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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오피니언 > 간증문 등록일 2007-03-03
작성자 관리자 (admin)
[북한성도 간증집] 35. 그 누가 뭐래도 하나님 아들
예수님 믿고 걸어온 길을 돌이켜볼 때 고생스럽다 할까 아니면 영광스럽다 할까 하여간 어느 것이 딱히 옳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신적으로는 평안이 있지만 육체적으로는 참기가 어려울 정도로 힘겹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 말씀 드림은 사랑하는 영혼들을 실망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난 육체적 고통을 많이 당했기 때문에 주를 믿고 걸어온 길 고생스럽다 이야기하는 겁니다.
한편 생각하는 것은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할 때 내가 겪는 고생 따위는 전혀 고생이 아니 었다 믿습니다. 왜냐하면 육체적으로는 고생스러워도 마음만은 항시 평안했기 때문입니다.
두해 전 겨울 제가 북한지하교회 지도자 학습반을 지도할 때의 일이였답니다.

그 때 당시로 말하면 공산사상에 물 젖고 또한 사회주의식 문화에 찌들어 살아온 탈북자들을 교육하는 게 너무도 힘겨워 북한선교를 하시던 분들마저 모두 손을 털로 나 앉아 버리다나니 중국지역 교회마저 북한 탈북자들을 멸시하는 때라 우린 그 어디 가서 도움을 받을 데라곤 없는 처지였답니다. 그리하여 무슨 일을 하려면 자체 해결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하여 난 낮에는 훈련생들을 학습시키고 밤에는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양식을 마련할 돈을 벌어야 했지요.
정확한 시간을 말씀드린다면 오후 4시가 되면 산막을 떠나 시내에 나옵니다. 밤새워 쓰레기통을 뒤져 모은 낡은 박스며 병을 모아 날이 밝아 팔고는 40여리 길을 걸어 산막에 돌아옵니다. 돌아와 공부를 시키고 오후면 또다시 시내로 향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 되니 온 육신에 피곤이 몰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나 방법이 있습니까? 도와주는 데는 없고 그렇다고 주의 일은 포기할 수는 없지요. 어쨌든 죽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 아래 피곤을 참고 견디는 거죠. 견디노라니 견디어내게 되더군요.
참,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이라 했는데 와야로프(쇠밧줄)보다 더 질긴 게 사람의 목숨인 듯싶습니다. 엄동설한 그 추위에 밤잠도 못자고 종횡무진 하는데 영 죽지를 않는 거죠. 죽지를 않으니 어떤 날에는 쓰레기통 뒤지다가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가 너무도 많은 거죠. 그해 설 명절을 하루 앞둔 날 이였답니다.
그날도 나는 쓰레기 주우려고 거리를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명절이라고 평안히 쉬면 막 안의 6명의 학생들이 굶게 되니 쉴 수가 없는 거죠. 남들은 명절이라 폭죽을 터트리며 좋아들 하는데 난 솔직히 기분 없이 넝마주이 갑니다.

