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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외국인 근로자 등록일 200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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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전지구적 네트워크와 정체성
한건수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국내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전지구적 네트워크와 정체성

한건수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Ⅰ. 들어가는 글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사회에 유입된 소수자로서 동질적인 집단으로 분석해 왔다. 이주노동자의 고용관계나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경험하는 삶의 양태, 사회적 관계망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들은 이주노동자의 개별집단에 주목하기보다는 일반적 범주로서 이주노동자를 연구해 왔다. 한국사회 역시 이주노동자를 재현하는 방식에서 전체 이주노동자를 하나의 범주나 이미지로만 재현해 왔다. 이주노동자와 연결되어 있는 맥락과 주체의 관점에 따라 이주노동자는 한국사회에서 ‘희생자’나 ‘사회적 오염’과 같은 일반적 이미지로만 재현되어 왔고, 개별 이주노동자 집단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면서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은 조명되지 못했다.

반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연구들은 일찍부터 개별 민족 집단 중심의 연구를 진행시켜 왔다. 방글라데시(이욱정 1994), 네팔(함한희 1997), 필리핀, 스리랑카, 조선족(유명기 1995, 1997), 아프리카(Han 2003, 한건수 2003) 출신이주노동자들이 한국사회에서 문화적 적응과 저항을 하는 양식과 사례들이 연구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들은 획일화된 범주로 연구되어오던 이주노동자들을 각각의 문화적 전통에서 분석하는 단초를 제공해 주었으나, 전지구화의 맥락에서 국경을 넘어 낯선 곳으로 이주를 결정하고 결행한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그들의 행위주체성(agency)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경기도 마석의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사회적 연결망 분석을 통해 이주 과정을 분석한 사회학적 연구(박경태, 설동훈, 이상철 1999)는 국제적 연결망을 제시함으로써 이주의 과정과 한국에서의 본 발표문은 가나(2004.2.)와 나이지리아(2005.3.)에서의 현지조사 자료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미완성 논문입니다. 완성된 논문으로 발표되기 전에는 인용과 전제를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이주노동자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로 송출국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포함하는 관점을 제공했으나 전지구화의 맥락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이주 결정을 복합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성이주자들에 대한 관심은 이주여성의 성별화된 경험을 통해 이주여성 노동자들을 하위주체로서 재현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 전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성별화된 계급으로 대두하고 있는 여성노동자(김현미 2001)나 유흥산업에 편입된 이주여성(김현미 2004)을 주체적 행위자로 분석하는 시도는 이주노동자 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글에서는 아프리카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일자리와 임금을 벌기위해 국제이주로 내몰린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전지구화의 흐름에서 자신의 인생 경로를 선택하고 국경을 넘어 지구 반대편으로 이주를 결행한 주체적 행위자로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다른 아시아권 이주노동자와 달리 이들이 국제적 연결망 속에서 어떻게 노동 이주와 한국에서의 삶을 구성하고 영위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이주를 전지구화의 맥락에 위치지우고자 한다.


Ⅱ.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현황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정확한 통계를 잡기가 쉽지 않다. 2004년 8월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정부가 대규모 단속을 통해 미등록노동자를 출국시키는 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정부는 2003년 자진신고를 통해 상당수의 미등록노동자를 사면함으로써, 일시적으로 국내 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체류와 노동에 안정된 기반을 제공했으나, 이주노동자별로 체류 기간이 만료된 2004년과 2005년은 전시성 단속과 출국 후 재입국허용과 같은 회유책으로 상당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출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실제 고용허가제로 새롭게 입국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나 타의에 의해 출국하는 노동자들의 정확한 통계가 집계되지 않고 있어 2003년 말 기준의 자료들로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2003년 말 기준으로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노동자는 395,679명이며, 이중 206,927명(52.3%)이 등록노동자인데, 이중 159,705명(40.4%)이 사면정책을 통해 미등록노동자 신분에서 등록노동 국내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전지구적 네트워크와 정체성 357자로 전환된 비전문취업자(미숙련노동자)이다. 미등록 노동자는 138,056명(34.9%)으로 집계되었다(설동훈 2004: 23).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는 처음부터 합법적인 신분으로 이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2003년에 일시적으로 등록노동자로 전환된 노동자들이 허가 기간이 만료되면서 대부분 미등록노동자 신분으로 전환되고 있다. 상당수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입국이 금지될 것을 우려해서 자진출국 하거나 투자이주를 통한 합법적 신분을 획득하는 방법을 강구하면서 미등록노동자로 체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규모는 공식적인 자료로 추정하기 어려우나 2002년 말에 실시된 자진신고 기간에 등록한 미등록노동자의 수는 2,272명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2002년 자진신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은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그 규모는 더욱 큰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이주기구(IOM) 서울 사무소에서는 2001년 경 약 5천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2005년 4월 23일 이태원에서 있었던 주한나이지리아 교민회장 선거에서 등록된 투표자만 2,500명에 달한 것을 보면 국내 체류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규모는 예상보다 큰 것으로 추정된다.



