 즉 중국에 전파된 경교(景敎) 곧 네스토리안 기독교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육로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이슬람과 불교와 마니교도 같은 시대에 실크로드의 북로(北路)와 남로(南路)를 통하여 이루어져 중앙아시아에 흘러들었다. 이렇게 해서 중앙아시아는 유럽과 아랍과 중국과 인도의 민족 대이동의 중심 지역으로 역사적 국제 루트 노릇을 했다. 주전 1000년 시대에도 유목민이었다는 종래의 생각과는 달리 중앙아시아 민족들은 주전 1000년경에 이미 교역로와 대도시가 있었고 광업과 제조업이 발달되고 있었다. 그들이 기마 민족으로 발전하고 주후 6세기 이후에는 로마의 거대 대상(隊商)들과 페르시아 인들과 아랍의 대상들의 교역로가 되면서 국제 상업도시로 변했었다.
주후 700년으로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는 그 경제권을 유럽과 중국과 티베트에서 아프리카와 인도에까지 확대하면서 육로(陸路)와 해로(海路) 등 모든 루트를 통한 교역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었다. 주전 5세기에 이미 중앙아시아 민족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분수령인 알타이산맥에서 금을 캐내어 세공하였고 중국의 비단은 주전 1500년대부터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1900년 초에 들어와 약 74년의 유물주의 사관에 근거한 무신론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구소련 당시로부터 현재까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즉, 8세기 이후로 이슬람교의 강성한 확장을 막고, 희석을 시키는 결정적 역할(?) 했다.

2. 실크로드(중앙아시아)에서의 카자흐스탄 위치
실크로드 중심지이며, 복음의 핵심 축으로 부상한, 1991년 구소련으로 부터 독립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 카자흐스탄공화국(Republic of Kazakhstan)은 선교학자 루이스 부시가 주창한 소위 10/40창 안에 위치해 있다. 정확히 말하면 투르크계 창이라 불리 우는 35/45 창 지역이다.
10/40창 지역은 위 지도를 통해 볼 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85%와 세계에서 가장 복음에 저항적인 세력인 이슬람(녹색), 힌두교(빨간색), 불교권(노란색)이 집중되어 있다. 지구상의 약 11,000개 종족(22억)이 아직도 미전도 상태인데 이들의 95%가 10/40창에 밀집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전통적인 선교사들이 들어갈 수 없는 제한접근 지역에 있으며, 극심한 가난 뿐 아니라 가장 큰 영적 필요에도 처해 있다. 전 세계 기독교 선교사의 10% 만이 10/40창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기독교 자원의 할당 방식에 있어서 보다 전략적인 균형이 요청됨을 보여준다. 10/40창과 실크로드 지역, 특히 투르크 창이라 불리는 35/45창으로 더 많은 선교사의 재배치가 시급함을 필자는 말하고 싶다.
현재 카자흐스탄공화국에는 대한민국과 미주지역에서 파송된 한인 선교사들이 카자흐스탄 알마타 협의회 2004년도 자료에 의하면 공식적으로는157명이고, 비공식적 통계로는 약 250명의 선교사가 활동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카자흐스탄공화국은 공식적인 국교는 없지만 민족적 종교로서 이슬람(대부분 수니파)을 카자흐스탄인들 대부분이 전통적 종교로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있다. 그 외 러시아 정교회와 약간의 신교 등등의 종교 분포와 더불어 다양하고 복잡한 인종 구성
//
카자흐스탄은 약 120여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19, 20세기에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이주했는데, 이들이 현재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5에 이르며 우크라이나인과 독일인이 1/10을 차지한다.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북부 평원에 살며 여러 도시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지만, 카자흐인들은 그 밖의 도시와 농촌 전역에 두루 퍼져 있다. (필자 주).
//

으로 인해 기타 중앙아시아 국가들처럼 이슬람을 신봉하는 인구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카자흐스탄공화국은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선교사 비자를 주는 전체 57개 이슬람 국가들로서는 몇 안 되는 국가이며, 필자가 볼 때 이슬람 국가로서는 마지막 남아 있는 황금 어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카자흐스탄 지역의 근대 기독교 선교의 발자취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는 상인들에 의해 로마 천주교가 잠시 동안 전파되었으나 지속되지 못했다. 카자흐 인들은 카자흐스탄 지역에 거주하던 몽골과 터키족의 후손이다. 카자흐스탄 지역은 카자흐 족(터키유목인)들의 방목지로 사용되었다.

