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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목회, 신학 > 설교 등록일 2006-11-25
작성자 관리자 (admin)
예수님의 말씀(72.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본문 : 눅 16:1-9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2006년도 얼마 전에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 달력이 한 장만 남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나오는데 낙엽 한 잎이 내 얼굴에 떨어져 스쳐가는 것입니다. 묘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나도 이 낙엽처럼 떨어지겠지, 내 생명이 떨어질 때 추한 모습이 아니라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을 낙엽은 우리에게 운치를 느끼게 합니다. 그렇게 지저분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이 죽을 때는 그렇게 추할 수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아름다운 생애를 살다가 주님께 돌아가 주님 품에 안기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난해한 비유로 알려진 말씀입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청지기는 매우 교활하고 불의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의 하는 짓도 악한 이들이 취하는 태도입니다. 주인으로부터 파면을 통보받고 사후 대책에 부심하다가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냅니다. 쉽게 생각하면 장부를 허위 조작하여 채무자들의 환심을 사는 것 같이 보입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자신이 살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이 방법의 재치에 감탄한 주인은 오히려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청지기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청기임을 먼저 명심해야 합니다. 청지기라는 것은 나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오는 날에는 반드시 셈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진실하고 선해야 합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눅 12:42)라고 하십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고 합니다.
요셉도 청지기 생활을 했고, 총리가 된 후에 자기 집에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아주 충성스러운 청지기의 모범을 보여줍니다(창 39:4-5). 주인이 보던지 보지 않던지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성스럽게 합니다.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두 빌려 쓰는 청지기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빌린 것입니다. 영원한 내 것은 없습니다. 생명도 소유도 자녀들까지 다
일시적으로 위탁받은 것뿐입니다.

미국의 어느 가정에서,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가 밖에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자기 언니들에게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25전 짜리 돈을 들고, "나 이거 오늘 벌었다."고, 돈을 벌었다고 신바람 나서 자랑을 하고 있는 거예요. "네가 어떻게 돈을 벌었느냐?" 했더니, "내가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운전대 옆에 있는 그 돈 넣는 함이 있는데, 거기다 넣으려고 하니까 키가 작아서 발버둥을 하고 넣으려고 하는데, 뒤에서 사람들이 밀어버렸어요. 그만 뒤로 밀려나서 그대로 저쪽으로 나와 버렸어." 하는 거예요. "나 오늘 공짜로 버스를 타고 돈 벌었다!"고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그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이 놈아, 너는 우리 윌리엄스 가문의 가장 높은 자랑인 명예, 즉 정직함을 25전에 팔아먹은 놈이다!"고 하면서 통곡하며 울었답니다.

불의 한 청지기의 불의는 무엇입니까?
청지기가 주인행세를 했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자기 자신이 청지기인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청지기에게 위탁한 일을 주인의 뜻대로 운영해야 합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이 주인인줄 착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런 청지기는 악한 종입니다(마 24: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4:49-51) 자신이 주인인줄 알고 착각하게 되는 것 이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오늘 비유에는 언 듯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이 청지기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주인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관리인인 것과 자신의 능력의 한계와 약점, 그리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주인의 평가와 거기에 따르는 상벌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고 말했을 때 그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변명하려는 기색 없이 당연히 올 것이 왔다는 담담한 태도로 앞날을 위한 설계에 몰입합니다.