1.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입국경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은 나이지리아와 가나 출신이다. 이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인데, 인천항으로 목재운반 화물선을 타고 밀입국한 사례, 중국과 일본에 유학생 신분으로 체류하던 가나인이 입국한 사례, 나이지리아로 중고차를 팔러 온 한국인 무역상을 통해 입국한 사례 등 다양한 경로로 입국했다. 1990년대 중반 나이지리아를 이어 가나에 한국산 중고차 붐이 일면서 한국으로 이주하려는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급증했으며,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감소한 후, 2000년을 전후해서 다시 숫자가 늘어났다.

한국으로 이주를 결심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서의 경제난으로 인한 실업이 길어지면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목적이나 한정된 사업자본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실제 한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경비는 개인에 따라 편차가 큰데, 항공료와 브로커에게 지불하는 비용을 합하면 미화로 평균 5천$에서 6천$ 정도로 집계되었다. 아프리카에서 이 정도 비용을 개인이 만들기는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국경을 넘는 이주는 시작부터 다양한 사회적 연계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가장 많은 경우가 이미 해외로 이주한 형제나 친척의 도움을 받는 경우이다. 가나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많은 경우 영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국가나 미국 그리고 아시아의 일본에 이주한 형제들이 초기 이주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부분 이주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족차원의 결정이 이루어지며, 비용을 조달하는 것도 부모나 여러 형제들이 일정액을 분담한다.

가나 노동자의 경우 한국을 이주 대상국으로 설정하는 데는 세계 경제에서 한국 경제의 발전 수준도 작동하고 있다. 실제 중고 자동차나 부품 구입을 위해 노동이주를 결정하면서 가나 노동자들이 일본보다 한국을 이주 대상국으로 선정하는 이유는 가나의 경제규모에서 일본에서 구할 수 있는 중고자동차나 부품의 원가가 가나 시장의 맥락에서는 고가이기 때문이다. 가나 노동자들은 노동이주를 고려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노동을 통한 임금 수입이 아니라, 한국에서 국내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전지구적 네트워크와 정체성 359의 노동과 생활경험을 통해 가나로 귀국한 후 자신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 이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노동이주를 결정하는 동기는 취업난과 사업자본을 키우기 위한 일시적 이주로 구별된다. 취업난으로 인한 노동이주 과정에서 친척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유사하며, 상당수는 한국을 경유지로 삼아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국가로의 이주를 계획한다. 실제 한국이 노동이주 대상국으로 선택되는 이유는 미국이나 유럽국가로 이주하기가 어려운 상황과, 일본의 경우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이주할 수 있으며, 실제 생활비와 임금을 고려한 자본축적의 기회가 한국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국내 노동과 네트워크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입국할 때 친척이나 친구가 없는 경우는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흑인이 거주하는 곳으로 데려달라고” 함으로서 이태원에 집결한다. 한국에 관한 정보를 미리 확보한 노동자들은 이태원에 가면 다른 아프리카 노동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입국하기도 하나,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막연히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아프리카인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흑인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을 택시기사에게 요구한다.