현재의 카자흐스탄 공화국내의 지역에서의 기독교 선교 상황을 살펴보면, 1868년 정교회의 보급이 잠시 있었으나, 예수를 믿는 카자흐인들을 군법회의를 거쳐 사형을 시킴으로 희랍정교회에서 카자흐인들 대상으로 하는 선교를 제고 하게 된다. 그러나 그해 현재 카자흐스탄 지역 내의 세미빨라찐스키에 알타이 선교부와 같이 키르기스 선교회가 조직되었다. 1863년에서 1873년 사이에 5만 8천권의 러시아 성경책이 우크라이나 남쪽 지역과 카자흐스탄 서남쪽 빠벌로지에 보급되었다. 1901년에 카자흐어 된 4복음서가 출판되었다. 1927년에는 카자흐스탄 전역에 62개 기독교 공동체가 있을 정도로, 1920년부터 1929년까지는 침례교는 복음 활동이 왕성했다.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까지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에 러시아인
//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민족으로 카자흐인을 뺀 외국인으로서 최대 집단은 러시아인들이었다(카자흐스탄 정부의 1989년과 1999년에 발표한 인구조사통계를 보면 89년에는 6,062,019명으로 전체인구 대비 37.4%를 차지하고, 99년도에는 4,479,618명으로 전체인구대비 30%을 차지하고 있다(필자 주).
//

들이 대규모로 거주하게 되었고, 독일인 신자들의 유입으로 다시 기독교가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소비에트 연방정부 시절에 100여 종족들이 강제적으로 혹은 자율적으로 카자흐스탄에 유입되게 되었고, 이들과 함께 러시아 정교, 침례교, 로마 카톨릭, 안식일교 등 여러 기독교 종파들이 흘러 들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거의가 다 자발적이 보다는 강제로 이주되어 온 종족 집단이었으나 그 유입으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잠시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 유입의 다수가 러시아인, 독일인, 우크라이나인 등이었다. 그래서 현재도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민족으로, 현지 카자흐인을 뺀 외국인으로서 최대 집단은 러시아인들이다. 또한 인구분포 3, 4위
//
카자흐스탄 정부의 인구조사 통계를 보면 독일인은 89년도(946,855명), 99년도(353,441)명이었고, 우크라이나인들은 99년도 통계에 의하면 554,052명(3.7%)으로 전체 카자흐스탄 민족별 순위에서 3위이다. 독일인들은 당시 서독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조국 독일로 많은 이들이 귀환을 할 수 있었으나, 우크라이나인들은 우크라이나의 정부 방침에 의하여 조국으로 가지 못하고, 아직도 카자흐스탄에 남아 있는 자들이 많다(필자 주).
//

였던, 독일인과 우크라이나인도 마찬가지로 구소련 독립 후 많은 수의 슬라브 민족이 조국과 고향으로 이주하였지만 아직도 카자흐스탄 내에서 다수의 인구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스탈린과 흐루시초프 서기장의 등장으로 즉 공산당의 강압과 통치로 기독교 공동체가 강제로 해체당하고, 지도자들이 체포당함으로 카자흐스탄에서는 기독교의 암흑기가 구소련의 해체 시 까지 계속되었다.

