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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선교현장 > 중동 등록일 200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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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파트 1주기에 즈음해
나는 한손에는 권총을 한 손에는 올리브 가지를 들고 있다.
1959년 P.L.O.의 모태가 된 무장조직 “파타”의 결성에 참여하여, 1968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이 된 후 60년 대 수많은 테러 작전으로 이스라엘의 주요시설과 파괴 작전을 성공 명성을 높였던, 아직도 기억에 뚜렷한 72년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살해들으로 국제적인 테러 지도자로서의 악명을 얻었고, 그럼에도 74년 11월 비정부조직인 P.L.O.의 대표로서 U.N. 정기총회에 참석을 하여 “나는 한손에는 권총을 한 손에는 올리브 가지를 들고 있다, 내 손에서 올리브 가지(평화)가 떨어지지 안도록 하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면서 테러와 외교에도 능했던 이 시대의 풍운아 아라파트가 죽은지 1주년이 되는 날 이다. 자치 정부는 조용하게 1주기 를 지내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February 4, 1969 - Arafat founds the P.L.O.

아직도 아라파트에 대한 평가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과 팔레스타인을 위해 평생을 투쟁과 협상으로 온 몸을 불사른 팔레스타인의 위대한 지도자와, 한 편에서는 말년에 권력욕에 취해서 주변의 부패한 측근들로 인해 결국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더 어려움을 가져온 부패한, 실패한 지도자로 , 평가에 극을 달리하고 있다.

작년 아라파트가 죽었을 때 전 세계의 언론들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지금까지 그 어느 정치 지도자의 죽음보다도 관심 속에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생중계를 할 정도로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국제 사회의 핫 이슈가 되었었다. 그 만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가 두 민족의 문제를 넘어 중동 문제의 핵이고, 결국은 국제 사회가 같이 풀어야할 이 시대의 중요한 문제이기에, 그 중심에 서있었던 팔레스타인의 수장이었던 아라파트의 죽음은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아라파트 사 후 이곳의 지평이 어떻게 변할 지에 촌각을 곤두세우고 지켜 보았었다.

특히 9.11 이 후 국제 사회는 양 극화 현상이 심화 되면서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세계 초강대국에 의해 줄서기를 강요받고, 냉전 종식 이 후 또 다른 국제 사회의 질서를 형성 하는 과정 속에, 지금까지 지하에서 과감하게 세상으로 나온 이슬람 근본 주의의 부활의 서곡을 알리는 9.11의 배경에는 이슬람 근본 주의 자들이 항상 되풀이 하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언급이 되는 마당에 팔레스타인 문제의 정점이라할 수 있는 아라파트의 죽음은 당연히 국제 사회의 관심일 수 밖에 없었다.

아라파트 사 후 이곳을 바라보는 시각도 당연히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어 있었다. 강경 투쟁 노선을 이끌던 아라파트가 죽었으니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질 것이고, 이 곳에 평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대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에 강경파와 온건파와의 권력 투쟁으로 인해 내부의 문제가 결국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어 상황들이 더 힘들어 질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아라파트의 후계자로 현 압바스 수반은 아라파트 전 수반이 가졌던 강력한 카리스마도 없고, 강력한 리더쉽이 없다는 여러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무난하게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이다.

지난 1년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이 땅에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시험기간과 같았다. 사실 아라파트 사 후 팔레스타인 자지 정부는 이스라엘측의 강력한 요구, 즉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 도발을 과감하게 막아 줄 것을 전제로 팔레스타인 과의 관계를 새로 설정하려 했고, 국내외적으로 풀어야할 문제가 산적하게 쌓여 있던 압바스 수반으로서는 가장 시급한 빵문제 해경을 위해서는 지난 5년간 계속된 2차 인티파다(독립시위)의 영향으로 바닥으로 내려 앉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외부의 원조가 절실한 상태에서,이스라엘측의 요구를 거부할 수 가 없었다. 압바스 수반으로서는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또한 자신의 입지를 강화 하기 위해서도 하마스와 같은 무장 세력에 대한 통제가 불가피하였고, 이 를 ! 통해 이스라엘 정부와의 협조한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보여 줌으로서 당장 필요한 경제 원조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집권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내, 외부의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 서주 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워낙 팔레스타인 사회내부에 곪아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압바스 수반의 의지대로 되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다.
Palestinian child with pistol

당장 지난번의 시장 선출을 위한 지방 선거에서 이스라엘과 국제사회로부터 테러 집단이라 지목을 받았던 하마스 조직이 당당하게 시장선거에서 약 30%의 압승을 거두어 공식적인 정치조직으로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나아가 내년 1월 25일 에 있을 팔레스타인 자치 의회(국회) 선거에서도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는 30%정도는 거뜬하게 의석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의회 선거에 하마스 조직이 참여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입장이고, 자치 정부도 나름대로 의회 선거에서 하마스의 참여를 거부하지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심각하게 분열되고 고민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마스는 정치와 투쟁이라는 양 날개로 이곳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것으로 보인다. 상황에 따라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 방향으로 강, 온 정책을 전개할 것이기에 이곳의 상황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8월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군과 정착민들의 철수로 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새로운 평화에 대한 기대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지만, 철수 이 후 이곳의 상황은 오히려 미래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수많은 살상들이 쉬지 안고 계속되고 있고, 처음에는 자제하는 것처럼 보이던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도 갈수록 강력해 지고 있고,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무장 단체들도 복수를 다짐하면서 양측의 충돌의 강도가 더해지고 있는 실정들이다.

당장 내년 1월에 있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의회 선거의 결과에 따라 이곳의 판세가 달라질 것이다.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하마스 세력은 자치정부내로 공식적으로 들어 올 것이고, 결국은 이 들은 자신들의 정치 목적인 이슬람에 의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위한 시도를 할 것이고, 이로 인해 자치 정부 내에서도 강, 온건파 간에 정치 투쟁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문제가 결국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중동 문제로 확산이 되어 국제사회에 근심거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라파트 사후 일 년 동안 이곳은 많은 변화가 있었고,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다. 다만 앞으로 변화 해 가는 이곳 상황들이 선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하면서, 지혜롭게 우리들의 선교 역량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곳은 단순한 곳이 아니다. 단순한 선교 이벤트성의 행사는 오히려 이곳 선교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그 짐은 고스란히 우리들 모두의 몫으로 남아 이곳 선교를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열정만을 가지고는 안되는 그래서 더욱 기도 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인내와 비젼의 두 축을 가지고 이 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들의 선교 의지를 분쟁와 싸움의 땅에 주님의 평화를 만드는 심정으로 이 들에게 드러낼 때, 복음의 황무지 이곳에 놀라운 주님의 살아계심이 증거 되리라 믿는다.

베들레헴에서 강태윤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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