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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인도차이나 등록일 2007-01-25
작성자 관리자 (admin)
태국문화의 이해와 선교사의 자세
김문수 선교사
서론
선교사로서 태국에서 사역을 해오면서 태국과 한국의 서로 다른 문화와 세계관으로 인해 오해와 사역의 혼란이 계속하여 있어 왔고, 만 8년째에 다 되어가는 지금 역시 태국에 대한 무지로 인해서 쓴웃음을 짖고 돌아서는 때마다 태국 선교사 로써 자신을 잃고 과연 어떻게 태국에서 사역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수시로 의문과 혼란을 가져왔다.

본론
1. 선교사가 태국교회와 사역을 함께 함에 있어 거치는 단계
태국에서 짧은 기간의 사역에 임하면서 몇가지 태국에 대한 본인의 변화를 구분해보며 선배들의 경우를 보면서 지금이후의 사역의 단계를 그려보았다.

1) 벙어리 냉가슴 단계
뭔가 사역을 많이 할 수 있는데 말이 되지 않아서 사역을 하지 못하여 안타까워 하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단계를 언어 학교시절에 격는다.--언어가 되지 않아 무조건 웃음으로 때워야 하는 기가 막힌 코메디인 시절이다. 태국에 대한 이해에 보다는 자신의 꿈에 충만해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단계이다.이때에는 태국인의 필요에 대하여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는 전혀 모른다. 이때는 태국의 문화에 대한 무지로 무조건적인 분노를 느끼고 태국을 바꿀 정의감속에 있다.

2) 말더듬이 단계
전혀 말 못하는 것도 아닌 말을 뭔가를 하고 있으나 태국인이 전혀 못알아듣고 있어 가슴을 치는 안타까운 단계이다. ---언어훈련을 끝내가면서 태국에 대해 알아가려하고 사역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선교사의 생각을 알리려하지만 그럴수록 태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해 안타까워 한다. 그들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현지의 문화와 선교사의 다른 문화로 인한 차이를 공부해 가야 할 단계이다. 이미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에 대해서 정죄하는 의식을 갖게 되기도 한다.

3) 선교의 열정이 분출되는 단계
글자를 배워 읽어 가며 이에 희열을 느끼며 기뻐하는 초등학교 1학년의 단계이다--- 사역에 들어서며 이제 까지 참고 하지 못했던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열정을 토하며 사역에 모든 열심을 투자한다. 선교사로서의 가장 많이 실수를 범하는때요, 태국인을 가장 많이 이해한다고 하나 부분적인 것을 전부로 인정하여 실수를 범하나 선교에 있어서 가장 추억을 쌓는 때이며, 한국선교사에게 있어서 귀국의 위험과 건강의 위험을 초래하는 시기요, 자신의 약간의 결실이 전부인양 교만해 지기도하며, 태국인에게 상처를 가장 많이 입히고, 또한 상처를 입힐수 있는 시기이며 동료 선교사간에 혹은 선후배간에 부딪힘이 가장 많을 때이기도 하다.
4) 선교사역이 냉정을 찾아가는 단계
안식년을 마치고 새로운 사역을 시작함에 있어 나의 필요보다는 선교지의 필요에 민감하며 한 텀이 너무나 빠르고 허무하게 지낸 것 같아 사역에 신중을 기하게 되는 단계이다. 태국인과 관계를 새롭게하며 태국인의 문화를 비판하기 보다는 그 속에서 고민하며 결정을 유보하며 해답을 찾는 단계이다.(예: 교회 건축시 목회자의 사택이 더 훌륭하게 동시에 건축되고 있는 상황, 전도, 헌금, 여가시간 활용,식당에서의 식사, 가난한집의 중되는 의식, 결혼식, 입주예배등) 이때쯤에 아이들에 대한 문제로 한번씩 어려움을 격으며, 사역에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5) 선교사역에 질서를 찾으며 정착되는 단계

6) 선교사역을 재 정리를 하며 자신의 사역의 범위를 재정리하는 단계

7) 선교의 열매를 후배를 위해 사용하며 사역을 나누는 단계


2. 태국인의 세계관
태국의 전통문화는 예전 힌두교의 종교의식과 중국인들 사이에 있는 조상숭배 의식, 중국에서 내려온 산에 사는 부족들의 샤마니즘과 더불어 불교의 철학이 가미되어 새로운 불교라는 옷을 입은 종교가 되었는데 이로 인해 모든 문화가 위의 열거한 종교의식등과 문화풍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므로 모든 전통 문화속에서 혼합된 종교의식들이 태국인의 삶 구석구석에 깊이 스며들어가 있다. (예 손을 합장하여 인사하는 태국의 인사법) 태국인은 어려서 부터 불교의 교리에 젖어 있기에 모든 사고가 윤회설과 운명론에 깊이 관여 되어 있다. 부요함도 전생의 결과이요, 권력을 갖게됨도 전생의 업의 결과이기에 이스람교의 모든 것이 신의 뜻으로 돌려버리듯이 태국인들 스스로가 전생의 업보에 의하여 되어진 현실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갖는다.