4. 현대 카자흐스탄공화국의의 생성과 기독교 선교
1) 현대 카자흐스탄공화국의의 생성
현재의 카자흐스탄은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1920년 러시아공화국내 키르기스스탄 자치공화국으로 편입되어 있었는데, 1925년에 거대한 투르크메니스탄공화국을 분리할 목적으로 행해진 중앙아시아의 국경 정리 결과 카자흐스탄 자치공화국으로 개명되었다. 그 후 1930년대 카자흐스탄공화국은 소연방의 가장 커다란 수용소가 되었다. 2차 대전 중 스탈린에 충성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 정치인과 기독교인들 즉 반당 분자들과 많은 소수 민족(한인 포함)들이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 결과 카자흐스탄공화국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인구의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카자흐스탄공화국은 1936년 12월 5일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구소련의 일원이 되었고, 구소련 붕괴 과정에서 여러 공화국들의 연방 이탈이 계속되자 1991년 12월 10일 국명을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 변경하고 12월 16일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1992년 1월 28일 한국·북한과 동시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2) 카자흐스탄에서의 현대 기독교 선교
1991년 구소련이 개방된 이후 많은 한인 선교사들과 서방에서 들어온 선교사들이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 들어가, 즉 한인 선교사 대부분은 알마타를 중심한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대도시 지역으로 들어가서 교회를 설립하고, 서방에서 들어온 선교사들은 현지 카자흐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최선을 다하여 선교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공산당의 강력한 통치 가운데에서도 카자흐스탄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최대 복음주의 교단인 복음 침례교와 오순절의 교단이 카자흐스탄에서 많은 지하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며 환란과 핍박의 긴 터널을 지나왔다. 카자흐스탄 각 지역으로 자생적 그루터기 기독교회였던 침례교와 오순절 교회가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복음전파의 사명을 다하고 있으며, 서방에서 특히 한국과 미주 지역에서 들어온 한인 선교사들에 의해 2005년 말 현재 약 84개의 교회(157명의 선교사)가 전 카자흐스탄에 개척되어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리고 있다. 특히 2000년 7월에 카자흐스탄 심장부 알마타 시에서 개최되었던 인터콥 주도의 실크로드 대행진은 선교사적으로 의미심장한 역사적 가치(?)가 부여됐다고 본다. 현재 독립된 국가로써 카자흐스탄은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크스탄과 함께 러시아와의 경제 블럭을 유지하고 있으나, 카자흐스탄 을 두르고 있는 주변 국가인 이란, 이라크,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등등. 근본 과격 이슬람주의 자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정부의 정적이 근본 과격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미국을 중심한 친 서방정책과 친 러시아 정책을 유지함으로,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이슬람 과격 세력을 억압하고. 기독교를 핍박하지 않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 속에서 기독교 선교가 현재까지는 상대적인 선교의 이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5. 실크로드 Network를 위한 카자흐스탄의 역할
카자흐스탄은 실크로드(중앙아시아)의 예루살렘 즉, 중앙아시아의 핵심 복음의 축으로서, 지리적으로 동서양을 잇는 다리로서, 서쪽으로는 이슬람의 본 고장인 거대한 중동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중국과 몽골이 있다. 남쪽으로는 불교,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벨트를 이루는 동남아시아 있고, 북쪽으로 정교회권인 러시아가 있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중심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소아시아 터키를 거쳐 그리스, 로마, 독일, 영국,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중심으로 미주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태평양을 넘어, 대한민국에서 강력한 복음의 꽃을 피웠고, 다시 21세기에 중국과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바이블 실크로드를 따라, 즉 성령의 강권적 역사로 인한 서진 운동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슬람의 심장부를 지나 예루살렘으로의 전진 중에 있다.
따라서 땅 끝까지 복음이 확산되고 완결되기 위해서는 투르크족이 집결해 있는 실크로드(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선교사의 재배치와 신임 선교사들을 최우선 전진 배치해야 될 것이다. 그 역할 최선봉에 대한민국이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1907년 평양 성령 대 폭발 부흥의 역사 이래, 왕성한 복음 확장이 계속되었으며,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파송한 해외선교사는 2005년 현재, 총 1만2천8백여 명이며, 전 세계 9만7천여 명의 해외선교사 중 13.2%를 차지했으며, 이번 통계에서 46,381명을 파송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한국선교연구원 2005년도 통계)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의 선교사 증가율이 정체 혹은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대한민국은 연 증가율 11%를 유지하며 매년 1천4백 명을 파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각국 중에 카자흐스탄은 과거 실크로드의 시작이었던 중국 신장(장안)과 접하고 있으며, 중동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복음의 서진이 완료되는 통로로서 복음의 서진 운동의 마지막 주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크로드 Network를 위한 카자흐스탄 역할은 복음이 중국을 통하여 중앙아시아 그리고 땅 끝인 중동 지역으로 전해질 다리 역할을 할 영적으로 너무도 중요한 지역이다.
특히 중국의 개방 정책과 경제 발전으로 약 1억 명에 가까운 그리스도인들을 보유한 중국 대부분의 교회들, 가정교회마저도 21세기 이슬람 선교는 중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한 열의로, 선교사 파송의 당위성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20년대 중국에서 시작된 Back to Jerusalem 운동이 초기에는 중국 기독교회가 신장(위구르-이슬람) 장악을 위하여 민족주의와 기독교 선교가 결탁, 즉 하나님 나라 건설보다 강력한 중국 건설에 박해받는 중국교회가 일조를 한다는 잘못된 애국심과 선교관이 깔려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과 더불어 잠자는 중국과 또한 일본 교회들과 성도들을 깨워 종말론적 땅 끝까지 복음 전파의 강력한 비전과 꿈이 될 수 있도록...
이제 그들이 모두 복음의 복된 발들이 되어, 중국 신장을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넘어 올 때, 그 선교사들과 함께 땅 끝까지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될 중차대한 사명이 있다.


Ⅳ. 복음의 동진 운동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기독교 전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지상명령(마 28:19, 20)을 한 이래로 바울을 이방인 사도로 삼아 로마를 통해 서방으로 서진하여 복음이 전해졌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전하였던 그 시기에 동방 페르시아와 인도·중앙아시아·중국 쪽은 누가 복음을 전했는가?