이태원에서 자국 출신 노동자를 만나게 되면 한국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이나 정착하는 것이 해결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입국초기의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는 자국 출신의 노동자나 같은 언어권(영어권인 나이지리아와 가나, 불어권인 다른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아프리카 노동자와 기본적인 연결망을 형성한다.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한국에서의 임금 수입을 통해 축적한 자본으로 “컨테이너를 만드는 일”(물건을 구입해서 본국으로 보내는 무역)을 시작하는 시기는 입국 비용을 위해 진 빚중에 갚아야 할 액수가 얼마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족이나 친척의 지원을 받은 경우는 일찍부터 물건을 구입해서 본국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사례] 중고차와 자동차 부품 무역의 경우 - 해외의 형제들이 자본을 모은 사례

Noah(Ghana, 1960년생, 1995년 8월 1차 입국/ 1996년 3월 2차 입국 후 1999년 11월 귀국, 면접일 2004년 2월, 가나 아보쇼카이 자동차 시장)
- 5형제 중, 3명이 일본(1), 영국(1), 독일(1)에서 일하고 있음. 첫 번째 형이“show money"(입국시 입국심사원에게 무역상임을 입증하기 위해 보여주는 현금)로 미화 10,000$을 지원해 줘서 한국으로 노동이주. 처음에는 DHL에서 사용하는 나무상자를 만드는 회사에서 컨테이너에 물건을 옮기는 일을 했고, 회사 경기가 안좋아서, 나중에 양천구에 있는 양말 공장에서 1년 반을 일하고(월 80만원 + 야근수당 24만원) 폐차장으로 직장을 옮겨 6개월 일함. 형제들이 보내준 돈으로 처음 컨테이너를 보내고, 가나에 남은 동생이 자동차 부품상을 하면서 물건을 판매한 수익금을 다시 보냄. 체류 기간 동안 5컨테이너를 보냄. 컨테이너 당 12,000$에서 15,000$ 정도 지출.

가족이 이주비용을 분담하는 경우, 가나에서 자동차부품상을 하는 형제와 영국이나 미국에 이주한 형제가 역할 분담을 통해 자본을 모으는 경우가 많다. 실제가나의 중고 자동차 매매업과 부품판매업이 호황을 누리자, 해외에 체류 중인 형제들이 이주비용을 분담해서 가나의 다른 형제를 한국으로 보내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한국에 입국한 노동자는 가나에서부터 자동차 관련 업종에 종사해서 자동차 관련 지식이 있는 경우 폐차장에 취업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폐차장에 취업하지 못한 노동자는 주말을 이용해서 폐차장을 방문하거나 폐차장에서 일하는 다른 가나 노동자에게 부탁해서 부품과 자동차를 구매한다. 이들은 가나에서
요구하는 품목을 우선적으로 매입하고, 폐차장에 들어온 차량 중 상태가 좋은 차량은 미리 구입해 놓은 후, 해당 차종에 필요한 필수 부품인 엔진이나 변속기 등을 여벌로 구입하여 추후에 컨테이너를 만들기도 한다.

자본을 동원할 여력이 적은 경우는 이주노동자들이 돈을 모아 컨테이너를 만들기도 한다. 투자한 금액 비율에 따라 가나에서 판매한 수익금을 배분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동일품목이 아닌 경우는 컨테이너의 일정부분을 사용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따로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가나의 경우, 중고차와 자동차 부품이 주를 이루다가 점차 품목이 목걸이나 귀걸이 등의 장신구나 헌 옷 등으로 다양화 된다.