1) 태국인의 정치관
현행 헌법하에서 왕국은 국가원수 및 국군 통수권자가 된다. 그는 성스럽고 신성불가침의 인물로 추앙받으며 국민의 이름으로 국회의 동의와 자문을 받아 입법권을 행사하며, 수상을 임명하기도 한다. 왕족은 태국사회의 구심점이 되며, 국가 연합의 상징과 국가복지 및 전통의 수호자로 인정받고 있다. 태국헌법은 이러한 태국의 수호자인 왕인 불교인 이어야함을 명시하고, 신문과 방송에는 왕이 승려보다 낮은 자리에 좌정하며 승려에게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보게 되므로 태국인에게 있어서 정치까지도 불교의 법력아래 있음을 암시주고 있는 것이다.

2) 태국인의 사회관
태국에는 모든 마을에 사찰이 있기에 마을과 가정의 희로애락이 사찰의 승려의 가르침과 지도아래에 진행이 된다. 때문에 태국인은 사소한 일부터 큰일에 이르기 까지 큰 윤회의 수래바퀴처럼 돌기에 묵묵히 받아들이며 모든 마을 행사,가정의 중요한 행사는 모두사찰에서 진행되기에 모든 사회의 구조속에 부처의 가르침과 의식이 들어 있다. 이는 신앙과 관계없이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때문에 불교를 떠나 새로운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마을의 공동체로부터 누리는 혜택과 관계를 끊어야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3) 태국인의 교육관
태국인의 교육의 시작을 사찰에서 시작케하고 그 학교의 교사는 사찰의 승려가 맡았다. 오늘날은 절학교보다는 국립학교나 사립학교가 더 많이 있지만 모든 학교에 종교행사와 가르침 함께 진행된다. (예: 매일 조회시, 시험을 보기 전에, 교과서에는 절을 배경으로 하여 국어 , 역사.문화, 산수등이 소개되고 있기에 태국의 교육은 불교교육의 연속이다.) 교사들 또한 불교의 보호자인양 착각하여 타종교 학생을 이해 못하고 어려움을 주는 예가 종종 발생 한다.


4) 태국인의 경제관
태국의 경제는 아시아에서 주목되는 나라 중에 하나이지만 주변의 공산국가의 경제적 낙후함이 태국의 경제를 크게 도와준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태국의 천연적인 기후과 지형을 통한 관광산업과 세계의 제2위의 쌀 생산과 사탕수수가 태국의 주요 외화 획득의 길이다. 이러한 중에 태국의 경제권은 중국계, 인도계, 월남인계순으로 찾지 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이래 특별한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 태국인의 안일함이 그 원인중하나이며 반대로 중국인, 인도인, 월남인은 어려운 피난살이 끝에 살아남기위해 악착같이 상권을 쥐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국인, 월남인, 인도계는 대부분이 불교, 힌두교, 조상숭배인데 이 세가지 종교의 의식과 신앙을 태국 불교가 다 포용하였기에 그들의 가진 경제력과 신앙이 태국에서 불교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부를 윤회설과 업보에 따른 운명적인 결과로 보는 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 들이고 부끄럽기보다는 불편한 정도밖에 느끼지 않는다

5) 태국인의 종교관.
태국인들이 중국의 중북 지방에서 4,500년 전에 일어나 지금의 쨔우파야평야에 정착하기까지는 수많은 종교 사상을 받아 들였고 또 그것을 몸에 체득했다. 태국사람들이 힌두교나 불교를 접촉하기 전에는 저들은 어디까지나 정령숭배 및 자연 숭배자들이었거나 혹은 아시아 대륙에 유포되었던 미신을 섬겼다고 본다. 중국 사람이나 한국 사람에서 흔히 보는 '하나님'사상이나 '상제'개념은 찾아볼 수가 없다. 위에서 말한 것 같아 태국인은 단순히 "phi(피이)"라고 부르는 영의 존재를 믿은 것 뿐이다. 죽은 사람의 영이나 어떤 형의 영이나 다 한가지로 phi(피이)라고 부른다. 물론 태국인들의 종교 관념은 주로 인도 문화와 힌두교의 영향하에 형성된 것이다. 수많은 신화에 미신으로 가득차 있다. 태국 사람들은 도시의 교육을 잘 받은 지성인이나 혹은 밀림촌의 글을 읽을 수 없는 문맹인에 이르기까지 저들은 다 한가지로 흑암의 악영 phi(피이)의 절대적인 지배하에 살고 있다.
특히 람깜행(Ram Kam Haeng)왕이 태국 종교의 기초를 소승불교로 권장했고, 또 정신적 문화적 생활의 주역을 맡도록 촉진했다. 불교가 국교인 태국은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이슬람,기독교,쁘라만교,힌두,시크교,유고 등이 인정되며