1. 초기 원시 기독교인들에 의한 복음 전파
초기 중앙아시아에서의 기독교 전래에 대하여, 당시 역사학자 유세비우스(Eusebius)의 스승인 도로데우스(Dorotheus, 254-?)에 의하면,
첫째, 사도 도마가 파르티아인(Parthia)과 메디아인(Media), 페르시아인(Persia), 루만인(Ruman), 박트리아인(Bactrian), 마기인(Magi)에게 복음을 전한 후 인도 카라미나(Caramina)에서 순교했다고 전한다. 또한 300년 경 이방 민족 지(Adverse Gentes)에 의하면 사도 도마가 주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2년 만에 인도에 와서 극동으로 가는 도중, 파르티아(Parthia)와 부하라(Buhkara), 박트리아 등 여러 지방에 들려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한다. 200년경 터툴리안도 비(非)로마 신자들의 명단을 작성했는데, 사마르티아인들(Sarmatians) 그리고 다키아인들(Dacians), 스키티아인들(Scythians, 몽골인), 길라니아인(Gilanians), 박트리아인(Bactrians)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중앙아시아와 관련 있는 명칭은 파르티아인과 박트리아인, 부하라, 사마르티아인들, 스키티아인들, 길라니아인이다. 따라서 사도 도마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 아다이와 함께 중앙아시아 쪽으로도 복음을 전했음을 예측할 수 있다.
둘째, 사도 도마의 제자 아다이가 중앙아시아에 복음을 전하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다이(Thaddeus, Addai)를 눅 10:1에 나오는 “칠십인 제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가이샤라 빌립보의 갈릴레이에서 출생한 아다이는 그의 동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처음 전하였고, 비단무역을 하는 유대인들이 그의 첫 개종자들이요 교회 지도자들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 비단무역을 한 유대인들이 옛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로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셋째, 아다이의 제자 아가이(Aggai)와 마리(Mari)를 통하여 중앙아시아에 복음이 전해졌다. 여기서 아가이는 사도들의 교리(Doctrine of the Apostles)에 나오고, 또한 마리는 성 마리의 행전(Acts of St. Mari)에 나온다. 브라운(Browne, L. E.)도 카스피해(Caspian Sea) 넘어 사는 알타이계 원시 투르크인(Prototurks)에게 복음이 전해졌다고 하였다.
넷째, 바르다이산(Bardaisan, 154년 출생)이 중앙아시아에 복음 접촉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196년에 기록한 에데사의 바르다이산의 여러 나라의 법률서(Book of the Laws of Countries)에서 지금 북쪽 아프카니스탄 박트리아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 200년이 채 안되어서 바울이 서방의 이방의 사도가 되었듯이 도마가 동방의 사도가 되었고, 또한 도마의 제자 아다이가, 그리고 아다이의 제자 아가이와 마리를 통하여, 또한 초대 시리아 기독교인들을 통하여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유프라테스(Euphrates)에서 힌두 큐쉬(Hindu Kush)까지와 아르메니아에서부터 페르시아 만까지 옛 실크로드를 따라 아시아의 심장부인 중앙아시아 유목민에게도 복음이 퍼져 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초기 중앙아시아 기독교 선교는 사도 도마 때부터 시작되었고, 3세기 전에 복음의 역사가 왕성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324년 유세비우스(Eusebius)에 따르면, 도마가 오스로에네에 첫 기독교 선교사로 다데오(아다이)를 파송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90-430년에 기록한 아다이 교리(The Doctrine of Addai)에 아다이가 가서 아브가르 왕의 병을 고쳐주고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
Eusebius, 1.13.6-10. 아브가르 왕은 두 번 통치했는데, 첫 번째는 BC 4-AD 7년(13번째 왕, 혹은 군주)과 다시 13-50년(15번째 왕)이 되었다. J. B. Segal, Edessa, the Blessed City (Oxford: Clarendon, 1970), 15. 아부가르 왕은 아다이를 통해 기적적으로 치유함을 받고 그 다음날 자기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의 역사”에 대하여 말하자. “모든 시민들이 그 교리를 즐거워하였다”고 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유의지에 의해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한다. W. Cureton, Doctrine of Addai, 13-15, 21.
//

그렇다면 아부가르 왕은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313)보다 이른 201년에 이미 세계 최초로 기독교 왕이며, 기독교 도시국가를 이룬 것이 된다. 그러나 오스로에네는 분명히 파르티아 공국으로 그 당시 페르시아에 속하기 때문에 아시아 교회사이며, 최초의 기독교 국가는 아시아 교회에서 태동한 것이 분명하다이미 페르시아에, 로마 제국의 핍박을 피해 190-250년에 많은 교회를 세웠고 동쪽 쿠르디스탄(Kurdistan) 산맥에서부터 서쪽 카스피해까지 관할권으로 20명 이상의 주교와 17개의 주교구가 있었고, “교회들과 수도원들은 증가하였고 모든 입으로 영화로운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하르낙은 2세기경 페르시아 지역에 약 360개의 교회가 있었다고 했다.
이미 3세기 중앙아시아의 메주레츠(Междуречья)가 기독교의 본거지가 되어, 중앙아시아와 몽골 초원 및 중국까지 기독교의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베룬니(Беруни)의 증거에 따르면 기독교는 예수의 죽음 후 200년이 지나 메르브(Мерв)에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다고 한다. 즉 메르브에 성자 바라히(Барахи)가 있었고, 3-4세기의 무덤 조형물 밑에 기독교 성전이 있었던 장소를 발견하였다. 3세기부터 존재했던 기독교 수도원도 발견하였다. 이 수도원 공동체는 처음부터 2세기의 ‘순례 선교사’의 사역을 계승하여 3세기부터 아시아로 가는 능동적인 선교가 되었다. 이렇게 3세기 시리아와 페르시아의 아시아 선교사에 의하여 티그리스 강을 넘어 동쪽으로 꾸준히 이동하였다. 위 논술을 근거로 추론을 할 수 있는 것은 실크로드 지역, 즉 중앙아시아에서 네스토리안파가 복음을 전하기 전에 이미 초기 원시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파되었다.