3.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공동체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은 직장을 구하는 과정이나 컨테이너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형성된 사회적 연결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공동체인데, 나이지리아나 가나의 경우는 각기 교민회를 형성하고 있다. 다민족사회인 가나나 나이지리아는 교민공동체 형성에서 민족별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데, 가나에 비해 규모가 큰 나이지리아 교민회가 좀 더 세분화되어 있다. 한국에 체류중인 나이지리아인은 이보(Igbo)족과 요루바(Yoruba)족이 다수인데, 이보족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요루바 사람들은 나이지리아 교민회와 별도로 “Egbe Omo Oduduwa(오두두아의 후손)"라는 별도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보 사람들은 나이지리아교민회 산하에 국내 지역별(마석 등), 직종별(나이지리아 상공인회 등), 나이지리아의 출신지역별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반면에 가나는 상대적으로 규모도 작고 국내 체류 가나인들의 직업도 대부분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세분화된 조직은 구성하지 않고 있다. 단지 가나교민회를 주도하는 아칸(Akan) 계열의 민족 집단(아샨티 등)에 동조하지 않는 민족출신 노동자들이 비공식적 모임을 갖거나 독자적인 기독교 모임을 유지하고있다. 불어권 아프리카 노동자들은 숫자가 적기 때문에 국가별 모임보다는 서아프리카의 불어권 국가들(말리,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이 연합하여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연결망은 한국에서의 생활뿐만 아니라 본국과의 연락이나 송금, 물건사보내기 등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된다. 실제 본국의 환율이나 물가변동과 같은 시장정보나 한국내 상품정보는 이러한 연결망을 통해 전파된다.

Ⅲ.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본국귀환과 제3국행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본국 귀환은 고용허가제 도입으로 인한 미등록노동자 단속이 실시되면서 자의에 의한 귀환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준비되지 않은 귀국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 단속이 심하지 않던 2003년까지는 짧게는 3-4년에서 길게는 7-8년 동안 한국에서 체류하는 경향이 높았다. 이들이 귀국을 결정하는 과정에는 한국에서의 노동이주가 경제적으로나 개인적인 삶의 경험으로 성공적이었다는 판단(재정적 측면과 새로운 문화, 기술, 정보사회 체험 등)을 내리고 귀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이후 불법체류 신분으로 전환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귀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
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이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는 1997년 외환위기시에 한국으로 입국해 일자리를 찾지 못한 노동자, 입국초기 체불임금 때문에 입국비용으로 빌린 돈의 이자가 늘어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한 경우, 산업재해나 질병으로 인해일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또한 본국에 보낸 물건들을 판매하기로 했던 친지들이 의도적으로 속이거나 사업에 실패한 경우도 많다. 성공하지 못한 귀환노동자들은 본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부분 제3국으로의 또 다른 이주를 실천하는 경우가 많다.
제3국으로의 재 이주는 한국에서 성공적인 이주노동을 마친 노동자에게도 발견된다. 이들은 처음부터 한국을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다른 나라로 이주하기 위한 디딤돌로 선정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한국에서 축적한 자본으로 제3국으로의 이주비용을 충당한다. 실제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마치고 가나로 귀국한 후 다시 미국으로 이주한 노동자가 한국에서 도움을 받은 성직자와 연락을 유지하는 사례들도 확인되었다.

제3국으로의 이주를 계획하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 중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를 계획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들 중 인터넷을 통한 미국인 여성과의 교제로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경기도의 한 가구공단에서 일하는 나이지리아 노동자들 중 6명의 노동자(2005년 현재 약 40-50명 정도체류 중)가 인터넷 채팅을 통해 미국인 여성과 교제에 성공, 이들 여성들을 한국에 초청했고, 실제 1명은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결혼 수속과 미국입국 비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공단의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숙소에 컴퓨터와 화상채팅을 할 수 있는 카메라와 마이크, 초고속인터넷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나이지리아의 친지들과 인터넷으로 통신을 하고 있으며, 미국이나 유럽 여성들과 채팅을 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실제 필자가 면접한 대부분의 나이지리아 노동자들은 인터넷 채팅을 한 경험이 있었다. 퇴근 후 새벽까지 인터넷 채팅을 하는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들의 주 목적은 인터넷을 통한 미국인 여성과의 교제에 있다.

[사례] 나이지리아 노동자 피터(Peter): “We have a romantic mouth!"