6) 태국인의 천국 및 지옥에 관한 믿음
(윤 수길, Discipleship Ministry As Power Encounter in Thailand중 the Human Centered World View, 19941) 태국 불교의 천국,천국관

천국관
태국불교에는 6개의 천국이있다. 이 천국은 신들의 세계이다.
첫 번째 천국은 메루산 정상 아래에 있는데 그곳은 세계를 지키는 수호신이 머무는 곳이다. 이들은 각각 4분의 1씩 경호를 하며 신들을 섬긴다.
두 번째 천당은 메루산 정상에 있는 삭카신의(Indra) 영역이다. 인드라신은 4명의 수호신을 다스리며, 수호신들과 함께 인간과 동불 세계에 관계한다.
깜마품에는 인드라의 천당보다 높은 4개의 다른 천당이 있다. 그중 네 번째 천당이 장차 부처와 구세주로 이 땅에 올 자비의 신인 마뜨레아의 처소인 뚜시따이다. 반면에 6개의 하위 천당은 형상과 감각의 세계인 까마품에 속하는데 그중 높은 천당은 형상과 지적유희의 세계인 루빠품이다. 이 천당은 16단계로 되어 있다. 루빠품의 세계를 지나면 형상과 감각이 없는 4개의 아루빠품이라는 세계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은 뜨라이품 (삼세계) 에서 가장높은 수준이다. 현세 저쪽에는 열반(nibbana)라는 불리우는 다른 세계가 있는데 이곳은 윤회의 세계를 초월한 부처들의 세계이다.
이러한 불교의 진리에 젖어 있는 태국인은 천당을 향한 거의 비관적이고 포기된 상태로 있다. 왜냐 하면 자기들의 선한 행위로는 천국에 이를수 가 없으며, 또한 기독교에서 표현되어진 천당도 불교의 천국에서 최고의 단계가 아니기에 불교에 대한 우월감이 생겨서 이것이 복음전파에 장애의 요인이 된다. 그래서 태국인들의 내세관 또는 천당관은 불교의 윤회설에 근거한 생노병사를 끊임없이 겪으며, 죄에 대한 결과로 지옥으로, 선에 대한 결과로 다음 세계에서 좀더 좋은 위치에서 태어나기에 때로 현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은 다음세계에 대한 기대로 생명을 경시 여기기도 한다.

지옥관
태국인의 지옥관은 상술한 천당관과 윤회설과 많은 관련이 있다. 욕망의 세계라 불리우는 깜마품인데 사후에 지옥과 천국을 그의 행위에 따라 오가며 지내다가 그의 전생에 대한 보응을 마치면 또 다시 윤회를 시작한다. 이는 태국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왜냐하면 유명한 부처인 석가모니도 엄청난 수억년의 세월을 거처 윤회후에 부처가 되었기에 자신들의 부족한 불심과 선으로 인해 지옥에 가거나 다시 윤회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는 생각이다. 깜마품의세계는 11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물질적이며 기쁨과 고통을 느낄수 있는곳이기도 하다. 5개의층은 물질적인 세계인데 그중 4개는 인간, 짐승, 유령, 귀신들이 사는세계이다. 맨 아래층은 457개의 구먼이 있는 지옥이다. 나머지 6개의 층은 싸완(기독교의 성경은 이를 천국이라는 용어로 쓴다) 인데 데바라는 신들이 살고 있다. 맨 아래층에는 뜨거운 불로 재앙과 고통을 수반하는 지옥이 있다.
지옥을 다시 4개로 분류하는데 1) 마하나록 : 8개의구 2) 우사스타 나록 : 128개의 구덩이 3) 욤똑 나록 : 320개의 구덩이 4) 로깐 나록 : 1개의 구덩이 지옥의심원 이상의 457개의 지옥은 업보에 따라 나누어 지는데 이곳은 지상에서의 잘잘못에 의하여 벌을 받는 고통의 장소이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충분하리 만큼 벌을 받은 후에 환생하거나 나머지 좋은 업보를 즐길수 있다. 이들은 생로병사의 끈임없는 윤회 사상을 믿는다.
지옥위에는 4개의 감각세계가 있는데 거기에는 사람, 짐승, 귀신, 유령들이 살고 있는곳 이라고 믿는다이곳에는 8종류의 사람들이 거하는데
1) 마눗 아수라 : 악마같은 사람 2) 마눗 나록 : 사악한 사람 3) 마눗 프렛 : 영적, 육적, 불구로 인해 악을 행하는 자 4) 마눗 데라짠 : 잔인한 사람
5) 마눗 테 : 진실한 사람 6) 마눗 테와 : 악을 실어 하는 천사와 같은 사람
7) 마눗 프롬 : 도덕적인 사람(자비, 친절, 선 등 ) 8) 마눗 아리야 : 진리와 성결의 사람 이곳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기의 태국인의 지옥관을 볼 때 거의 태국인들이 죽은후에 거처야 할곳이 지옥과 천국이며 현세에 대한 불만족은 또 다른 윤회로 인한 기회가 있음을 믿고 있다. 실제로 태국인들은 지옥에 두려움보다도 다음 세계에서 업보로 인해 짐승이나 특히 개로 태어나는 것에 두려움이 더하다고 할수 있다.