2. 네스토리우스파에 의한 실크로드(중앙아시아) 및 중국 선교
초기 4-5 세기부터의 기독교 선교는 주로 네스토리우스파
//
사무엘 H. 마펫, 아시아기독교사, 장신대출판부, 1997년, p317. 네스토리안교는 기독교에서 이단 종파의 하나로 되면서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파되었는데(635) 이것이 소위 경교(景敎)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네스토리안교는 428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되었던 네스토리안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당시의 신학적 주류를 이루었던 성모 마리아 숭배하는 것을 거부하여 431년 에베소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았던 무리들을 일컫는 말이었고, 이들은 처음 시리아로 쫓겨갔다가, 페르시아로 옮겨 잠시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그 지역에서 일어난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고 이락크 수도 바그다드로 옮겨 세력을 확장하게 되었다. 실크로드의 역사를 들여다 볼 때, 기독교 복음이 네스토리안 교도들을 통하여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전 지역에 영향을 미쳤던 것을 볼 수 있다.
//

기독교인들에 의한 선교였다. 5세기 말경에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중앙아시아 유목민 사회에 깊이 침투했다.
6-7 세기경에는 사마르칸트에 대주교구가 설치되어 중앙아시아 및 초원지역의 선교의 근거지가 되었다. 중앙아시아에 전파되었던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는 마침내 7세기 초반에는 당의 수도인 장안에까지 전파되었다.
8세기 이후 이슬람의 물결이 중앙아시아 전역을 뒤덮은 뒤에도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은 이 지역에서 왕성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의 화폐, 기구, 사원, 궁전 등의 유적들을 관찰할 때 고대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들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14세기 중반과 후반을 거치면서 지배층들과 무슬림의 박해, 흑사병의 창궐, 교역의 중단, 전쟁 등의 이유로 1천 년간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했던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즉 14세기 이후 중앙아시아 기독교는 이 지역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결국 투르크 이슬람 세계로 바뀌었다.


Ⅴ. 이슬람의 동진과 이슬람 확산의 역사적 배경


중앙아시아에서의 이슬람 세력의 동진은 9세기에서 12세기이다. 당시는 물론 실크 로드에 약대가 다니는 시절이다. 중앙아시아 역시 종교적 중립 지역은 아닌, 샤머니즘, 배화교, 단군신화에 나오는 ‘텡그리’ 라는 하늘 신을 섬기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기독교 등 아주 다양한 종교가 있었지만 강력한 통치력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이슬람이 주변을 완전히 석권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화 된 것은
첫째, 이슬람 자체의 문화적 매력이 크게 작용하였고,
둘째, 각 부족들의 지도자들이 솔선, 이슬람을 수용하여 위에서 밑으로 이슬람이 확산된 것이며,
셋째, 이슬람의 공격이다. 특히 8세기 탈라스 전투에서 승리하자 대부분의 부족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며, 이슬람 세력은 중국의 서진 막고 이 지역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따따르, 위구르 족들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족은 거대 공동체가 동시에 이슬람 화하기 시작했었다. 즉 탈라스 전쟁은 중국과 투르크멘 족들의 중앙아시아 지배와 영향력에 대하여 불안한 아랍이 중국과 투르크멘 연합군과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 전쟁 전에 이슬람은 중앙아시아의 서부로 침투하고 있었다. 다음은 실크로드를 이용, 중동의 물품들이 동으로 수출되면서 이슬람 문명도 자연스럽게 수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몽골의 징기스칸 시대 때는 도리어 이슬람이 수난을 당하는데, 그 이유는 바그다드까지 한때 점령하였든 몽골은 무슬림들의 무례한 행동과 처신에 분개, 그리고 몽골 지도층에 뿌리내린 네스토리안과 로마 가톨릭의 영향 및 불교로 인하여 이슬람은 수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몽골의 원 제국은 모든 종교에 관용함으로 도리어 이슬람이 온 천하에 퍼질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12세기의 몽골의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중앙 정부를 통한 지배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각 지역의 문화와 종교에 동화되어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일칸 국과 차카타이칸 국에서는 왕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국민 전체가 이슬람 화되기 시작했다. 조금씩 남아있던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은 14세기 티무르의 등장과 함께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이후로 이 지역에서 이슬람은 국민들 전체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었다. 더구나 마리(투르크메니스탄의 고대도시, 옛 명칭은 메르브)나 부하라(우즈베키스탄의 고대도시)와 같은 도시는 수피 모슬렘들의 성지가 되어서 메카를 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대신 방문할 수 있는 성지처럼 되었다..
또한 15-16세기의 이슬람 수피즘 운동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슬람의 전파를 더욱 왕성하게 했다. 이슬람 수피즘 운동의 배경을 살펴보면 당시 중앙아시아 투르크족들은 전통적으로 과거 우리의 조상들과 같이 노래하며 춤추며 놀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러한 놀이 문화를 죄악시하는 종교이니, 사실상 애초부터 중앙아시아 인들에 체질에 맞지 않는 것 이었다. 그래서 국가 집단의 종교로 이슬람을 받아들인 마당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슬람 종교를 그들의 문화에 맞게 상황화 하는 일이다. 이러한 욕구에 부흥해서 일어난 운동이 수피즘 이슬람 운동인 것이다.
이슬람의 왕성한 확장의 역사 가운데에서, 당시 외부 세력이었던 중국과 징기스칸의 몽골제국과 러시아의 공산화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슬람의 동진을 막았다고 해석될 수 있다.