Peter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 미국인 [흑인]여성과 교제했고, 실제 한국에 초청해서 일주일간 함께 여행을 한 후, 결혼신청을 해 동의를 구한 상황. 미대사관에 결혼수속과 함께 미국 입국비자 신청을 한 상태에서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음. 처음에는 한국에 유학 온 나이지리아 학생으로 자신을 소개했으며, 전공이 공학이라, 아르바이트로 공장에서도 일하고 있다고 소개. 밤을 새워 채팅함. 채팅으로만 교제하다 국제전화를 하기 시작함.
채팅을 통한 국제결혼에 대해 다른 나이지리아 노동자는 냉소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 미국에서 “결혼하기 힘든 뚱뚱한 여성”이 많고, 직업이 없는 경우도 많다며, 한국에 초청해서 함께 여행하는 경우 초청경비를 전액 부담하는 나이지리아 노동자도 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한국에서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후 연락을 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Ⅳ. 전지구화의 경제 상황과 귀환 이주노동자의 대응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은 세계경제의 구조 안에서 노동이주를 준비하고 실행한다. 이주 대상국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선택되는 과정 자체가 전지구적 맥락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이 이주대상국으로 아프리카에서 각광받은 것은 한국의 경제발전 정도와 임금수준이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노동이주를 결행하기에 적절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원하는 상품의 가격과 수준에서 한국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2004년 이후 필자가 면접한 국내 체류 아프리카 노동자들이나 가나와 나이지리아에서 면접한 귀환 노동자들은 대부분 임금노동 측면에서 한국은 여전히 노동이주의 대상국으로서 적절하나 상품을 구매하는 면에서는 중국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진술한다. 1990년대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한국행은 국제시장에서 한국경제가 차지하고 있던 발전수준과 위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환한 가나와 나이지리아의 노동자들은 해당국의 경제수준과 시장규모에 따라 상이한 경제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가나의 경우는 귀환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중고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매매에서 경제적 기회를 찾고 있다. 일본 중고자동차 시세가 가나의 경제수준과 규모에서는 여전히 고가이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인도나 중국의 경우 중고차를 수출하기에는 중고차 내수시장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중고차 시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가나의 중고차 시장과 부품 무역은 가나와 인근 서아프리카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귀환한 가나노동자들의 경제적 기회는 많은 편이라 할 수 있다. 단지 한국의 중고자동차를 구매하려는 다른 국가와의 경쟁(파키스탄,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이 한국 내 중고자동차와 부품의 공급을 어렵게 만들어가나 노동자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현재 가나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중고차가 소형 자동차나 소형 트럭중심인데, 가나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중형차 시장으로 확대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가나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임금수입뿐만 아니라 중고차를 중심으로 무역상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질 것이다.

반면에 나이지리아는 경제수준이나 시장규모가 가나에 비해 크기 때문에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들은 한국무역상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에 기반을 다진 레바논 및 인도 상인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1990년대 후반 이래 중고차 수입에서 노후한 차량을 수입금지한 나이지리아 정부 정책으로 유럽과 일본에서 수입한 상대적으로 고가의 중고차가 흔한 나이지리아에서 한국의 폐차장에서 구매되는 중고차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1990년대 후반이후,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생산된 자수직물 섬유를 주로 구매해서 나이지리아로 보냈다. 실제 한국에서 생산되는 자수직물의 90%가 나이지리아로 수출되는 상황에서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들은 이주노동을 통해 축적한 자본을 자수직물이나 손목시계와 같은 상품에 투자했다. 그러나 2002년 나이지리아 정부가 한국산 자수직물을 수입금지 품목으로 지정하면서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들의 틈새시장은 난관에 부닥친다. 수입금지 품목 지정이 인도와 레바논 상인들의 압력과 로비 때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떠돌 정도로 나이지리아의 시장은 다국적 경쟁자들이 경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 자수직물 시장에서도 한국인 무역상들이 수입금지 품목인 한국산 자수직물을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들이 경쟁할 수 없는 가격과 비공식적 통로를 통해 막대한 물량을 시장에 풀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예상한 적정 가격에 맞추어 물건을 구매하고 보낸 상품이 시장에서 적자를 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들은 가나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더 치열한 국제경쟁과 자본의 공세 속에서 이주노동과 무역을 감당해 내고 있다.

국내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전지구적 네트워크와 정체성 365전지구화의 흐름 속에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노동이주를 감행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은 자본과 상품이 함께 국경을 넘나드는 전지구화의 맥락에서 자신들의 적소(niche)를 찾아나가는 노동이주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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