7) 김순일 선교사가 본 태국
(김순일선교사의 “밀림에 세운 십자가”에서 김농원선교사 발췌)
a. 태국인의 기질
태국사람들만큼 낙천적이고 태평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국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열대지방의 더위와 풍부한 자원이 저들로 하여금 낙천적이고 안일무사주의에 젖게했다고 본다. 그래서 태국사람들은 무슨일이든지 서두르지도 않고 염려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선교사들은 너무나 열정적이고 바쁘다. 성미가 급한 선교사들의 조급한 태도가 태국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태국사람들 눈에는 기독교는 “뜨거운 종교”임을 인식한다. 아무튼 태국에서의 선교는 “짜이옌”의 철학을 배우고 이해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한국선교사들의 대부분이 설교시에나 혹은 대화시에 목소리가 너무나 크거나 빠르며 웅변적이다. 태국교인들의 반응은 그 반대로 차갑다. 그들의 생각은 “왜 성경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성난 살마처럼 큰소리로 말하지? 왜 말씀을 조용하게 전하지 못할까?”생각한다. 그들은 감정의 흥분보다는 조용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는 설교을 좋아한다. 태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짜이 옌”의 철학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b. 태국기독교인들의 착오-값없이 얻은 은혜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에 불교도들이였던 이들은 열심히 불공을 드리고 자신의 재물과 시간을 사원과 중을 위하여 받친다. 그러나 저들이 일단 기독교로 개종하고 나면 그렇게 열심히 드리던 불공의 정신과 재물, 그리고 시간을 받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구원은 값없이 받은 것이니 헌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태국교회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예수안에서 구원이 얼마나 값비싼 것이라는 것을 새로 인식시켜 주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c. 태국인의 운명론
태국사람들은 운명론을 굳게 믿고 있으며 모든일의 성패를 운으로 생각을 한다. 저들이 운이 좋다고 말할때에 “초옥 디”라고 말을 한다. 여기에서 생각난 사상중의 하나가 “깜”이라는 운명론이다. “깜”을 우리나라말로 옮겨본다면 “업보”라고 볼 수있다. “깜”이라는 운명철학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어선지 자신이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성취시켜야겠다는 의욕보다는 “깜”에서 오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어리석은 것같지만은 태국사회에서는 큰힘으로 작용을하고 있다. 어떤선교사들이 검소하게 살아가며 초라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것을 보면다면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 선교사는 “깜”이 좋지 않구나 나쁜 “깜”을 가지고 누구를 가르칠 수있나 “깜”이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가르침이 나올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말한다. 태국사람들 속에 깊이 흐르고 있는 “깜”철학을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기독교선교에 성공할 수없다고 볼 수 있다. 태국의 “깜”철학은 불교와 마찬가지로 사회전반에 깊숙히 박혀 있기 때문이다.

d. 태국인의 주체성
태국사람들의 대부분은 기질이 부드럽고 유순하지만 자주성만은 강하다. 외국사람들은 표면에 나타나고 있는 유순한 태국인의 기질만을 알고 있지만 태국인 전체에 묵묵히 흐르고 있는 “주체성”은 흔히 보지 못한다. 외면적으로는 융통성이 없지만 내면적으로는 강한주체 의식이 존재하고 있다. 태국인들은 전통을 고수해야 된다는 주체의식을 표면화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의 의식 구조에서 강하게 작용하여 정치,역사,종교,문화에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e. 태국인의 종교관념
태국인은 단순히 “피이”라고 부르는 영적 존재를 믿는다.죽은 사람의 영이나 어떤 존재의 영도 다 “피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종교관념은 주로 인도문화와 힌두교의 영향아래 형성되었으며 수많은 신화와 신령숭배가 가득하다. 현재 태국은 소승불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데 태국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사람은 인도의 불교포교에 공이 컸던 아소카왕과 그가 보내 선교사들이였다. 이들이 태국에 들어 온 것은 약2천3백년전이다. 이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수백년동안 힌두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 서기 1200-1300년경,태국은 버마 국경으로부터 처음으로 소승불교를 받아드렸으며 캄보디아와 접촉하면서 대승불교와 힌두교의 문물을 많이 흡수하게 되었다. 태국불교도의 특징은 어떤 교리나 가르침에 기초하는 신앙이라기 보다는 관습과 전통속에 살아온 그자체로 불교도임을 자칭한다. 즉 태국불교는 교리나,가르침,심원한 철학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오히러 국민들의 도덕과 윤리와 전통속에 살아 생동하는 “생활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3. 태국교회의 선교사에 대한 자세