어떻게 보면 얄밉고 화도 나게 하는 태도이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집착하거나 고심하지 않는 것은 지혜로운 처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언젠가 우리들의 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평가가 필연적임을 명심하고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거나 핑계할 수는 없습니다.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역사 안에서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둘째, 이 청지기는 자기에게 남은 기회와 권한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하나님은 활용하는 지혜를 칭찬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비유 중에 달란트의 비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의 경우 그는 받은 것을 묻어두었다가 그것을 주인에게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려고 하는 노력이나 생각이 전혀 없었던 종의 태도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은사도 믿음도 능력도 지식도 활용해야 합니다. 활용하지 못할 때 한 달란트의 가치는 보존할 수 없음은 물론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활용의 결과이며 미문의 앉은뱅이가 걷게 된 것도 활용의 결과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해안에서 폭풍우로 조난을 당한 배가 한 척 있었습니다.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그때 마을사람들은 난파선의 선원들을 구출하려고 어선들을 동원해 수많은 생존자를 구원해 냈습니다. 그러나 워낙 배가 작고 한사람도 더 태울 수 없는 형편이어서 난파선의 틈에 끼어있는 한 선원을 보고도 그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남아있던 생존자의 구조를 위하여 지원자를 찾는데 마침 한 청년이 그 모험에 지원을 하고 나섰습니다. 그때 청년의 어머니는 한사코 반대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남편도 바다에서 죽은 바가 있을 뿐 아니라 큰아들도 원양어업에 나간 지 수년이 되도록 소식을 모르고 있는 형편이어서 이아들마저 희생이 되면 혼자만 남게 될 것이라고 애원을 하며 지원을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마지막 생존자 한 사람을 살리려고 구조작업에 나섰습니다. 어머니는 애를 태우면서 아들의 성공을 빌었으며 마침내 아들은 마지막 생존자를 태우고 돌아왔는데 바로 그 생존자는 생사를 모르던 그 어머니의 큰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선을 추구하고 의로운 일을 도모하면서, 악행을 일삼는 자들보다 얼마나 소극적이고 기피 적인가에 대하여 깊이 반성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쓰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풍성한 수확을 쌓아 놓고 내 영혼만을 위한 욕심으로 고마운 이웃 또는 불우한 이웃은 전혀 잊고 있는 어리석은 부자가 아니라 내게 맡기신 주인의 것으로 주인의 기뻐하실 이웃을 위하여 투자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처럼 내가 가지고 있을 때, 내가 쓸 수 있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 미래를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눅 16:3-4) 한 것은 훗날을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시 71:18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했습니다. 더 먼 훗날, 죽음 후 심판 받을 날을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요일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 하니라” 영원히 없어지지 않은 것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그 방법으로
첫째, 빚진 자, 가난한 자들을 생각한 지혜입니다.
눅 16:5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라고 불어봅니다. 여기서 청지기가 사문서를 위조한 변조사건으로 보여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청지기가 증서를 마음대로 변조를 해도 되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1) 첫 번째 변조 사건
누가복음 16: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주인이 오기 전에 급히 서류를 다시 꾸미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름은 감람나무에서 얻는 것으로서 연료와 식용으로 사용하는 기름입니다. 한말은 헬라어 바투스는 약 23 리터로서 모두 2,300 리터입니다. 감람나무 한 그루에서 25리터를 얻을 수 있다고 하면 약 92 그루에서 얻는 기름입니다. 그래서 50%를 감한 50 말이라고 쓰도록 했습니다.
(2) 두 번째 변조 사건:
눅 16: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한 석은 헬라어 코투스로 약 360 리터 혹은 20말에 해당 합니다. 밀 백석은 100 에이커에서 나는 소출이라고 합니다. 20%를 감한 80석이라고 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문서 위조가 아닙니다. 청지기가 자기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업무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새로 쓴 증서가 정당한 가치인데 그 동안 청지기가 착취하기 위해서 억울하게 부과했던 것을 본래의 가치로 되돌려 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청지기가 자기의 이득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착취를 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자신의 잘 못을 알고 마음을 바로 돌린 것으로 보입니다.
잠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둘째, 주인의 인정을 받은 지혜입니다.
한 때 부정직했지만 주인의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인의 본심을 알고 그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내리셨습니다.
① 불의 한 재물로 영원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십니다.
눅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② 재물은 더 큰 것을 위한 준비입니다.
재물은 우리에게 더 큰 것을 주기 위하여 시험용으로 주신 것입니다.
눅 16:10-12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③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두 주인을 똑 같은 존경심으로 섬길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지금도 하나님보다 돈의 신을 섬기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돈의 신을 맘몬이라고 합니다.
NIV 성경은 마태복음 6:24절을 “God and Money”라고 했지만 KJV는 “God and mammon”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의 케사르(Caesar, Gaius Julius)황제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본국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로마의 전성기에 온 세계를 장악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황제는 군중들의 환호성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립니다. 이 때, 그는 번쩍거리는 면류관을 벗으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겨우 이것이 전부냐? 도대체 이게 무엇인데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생명을 바친다는 말이냐?” 이것이 전부냐! 여러분, 끝을 알고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별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무엇을 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청지기입니까? 불의한 청지기입니까? 신실한 청지기입니까? 주님의 것을 내 것인 것처럼 살아오지 아니했습니까? 내가 주인행세를 했으면 불의한 청지기입니다.
불의한 행동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됩니다. 주님(주인)은 셈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한 때는 이 비유의 불의한 청지기처럼 살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속히 셈을 하게 될 그날을 생각하면서 되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로...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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