Ⅵ. 복음의 서진 운동 및 땅 끝(The ends of the earth) 운동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장 8절)

모든 종교는 아시아에서 시작 되었다. 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유교, 도교,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를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모든 종교가 동쪽, 동진을 함으로서 꽃을 활짝 피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는 미미하지만 복음의 동진도 있었지만, 유독 타종교와는 다르게 기독교만 서쪽으로 서진함으로서 복음의 확장과 지경을 넓혔다. 즉, 사도행전 16장 6절에서 10절을 보면 사도 바울도 역시 아시아로 복음의 동진을 하고자 하였으나, 성 삼위 하나님 즉, 성령과 예수의 영, 그리고 성부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서, 사도 바울에게 마케도니아 환상을 보여줌으로 그의 복음 전파의 사명이 아시아 지역이 아니고, 지중해를 중심한 유럽 지역이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결국 지중해를 중심한 유럽의 복음화로 확장되더니, 드디어 대서양을 건너 북, 남 미주지역에 복음 열매를 활짝 피었으며, 이제는 태평양을 건너 강권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대한민국과 중국을, 걸쳐서 창의적 접근 지역으로서의 실크로드 지역인 중앙아시아 특히 카자흐스탄에서 중동지역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정착이 될 것이다.
전호진 박사 컬럼을 보면 기독교 선교의 “Back to Jerusalem”과 이슬람의 동진 운동이 다시 중앙아시아에서 조우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Back to Jerusalem 운동은 1920년대 중국의 일부 지도자들이 시작하고 한국에서 일부 선교단체가 적극 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당시 이 운동은 이슬람의 동진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힌두교, 불교의 미전도 종족 선교를 강조한 점에서 현대판 미전도 종족 선교 운동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Back to Jerusalem” 운동에 의하여 최근 한국과 중국교회는 신장 위구르
//
Ibid, p.1 신장 위구르는 과거에는 동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독립을 선포한 적이 있으나 중국에 흡수되었다. 지금도 일부 망명가들이 터키와 중앙아시아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신장 지역에서도 소수 극렬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완강하게 저항함으로 종종 테러가 일어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이 인접한 신장의 독립문제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도리어 중국과 정치적으로 손을 잡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중앙아시아 5개 국가는 빈 라덴의 극단적 원리주의를 경계하여 신장의 독립이 도리어 중앙아시아에는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

의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슬람 테러와의 충돌 못지않게 중국 서부의 무슬림들과 중국 기독교의 영적 전쟁을 더 우려한다. 신장지역의 이 강경 무슬림들은 완강하게 독립운동을 전재하고 이슬람 세계는 이것을 지원한다.
그런데 중국 대부분의 교회들, 가정교회마저도 21세기 이슬람 선교는 중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한 열의를 보이는데, 그 이면에는 신장을 정치적으로 장악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 복음으로 정복해야 한다는 의지가 숨겨져 있다. 이점에서 중국 기독교회는 신장 장악을 위하여 민족주의와 기독교 선교가 결탁하는 묘한 현상이 일어난다. 즉 하나님 나라 건설보다 강력한 중국 건설에 박해받는 중국교회가 일조를 한다는 애국심이 깔려있다. 기독교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주의이다.

본 필자는 전호진 박사의 논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찬성을 표한다. 그러므로 “Back to Jerusalem 운동을 중화사상에 의한 민족주의적 운동과 지역적, 일부 선교 단체의 운동이 아닌 현대판 미전도 종족 선교 운동으로 적극 해석을 하여, 종말론적 서진 운동과 땅 끝 운동의 종합적 선교 차원으로 승화시켜, 전방개척선교(Frontier Mission)와 전방개척선교사역(Frontier Mission Work)으로서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야만 한다.
특히 현재 10/40 창 미전도 종족 선교 대상 모든 지역에서, 이슬람과는 다른 타 종교권인 힌두교권, 불교권 등은 자국 우월 종교주의로 말미암아 다른 나라로 포교 활동이 없이, 오직 수성에 주력하는데 비하여, 이와는 전혀 다르게 이슬람은 엄청난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한 난공불락 마지노 요새와 같이 대내적으로는 기독교 선교에 대하여 총체적, 제도적인 저항과 대외적으로는 서방 기독교권에서의 조직적인 왕성한 활동
//
Ibid, p14 요르단의 한 언론인이 저서에서 알 카에다의 전 세계 이슬람 화 7단계를 밝혔다. 알 카에다는 5억 명의 무슬림 전사를 동원하여 2020년까지는 전 세계를 이슬람 화한다는 것이다. 그가 밝힌 7단계는, ① 9.11테러 이후 무슬림 각성의 단계, ② 젊은 무슬림을 대군으로 충원하는 開眼의 단계, ③ 시리아, 터키,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봉기단계, ④ 2013년까지 사우디 등 일부 산유국 왕정을 무너Em려 미국경제를 붕괴시키는 단계, ⑤ 2016년까지 칼리프 나라건설, ⑥무슬림과 비 무슬림 간의 성전 수행, ⑦ 2020년까지 승리 쟁취이다. 이에 대항하여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100 만 자비량 선교사를 2020년까지 파송하고자 한다.
//