태국 기독교 총회에 소속 되어 함께 사역하는 K.G.A.M특수성을 생각하고 특히 본인 동북쪽에 사역하는 관계에 동북쪽을 중심으로 생각을 정리 해 보았다. 한국 선교사들은 서양선교사들에 비해 적은 경험과 선교단체의 배경이 없거나 미소한 상태이지만 그러나 이곳에서 동북쪽에서 한국 선교사들에 대한 기대와 요청은 대단하다. 이것은 우리의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서양선교사가 갖는 단점을 같은 아시아계인 한국선교사가 보안해 줄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A. 긍정적인면
1) 한국교회 유산인 기도운동과 성령운동을 전개하므로 선교 할수 있다.
너무도 다양한 귀신의 역사와 잘못된 성령론을 가르치는 단체들로 인해 혼란이 있는데 성경적인 성령론의 바른 가르침과 성령과 더불어 하는 선교역사는 이미 성공한것과 다름이 없다고 확신한다.
2) 서양선교사의 전제주의적 선교를 지향하고 동역자적인 시야를 가지고 사역하면 좋은 동역자를 만나며 동반자적인 선교사역을 전개 할수 있다. 동양인인 한국인은 실제로 적당한 복장을 갖추면 태국인으로 행세할 수 있고, 오히려 한국인을 무시하기에 약간의 신뢰를 쌓는 기간이 지나면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3) 한국 시골과 너무도 흡사한 생활 습관속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며 동거 할수 있다.
실제로 한국인이 적응하기에 너무도 수월한 음식들이 많으며 더위문제를 제외하고 한국선교사에게 어려움을 주는 요소는 극소수임에 지나지 않음을 알수 있다. 기록과 현지인의 증언에 의하면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음식과 음료를 가지고 다녔고, 침대가 달린 침대차에서 숙식하며 전도 여행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현지인과의 스스로 거리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4) 한국교회 부흥의 산물인 기도와 함께 교인을 심방하는 전통과 구역예배의 전통은 현지 교회가 요구하는 잦은 심방과 격려(환자와 어려움을 당한이들)에 대하여 기쁨으로 부응 할수 있다.

B.부정적인면
대체로 한국선교사가 갖는 공통점이긴 하지만 모두는 아니다 어쩌면 주로 본 선교사의 부족한 면이기도 하다.
1) 짦은 시간내에 이루워낸 한국교회 성장에 대한 향수로 인해 성급히 짦은 시간에 결과를 얻어 내려는 무리수를 두기도 하여 오랜 교회 전통과 장기 계획으로 사역하는 교회에 혼란을 주기도 하나 때로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2) 한국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추억과 한국인의 특유의 정으로 인해 교회자립에 장애요소가되거나 정에 치우친 공정하고 평등한 사역이 아님 편협된 사역을 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3) 개교회위주의 사역에 익숙한 한국교회 선교사가 치밀하고 냉정한 서양선교사에게 배운 행정에 의하여 행정적인 조직적인 허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4)짦은 선교부의 역사로 인해 각종 문제에 대처하는 자세가 획일적이지 못하고 임기웅변적이고, 헛점을 드러내고 욕심을 부리기 쉽다.

C. 동북쪽의 선교 전략
이제 동북쪽에서 오래동안 사역한 C&MA의 많은 성과를 거둔 선교정책을 살펴보고 본 선교사의 생각을 추가하려 한다.
1953년부터 실시된 C&MA의 선교 자립정책은 다음과 같다.
1. 교회의 영적 지도자는 자급 하도록 한다.
2. 목사와 전도사,장로를 영적지도자라 칭한다.
3. 20개처의 조직교회로 자치제를 만든다.
4. 23개처의 교회를 태국인에 의해 건축한다.
5. 조직교회는 교회가 처해 있는 지역의 복음화를 책임진다.
6. 선교부는 전도자의 지원을 1년으로 한다.