“야~ 어쩌면 하나님의 아들이 명절날조차 쓰레기 주우러 가다니 재수 없구나.” 속으로 불평하며 걷노라면 이런 생각 또 듭니다. 내 비록 쓰레기 통 뒤지러 가도 저 폭죽을 터트리는 사람보다 어찌 보면 행복할 수도 있다. 저 사람들은 폭죽을 터트리는 게 고작 기쁨이라 생각하겠는데 저 기쁨이 사라지면 어떤 것에서 기쁨을 찾을 것인지 난 그래도 역사에 길이 남을 이야기라도 남기지 않는가? 저들은 과연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저들은 설날에 쓰레기통 뒤져 보려고 몸부림쳐도 내 하는 일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남들이 못하는 일하는 내가 저 사람들 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자체로의 위로를 합니다. 하기야 폭죽을 터트리는 일 그 누구나 결심만 하고 주머니에 돈 부스러기가 조금만 있어도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쓰레기통 뒤지는 일이야 그렇습니까? 제 아무리 설날에 쓰레기통 뒤지고 싶어도 뒤지지 못할 것이고 돈이 많다고 해서 쓰레기통 뒤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날 보니 쓰레기통 뒤지던 사람들도 명절이라 쓰레기통 뒤지려 하는 사람 없던데 유독 나만이 쓰레기통 뒤지는 거죠. 그날 쓰레기통 뒤지는 사람이 없어 손쉽게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만 어쨌든 그 누구도 못하는 일 한다고 생각하니 영광스럽고 또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도 드는 거죠. 감사한 마음이 생기니 내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찬송가와 함께 쇠갈고리로 쓰레기통을 한번만 뒤집으면 병 한개 톡 튀어나오고 두 번 뒤지면 또 한개 톡, 하여간 성취가 나는 거죠. 그렇게 쓰레기를 뒤지다나니 어느 덧 시간이 흘러 폭죽소리도 뜸해지고 내가 메고 있는 자루에는 불룩하니 병이며 박스가 차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내 뒤고 승용차 한대가 와서 멈추어 섰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차에서 경찰아저씨 그것도 적지 않게 높은 급의 경찰아저씨가 내려서는 쓰레기통 뒤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이 참, 야단입니다. 외국어 실력이래야 기껏해야 “니 하오?”밖에 모르는 나인데 저 경찰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거는 날에는 실지로 설 명절날 재수 없이 서늘서늘한 곳으로 가게 됐다 생각하며 주여, 주여, 하는데 말없이 날 지켜보던 경찰아저씨 아파트 현관 안으로 들어갑니다.
“어이구나, 살았구나!”
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또다시 쓰레기통을 뒤지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나를 지켜보던 경찰아저씨 내 등 뒤에 나타나 나를 부릅니다.
그리고는 나에게 커다란 비닐봉지를 안겨주고는 현관 안으로 들어갑니다.
의아한 마음에 경찰아저씨 주고 간 비닐봉지를 헤쳐 보니 묵직한 비닐봉지 안에는 2kg도 더 되는 사탕과 경찰용 군화 그것도 완전히 새 가죽 군화가 들어 있습니다.
“야^하,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명절용 선물을 경찰아저씨를 통해 주시는구나. 하~참, 그러고 보니 저 경찰아저씨 김정일보다 더 좋은 아저씨군.”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시내에서 넘겨다보이는 강 건너 북한 땅은 캄캄한 어둠 세상이지요. 불빛이라고는 김정일 저놈의 애비인 김일성의 동상 앞에만 비추고 있지 온통 캄캄한데 김정일이 저 캄캄함 속에서 신음하는 국민에게 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기껏해야 그을음 냄새나는 두부 한모에 농태기 소주 한 병 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착하게 다듬으신 경찰아저씨 산막에 있는 형제들과 명절날 함께 먹으라고 사탕에다 또 경찰용 가죽구두 새것을 주니 김정일보다 훨씬 월등하다 봐야겠지요. 이것이 바로 슬픔을 기쁨으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방식이 아니겠는가? 난 생각합니다.
그런데 쓰레기통을 뒤지다보니 이 경찰아저씨처럼 좋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같은 넝마주이 꾼으로 한 운명의 배를 탔다고 할 수 있는 쓰레기 뒤지는 사람이 머리를 숙여 쓰레기통 뒤지는 사이에 내 자루에 들어 있는 병을 가만히 도적질해 제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도 체험하게 되는 거죠. 그보다 더 악한 심보를 가진 사람들 보면 말입니다. 복 받아라 복음을 전했는데 빗자루 들고 달려드는 사람들 있었지요.
어느 몹시도 추운 날 이였지요. 강바람에 눈이 날려 순식간에 쓰레기통을 덮어 버려 눈을 쳐 내고 쓰레기를 뒤지다나니 그 날은 별로 소득이 없었지요. 소득이 없으니 몸은 더욱 지치며 금시 쓰러질 것만 같은 거죠. 그렇다고 야밤에 산길을 걸어 막에 간다는 건 천만번 위험한 일이였지요. 왜냐하면 바람에 날린 눈이 길을 메워서 길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다가는 산에서 길을 잃어 엄청난 손해를 볼 수도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쓰레기통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힘들다고 가만히 있으면 몸이 얼어들어 잠시도 쉼 없이 몸을 움직여야 얼어 죽지는 않기에 부지런히 쓰레기봉지를 찾아다니는 거죠.
이렇게 다니는 내 앞에 몇 개의 쓰레기 봉지가 나타났기에 봉지를 열어보니 “와하하” 상표 물병 세 개 톡 튀어 나오는 게 아닙니까. 병 하나에 8전 단번에 24전. 더없이 큰 수확이라 기뻐하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그 순간 딴딴한 눈덩어리가 수류탄인양 날아와 내 머리등에 딱 소리 내며 부딪힙니다.
동시에 눈가루가 날리어 내 목에 흘러들어 온 몸이 냉기로 오싹합니다.
순간적인 격동에 몸을 일으켜 획 돌리니 빗자루와 함께 근 십년 청소부 아주머니가 쓰레기가 날린다며 나에게 눈덩이를 던진 겁니다.

자기가 던진 눈덩이가 면바로 내 머리등을 명중시킨 것이 감개무량한 듯 아주머니는 키득키득 웃고 있는 거죠. 웃고 있는 아주머니를 향해 한 달음에 달려간 나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지요.
“니 씬 선뭐?”(넌 무엇을 믿는가) 그러자 청소부 아주머니는 별 싱거운 자식 다 본다는 태도로 나를 바라보더니 “니 수워 썬머?”(네 말이 무슨 말이냐)라고 되묻는 겁니다. 그래 제가 “니 씬 예수 마?”(네가 예수를 믿느냐?)라고 물으니 “워 부 씬 예수.”(난 예수 안 믿는다)라고 대답하는 거죠.
그래서 꺽꺽대는 중국말로 네가 예수를 믿지 않으니 마음이 나빠 나에게 눈덩이를 막 던진다. 그러니 너도 예수 믿고 복 받아 착한 사람 되라 했더니 들고 있던 마당비를 쳐들며 금시 날 때리려고 덤벼드는 겁니다.
“아따, 이런 오늘 저 아줌마의 빗자루에 얻어맞아 원치 않는 순교를 당하는 게 아니야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외친 거죠.
“니 칸칸 워쓰 선더 얼즈.”(네 봐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하자 하늘을 힐끔 쳐다보더니 “니 여우 삥 마?”(너 병이 있는가?)라고 묻는 거죠.
그래 또 “워 메이여우 삥. 워 쓰 선더 얼즈.”(난 병 없다. 나는 하나님 아들이다)라고 했더니 “선진삥”(정신병 같은 것.)라고는 비실비실 달아나는 겁니다.
나를 정신병 환자라 비실비실 달아나는 그 여인을 보며 난 이런 생각 한 거죠. 그나마 하나님 은혜로 추위 속에서 일하는 걸 감사해라. 네 앞으로 지옥의 불덩이에서 고생할 여자 같은데 추위 맛을 실컷 보는 것도 행복한 일로 생각해라. 참말이지 예수 믿지 않는 자들 중국이나 북한이나 어쩌면 한 결 같이 저리도 무지막지한 인간들인지 원 저것이 악인의 모습인가 불쌍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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