으로 인하여 주님의 지상 최대 명령이신 땅 끝까지 복음 전파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즉 기독교의 대 이슬람권 선교 사역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형국이며, 역으로 기독교권 내에서는 기독교의 수성조차 너무도 버거운, 아니 속수무책인 오늘 날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따라서 실크로드 Network는 주님의 절대 명령인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한 필수 불가결의 시너지 효과를 양산하는 전략이라고 사료된다.


Ⅶ. 결 론


북위 35도에서 45도를 가로질러 갈라놓고 <투르크 윈도우>라는 이슬람 선교의 새로운 통로(通路: Gateway)를 모색하고 있는 서구 선교의 새 이슬람 선교정책의 참 뜻은 무엇인가? 비서구 세계의 선교지도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가 여기에 있다. 라고 한 조 동진 박사의 화두와 같이, 현실적으로 들어난 실크로드 지역 투르크 창인 중앙아시아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한 종교적 핍박을 본 필자가 직접 체험하며, 나아가 향후 중앙아시아 지역 선교의 동향을 객관적으로 전망해 볼 때, 기독교 선교의 전방개척선교(Frontier Mission) 운동과 이슬람의 동진 운동이 다시 실크로드(중앙아시아)에서 조우하는 것에 대하여, 본 필자는 우려하는 선을 넘어서, “이 천국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 되어야 그제야 끝이 오리라”란 대 사명의 말씀과 같이, 앞으로 아마게돈 전쟁과 같은 무서운 폭발력을 가진 선교의 대 사령관 되시는 주님의 재림 완성을 위한 최후 일전의 공격과 방어가 아닌 가 사료된다.
따라서 바이블 실크로드의 부활 비전을 품고, 실크로드 지역 시니어 선교사들과 한국과 일본 그리고 현장 이슬람 선교 전문가들이 만나 Network 전략회의를 나누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또한 전방 개척선교 운동이 몇 몇 단체의 전유물로서의 구호가 아닌, 세기말 결전장으로서 진정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전 세계 모든 선교 관련 단체와 교단 및 교회, 그리고 현장선교사들이 일심하여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고, 더불어 중보의 기도로 총력을 기울여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있다고 본 필자는 강조한다.

즉,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에 우리의 모든 선교 사역이 총력 집중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전방개척선교의 서진 및 땅 끝 운동이 보다 강성한 힘을 받고 추진력을 얻으려면, 한국교회와 교단 및 선교단체, 그리고 실크로드 지역에서 사역을 하는 현장 선교사들의 Network을 통한, 복음의 완결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연합과 협력이 너무도 절실하다.


* 실크로드 Network를 위한 제안
1. 실크로드 선교 현장에서 사역하고 있는 모든 사역자들이 더 야성 있는 복음 안에서의 선교사적 정체성 회복(사도행전 4:17-20).
2. 이슬람 현지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Ethnocentrism(자 문화우월주의)에 입각한 한국적 문화 상황을 심지 말고, 효과적인 이슬람권 전도법을 개발 및 공유해야 한다.
3. 당장 눈앞의 열매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확장성과 선포성에 집중해야 한다(마24:14).
4. 선교 사역의 획일성 강조와 강요가 아닌 사역의 다양성(고전12:4-7)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통일성(엡 4:4-6)에 사역의 열매에 집중해야 한다.
5. 지역 사회개발을 통한 전도 활성화로서 어항 전도법(Aquarium rule of evangelism) 적극 활성화: 구제, 의료, 문화 및 컴퓨터, 어학센터, 직업 훈련을 통한 지원이 확대 되어야 한다.
6. 현지인 교회지도자를 양육하고, 리더쉽 이양과 함께 선교케 하는 전략. 즉 “동질집단의 사람이 동질집단을 개종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
미국 풀러신학교 교수인 맥가브란이 “교회 성장 원리”에서 주장
//