상기 정책은 1955년에 실제로 실시하여, 현지인의 자치행정과 재정충당이 가능하게 되었고, 1956년에는 전도자를 위한 경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러나 1962년부터 시작된 선교부와 토착교회의 불화는 8개 지역구의 교회가 연합하여 선교부를 탈퇴하는 어려움을 가져왔다. (정승회논문)
본 선교사는 당시 C&MA총회의 총회장이었던 촘 프파롯목사의 아들 버리숫 프파롯목회자(현 13노회 교역자)와 총무였던 분씨얀 씽가뻥목사의 아들인 싸마이 씽가뻥목사,마이뜨리 씽가뻥목사와 일하며 당시의 상황을 인터뷰할 수 있었는데,(현재 C&MA교단의 총무목사 역시 예전 총무 분씨얀 씽가뻥의 사위이다) 특히 싸마이 씽가뻥목사는 당시 총무였던 아버지를 신학생신분으로 도와 (당시에는 총무의 집이 사무실이었다)문서를 정리하거나, 함께 여행을 다니곤해서 당시의 상황을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선교부와 현지교단 지도층과 불화의 시작은 1962년 당시의 현지 총회장과 총무의 자격으로 필리핀에서 열린 C&MA선교부 동부아시아대회에 참석하고 나서였다. 당시에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태국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는데 필리핀의 선교보고중에 교회자립정책이 성공하여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립하였다는 보고가 있자 태국지역선교부가 현지교회지도자와 협의 없이 결정하게되어 불화가 시작되었는데 실제로 C&MA선교사들은 교회자립정책을 준비하고 어느정도 진행중에 있었으나 현지교회에는 구체적으로 홍보를 하지 않았던 것같다.
싸마이목사에 의하면 당시 교단이 갈라지는 세가지요인 있었는데 첫째, 교회를 정식으로 짓지도 않고 원두막처럼 초막으로 지은 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고 자립하였다하고 그 이후 재정적인 것은 물론 행적적인 도움도 별반 없으므로(태국인 교회건물을 성전으로 화려하게 지은 절과 비고하기에 잘 짓고 싶어한다.) 교회가 새로운 도움을 외부로부터 찾으려하는 시도하게 되었고, 둘째, 총회와 교회들이 재정적인 압박이 심해지자 현지의 선교사들의 십일조를 총회또는 현지교회에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분노하였고, 셋째, 찰롬 라암 펫차랏목사가 목회자중 한 사람이 컨껜시내에서 4km지점에 대로변에 위치한 토지 6라이 (약3000평)를 헌납했는데, 헌납한 토지가 자기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을 기화로 땅을 200만밭에(당시국가공무원인 교사월급이 750밭) 팔게되었고(1967-8년 경) 이것이 총회 회의 석상에서 논란이 심했고 이를 이유로 많은 교회 C&MA교단을 떠나게 되었는데 실제 이유로는 재정정책을 미숙한 운영과, 지속적인 관리를 하지 못한 결과이다. 이로 인해 당시에 동북쪽지역에 선교를 계획하던 선교단체 및 이단종파에 교회와 교역자가 대거 이동하는 사태가 벌어 졌다.

이에 대한 본 선교사의 견해
1. 선교사와 현지 지도자간의 불화인데 현지교회가 어느정도 성장 했음에도 교권에 대한 이양이 진행되지 않았다.
2. 교권에 이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 자립만을 요구하는데에 한계가 있었다.
3. 재정자립 정책에 관한 정책이 다른 지역 타 선교부에서는 실패와 함께 새로운 지원 정책으로 바꾸어졌기에 자립정책에 대한 바른 철학이 부족하여 자립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불이익이나 선교부의 전제주의적인 폭력으로 취급하였다. 이로 인한 현지교회 지도자와 선교사의 대립이 교단의 분단과 대다수의 교회가 교단을 탈퇴하고 분립되는 주 요인을 제공하였다.
4. 자립한 교회에 대한 격려와 발전적인 지도가 부족하였다.
5. 성도들에 대한 신학교육의 부재로 마침 생겨난 물질을 앞세운 이단 세력에 무참히 무너졌다.
6. 지역에 기독교인이 소수이므로 기독교인들의 서로를 격려하는 활동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초기에 잘 진행되는 듯 하였으나 지속적인 격려와 정책이 부족했다.
7. 선교부가 신학적으로 성령의 은사와 역사에 대하여 부정적이므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길을 막아버렸고, 이를 경험한 열심있는 중추적인 교회및 교인들의 누수 현상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했다.
8. 선교사들이 사대주의적인 문화관, 경제관 및 교회관으로 인해서 현지인을 동역자로 끌어 올리지 못했다.
9. 신학생과 교역자 그리고 교회지도자를 전도자, 부흥사로 많들어 키웠으나, 목회자로, 교회 지도자로 키우지 못했다.
10. 노인을 우대하고 존중하는 미덕으로 인해 대부분 나이 많은 이들이 교회 지도자가 되기 마련이고, 그들의 부족한 성경적 지식과 사회성 부족등으로 인해 실패하며, 교회의 퇴보를 가져왔다.
위의 사항을 볼 때 C&MA의 기본정책은 매우 옳았고 또한 정책전개에 있어서 성공적이었으나 ,좀 더 현지인과 함께 하는 계획, 정책진행이 필요했음을 말하고 싶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전통적인 장로교가 갖는 성령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주변 문화에 대해 정죄시 하는 예를 들면 영화감상, 화장, 옷차림등에 규제 및 정죄의식이 심했음을 확인 해 볼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MA의 희생과 헌신과 그들의 사역의 결과는 동북쪽 지역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었다 할수 있겠다.

3. 태국기독교총회 및 노회 행정문화

1) 태국기독교총회의 171년의 선교역사는 세계적인 행정력을 가지고 있다.
2) 태국기독교총회의 행정적의 조직 운영은 태국헌법의 철저히 적용하여 매우 정확하면서도 태국적 특성을 고려(푸야이, 행께사상) 한 융통성이 있다.
3) 태국교회의 총회의 권력은 각 노회에서 선출된 이사들에 의해 거의 매달 보고 되고 의논되어 진다,(총무중심의 총회운영, 서기중심의 노회운영)
4) 교회의 각종의식과 행사에 대하여 총회와 노회가 조직적으로 관여하며 후원한다.(행정서류의 철저한 구비)
5) 총회와 노회가 재정력이 있어 미자립교회와 목회자를 조직적으로 도울 수 있다.(임대료 및 사례비 특별지원 가능)
6) 총회와 노회에서 진행하는 교회와 지도자를 위한 훈련프로그램이 잘 되어있다.(정책적으로, 행정적, 재정적으로 훈련원이 지원 보호받는다.)
7) 목회자를 위한 기독교병원혜택과 자녀의 기독교학교 학비면제가 있어 자녀 교육과 병원비에 대한 부담이 적어 사역에 주력할 수 있다.(때로 너무 많은 의지를 하는 것이 아닌가하나 공무원은 더 다양하다)
8) 태국교회는 총회와 노회가 교회에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9) 교회 스스로 어떠한 일을 처리하려는 의도보다는 총회와 노회의 지도력, 인력, 재정력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짖다.

4. 태국교회 교인의 신앙문화
1) 태국교회 교인들은 순수하고 특히 선교사 외국인에 대한 특별 용납정신(?) 이 있다.
2) 태국교인들은 은근한 믿음을 갖고 있어 어려울 때 저력을 보여준다.(마이밴 라이근성, 포기,정책없음)
3) 태국교인들은 행사시 협력이 잘되어 재정적, 인력동원에 있어 문제가 없다.
4) 태국교인들은 특별행사에 모이기를 좋아하여 전도의 기회를 삼을 수 있다. (대중 심리에 약하다, 끄랭짜이 심성)
5) 태국교인들은 지도자나 어른으로 인정될 때 양보하고 받아준다.(격렬한 토론의 중재자는 유식한 이보다는 주로 노인이다. 푸야이 존중)
6) 노인들로 구성된 교회일수록 기도와 사랑이 많으므로 성령의 역사를 기대 할 수 있다. (인내하며 수시로 기도하는 일꾼이 곳곳에 있다.)
7) 오래된 교회일수록 평신도 지도자의 희생에 의해 유지되었기에 목회자가 장기간 없어도 교회는 유지된다.(노인들 또는 한두사람의 평신도에 의해 유지됨)
8) 노회 또는 총회를 중심으로 한 연합 활동이 강하다.(소그룹이므로 자주 대대적인 모임 예: 성탄절,부활절, 카렌족,라후족의 모임)
9) 신앙의 시작이 순수한 복음에 의하기보다는 제2차적인 사업에 의해 신앙을 갖게된 경우가 많다.
10) 성경의 개인 소지 율이 낮아 성경 적인 지식이 부족하다.
11) 각 종 이단이 심하게 활동하는데 이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가 부족하다.
12) 하나님의 은혜가 잘못 이해되어 헌금을 소홀히 한다.
13) 시골의 대가족의 회심으로 교회내의 구성원이 2-3가족인데 이로 인한 가족간의 싸움과 알력의 역사가 있다.
14) 경제적인 불안정으로 자주 이동하는 관계로 신앙의 계속적인 성장이 부족 하다.