7. 교단 선교부나 선교단체는 선교 전략과 전술의 미공유와 미공존 그리고 중복투자로 말미암은 선교 인력, 선교 재정, 선교 시스템 낭비의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
8. 교단이나 단체를 위한 선교가 아니라, 선교의 대 명령을 하달하신 ‘주님을 위한’, ‘주님에 의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제자도에 입각한 진정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선교가 목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바이블 실크로드 권에서 Network를 통하여 유기적 전략적 연합과 협력을 바탕으로 하여, 야성 있는 초대교회 제자들처럼 모든 선교 관련 단체와 교단 및 교회, 그리고 현장선교사들이 일심으로 정신 재무장과 위로부터 주시는 지혜와 성령 충만을 유지 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개발을 통한 현지인들의 동의와 협력을 통하여서 기독교 탄압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한다. 또한, 지하 교회 사역이나, 지상에 등록 된 교회에서의 선교 사역이 획일성의 강요가 아닌 선교의 다양성을 서로 인정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주력하여야한다. 바로 그럴 때 예수그리스도 안으로 유입된 청년들을 진정한 신앙인으로 성령 안에서 확실히 양육을 시켜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 선교의 전방개척선교(Frontier Mission)의 통로인 이슬람 권 실크로드(중앙아시아)에서의, 특히 카자흐스탄에서의 선교 사역이 확실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확실한 부흥이 다시 불 일듯 일어 날 수 있다고 필자는 다시 한 번 확신한다.



▣ 참고 서적 ▣

1. 조동진 “북방 선교의 실크로드 중앙아시아의 의미” 중앙아시아 미션 컨퍼런스
강의안, 서울: WKMF 중앙아시아회, 2005
2. 전호진 “신장 위구르를 중심으로 본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크리스천 투데이 선교 칼럼 1, 2006
3 김경일, “9.11테러이전과 이후의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선교현황 및 전망”. 중앙아시아 미션 컨퍼런스 발제안, 서울: WKMF 중앙아시아회, 2005
4. 한선협(KWMA), 한국교회의 새로운 도전 전방개척선교, 서울. 한선협 2005
5. 김성태, 세계 선교 전략 사,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4
6. 김활영 편저, 세계 선교의 비전. GMS 출판, 1998
7. 이희수. 한. 이슬람 교류사. 서울: 문덕사, 1991
8. 전호진. 이슬람 종교인가? 이데올로기인가? SFC. 2002
9. 스테픈 니일, 기독교 선교사, 홍치모역, 성광문화사, 1992
10. 이장식, 아시아고대기독교사(1-16세기) 서울: 기독교문사, 1990
11. 사재동. 실크로드와 한국문화의 탐구. 대전: 중앙인문사, 2001
12. 최한우. 중앙아시아학 입문. 서울: 도서출판 펴내기, 1997
13. 카자흐스탄 알마타 선교사협의회, “2004 한인선교사 컨퍼런스 자료 CD. 2004
14. 전호진, “21세기 세계 선교의 동향과 한국교회의 대 이슬람 전망” 방콕 2005 중앙아시아 미션 컨퍼런스 강의안, 서울: WKMF 중앙아시아회, 2005
15. 이지희, “한국, 전 세계 해외선교사의 십일조 파송해” 크리스천 투데이 선교. 2006
16. 사무엘 H. 마펫, 아시아기독교사, 장신대출판부, 1997
17. 김뾰뜨르 게르노비치. 방 상현 공저“재소 한인 이민사.” 탐구당. 1993

18. Г. И. Богомолов, Ю. Ф. Буряков, Л. И. Жукова, А. А. Мусакаева, Г. В. Шишки-на, "Христианство В Средней Азии", Из Истории Древних Культов Средней Азии Христианство (Ташкент, 1994)
19. Виктор дик, Свет Евангелия в Казахстане. История в озвещения Евангелия и распространения обшин бапт истов и меннони тов в Казахстане (первая полвиеа ХХ века. Штайхаген. 2003)
20. W. Cureton, Doctrine of Addai, Ancient Syriac Documents (London: 1894; reprint, Amsterdam: Oriental Press, 1967)
21. B. A. Litvinsky, The Rise of Sasannian Iran. History of Civilization of Central Asia. vol. 2. ed. J. Harmatta (Paris : UNESCO, 1994)
22. A. Mingana ed., and trans., Sources Syriaques, vol. 1, Mshiha-zkha, Texte et Traduction (Leipzig: Harrasowitz, 1907)
23. J. B. Abbeloos, ed., "Acts Sancta Maris, Assyriae, Babyloniae ac Persidis seculo Apostoli...," in Analecta Bollandiana, 55 (Brussels: 1885)
24. Richthofen. F. V.: China I, : Ders Uber die zentral-asiatischen Seidenstrassen bis zum 2.Jh. n. Chr. (Verhandlungen der Gesellschaft fur Erdkunde zu Berlin, 1877)
25. W. Cureton, Doctrine of Addai, Ancient Syriac Documents (London: 1894; reprint, Amsterdam: Oriental Press, 1967)
26. H. J. W. Drijvers, Bardaisan of Edessa, trans G. E. van Baaren-Pape (Assen: Van Gorcum, 1966)

프린트 메일보내기
관리자 모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