5. 태국교회 목회자의 신앙문화
1) 목회자들의 대부분의 동기가 순수한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므로 사역시의 어려움에 대하여 당연시한다.(자존심,물질,여자가 무너뜨리지만 않으면)
2) 목회자들이 그 가족이 주로 고향에서 사역하므로 문화적인 혼란이 없다.(푸야이정신으로 용난이 가능하고 지식인,부자는 짜우나이가 되기에 가능)
3) 목회자의 사모가 대체로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생활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다.(주로 교사,간호원)
4) 목회자 대부분이 사심을 품지 안아 교회가 목회자의 욕심을 인해 생기는 문제가 거의 없다.(뜻밖의 물질과 견재의식이 없을때)
5) 목회자들이 시골지역에서 절의 중과 같이 마을의 지도자로 인정받는다.
6) 목회자들이 재교육과 훈련을 위한 기회가 많다.(훈련,쎄미나가 경비지원)
7) 목회자들이 행사시 교인들과 잘 융화된다.(음식을 같이 하고, 즐긴다.)
8) 자신들의 부족함보다는 노회와 총회의 지도력과 정책의 부재로 인한 교회성장이 안됨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9) 목회의 유능한 이가 총회나 노회의 행정을 맡으므로 교회성장의 모델이 적다.
10) 총회나 노회의 잦은 행사로 개 교회의 행사가 소멸된다.
11) 총회나 노회의 어른이 모든 행사를 주관하므로 젊은 목회자의 성장의 기회가 적다.
12) 교단 내에 학교, 병원, 구호단체, 사회사업단체가 많아 좋은 목회자의 교회 배치가 부족하다.
13) 대부분의 보수적이나 신학적인 배경이 약하다.
14) 오래된 교회일수록 목회자가 그 동안에 여러 번 바뀐 경험과 쓴 뿌리가 있다.
15) 오래된 교회일수록 교회의 행정권, 재정권, 인사권이 평신도 지도자에게 있어 목회자의 활동반경이 좁다.
16) 태국이 부자와 교사, 의사를 존중하는 전통에 의해 교회 내에 교사가 있으면 정부형태의 교회 행정, 기업가가 있으면 기업운영 형태의 교회가 되어 완벽하나 융통성이 없고 믿음을 통한 사역이 거부된다.
17) 목회자를 청빙함에 있어 처음에 1년, 2년, 4년, 그리고 매4년 청빙하는 형식으로 하기에 목회자가 소신 것 일하지 못하거나, 목회자와 교인간에 불화가 있을 때 목회자를 떠나 보내는 합법적인 근거가 된다.
18) 교회자립을 위한 20년 간의 후원 프로젝트가 있으나
(1) 교회가 이해하지 못해 교회가 이를 이용하여 헌금을 않거나
(2) 교역자 사례를 위해 미리 저금을 해두 거나
(3) 교역자가 없어서 교회의 자립정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원을 받고, 계속 자립햇수가 진행이 된다.
(4) 교회자립 프로젝트가 끝났으나 자립이 안된 교회는 목회자를 모실 수도없고 목회자들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5) 교회자립을 위한 프로젝트는 교회자립으로 인도하기보다는 재정후원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19) 세워져 있는 교회에 비해 30%밖에 안 되는 목회자이기에 교회가 담임목회자를 모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재정이 자립된 교회는 쉽다)
20) 대부분의 목회자가 신학교을 졸업하고 바로 목회자로 오기에 경험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겪게 된다. 특히 기성교회일수록 나이 젊은 목회자의 미숙을 잘 봐주지 못한다.
21) 오랜 경험에 의하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과 불가능한 일들이 정해져 있기에 목회자가 의욕적으로 새로운 일을 시도한다는 것은 매우 많은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
22) 태국교회는 목회자를 초빙할 때 대부분이 1년을 초빙하고 다시 투표하여3-4년씩 임기를 정하기에 임기가 되면 임지를 자연스럽게 옮기고자 하는 유혹과 교인들의 재 초빙투표를 의식하여 바른 목회 철학을 발휘하지 못한 다.
23) 태국목회자가 대체로 주일학교, 학생회 청년부, 장년 부에 대한 견본이 되는 교회를 보지 못했거나 경험하지 못했기에 교회의 각 기관을 활성화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24) 총회와 노회가 대체로 사례비의 50%-30%를 책임을 지기에 교회자립에 대한 의지가 갈 급하지 않다.
25) 교회성장의 본이 될만한 교회가 부족하거나 있어도 오순절계통이기에 배우려 하지 않는다.
26) 목회자가 스스로 성장하기 위한 태국어로 된 신학서적이 너무 부족하다.
27) 목회자가 기도하는 일에 훈련과 본이 없다.
28) 전도하는 일에 훈련이 안되어 있고, 교인들을 전도훈련 하는 일이 부족하다.
29) 목회자와 그 가족이 교회의 성장을 위해 희생하기 보다 교회가 그 가족을 위해 희생해 주기를 고대한다.
30) 교회건축보다는 목회자 개인주택을 우선한다.


출처 : 태국 김문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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